삼일째, 몸살 목감기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침도 삼키기 힘들고, 마르고 타는 것처럼 화끈거린다.
견디다 못해 약을 먹는데도 쉽게 가라앉지도 않고...
오늘은 약이 떨어져 사방 팔방을 헤메고 다니다 포기했다.
오한으로 오싹거리고 뼈마디마다 시리고 아픈데...
딸아이 나눔이가 5박6일의 전주 답사여행을 마치고
금요일 그 가방 맨체로 병원으로 와서 삼일을 보냈다.
어제밤에는 내가 끙끙 앓느라,
늘 같이 나가던 아이스크림사기 나들이를 못했다.
혼자 보내놓고 맘이 안쓰러워 결국 일어났다.
제대로 이야기도 못하고 챙겨주지도 못하던게 미안한데
밤길에 혼자 보낸게 더 미안해졌다.
아이는 그 고단한 몸을 끌고 엄마 아빠를 보러와서 삼일을 보낸다는데,
전화를 했더니 아이가 혼자 다른 곳에 가서 있었다.
내가 가끔 데리고 가서 차 한잔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던 작은 카페,
그곳에 혼자서 아이스티 한잔을 마시고 혼자 있었다.
원두한잔을 추가하고 나눔이 앞에 앉았다.
아이가 서운하고 곤단하고 복잡한 것들이 몰려왔나보다.
진학문제로 계속 의논하던 것이 힘들었는데
주거 문제까지 얽혀서 이런저런 상황을 말하는데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속상해한다.
요즘 왜 사는지 모르겠다며, 하고 싶은거 자꾸 물어보지만
되지도 않고 상황대로 해야하는걸 뭘 물어보냐며 알아서 다 하란다.
엄마 아빠가 시키는데로 다 하겠다 한다.
그러면서 아무 것도 하고싶은 것도, 잘하는 것도 생각나지 않는단다.
그냥 고등학교 안다니고 싶은데 안가면 뭘 할거냐고 묻는데 대답할게 없어
그냥 가야겠단다...
몸살 중인 상태가 몹시 피곤하게 몰려왔다.
그것도 기분이 다운되고 하염없이 슬픈 상태로,
한숨을 자꾸 쉬었더니 또 운다.
자기가 나쁜 딸이된다고, 한숨 좀 쉬지 말라며...
간신히 달래서 차가운 밤길로 나왔다.
목은 싸하니 아프고 따끔거리고, 슬리퍼를 끌고 나온 발은 시리고,
그런데 팔장을 끼고 가다가 갑자기 아이가 서럽게 울음을 터트린다.
길 보도브록 중간에 서서,
밤 11시 한파속에 얼굴이 눈물범벅이 된다.
안되겠다싶어 아이를 품에안고 그칠때를 기다리며 뜽을 두드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피해가며 힐끗거린다.
모자까지쓰고 마주 부등켜안고 울고 있는데 어떤 사이인지는 모를거고
이상한 사이로 보는건 아인지 민망하기도 한데
정작 걱정되는건 아이 얼굴이 얼어서 터질까 안쓰러움이었다.
다시 사춘기가 돌아오는 것 같다는 아이,
내가보니 이것저것 복잡하고 마음대로 안되는 상황에
지도 몸이 고단하고 나도 몸살로 늘어져 소홀하니 예민해진것 같다.
저녁 5시, 주일 병원예배도 못가고 쓰러져 자고
아이를 데리고 짐을 챙겨 시외버스 터미널로 갔다.
오전에 7군데나 간 약국들이 다 문을 닫아서 못산 몸살약도 사고,
아이를 서운한채로 보내고 싶지 않아 배웅을 겸해서 억지로 나갔다.
간신히 문을 연 약국한곳을 발견했다.
편도선 목감기약, 오한 근육통약, 마스크, 휠체어에 다친 손에 바를 후시딘,
그렇게 비닐봉지 하나 가득사고 터미널로 향했다.
중간에 햄버거 하나사서 버스안에서 저녁겸 먹으라고 손에 쥐어주었다.
아내 저녁을 먹이러 바삐 돌아가야해서 차에 타는 것만 보고 이별했다.
'엄마 밥먹이러 5시20분까지 가야해서... 잘 가!'
문자 하나를 대신 아이에게 보냈다.
돌아온 병원은 일요일이라 벌써 밥상이 나와있다.
아직 5시20분도 안되었는데...
밥을 먹이려고 침대를 세우고 앞치마를 메고,
이것 저것 김치도 꺼내고 옆 침대분이 주신 카레도 얻어와서 식탁에 놓았다.
문득 마주친 아내의 눈 한쪽이 더 이상해졌다.
내가 보기에도 이상한데,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 본다면 더 이상할거다.
아무 감정없이 표현한다면?
마치 어물전에서 오래 된 동태의 눈처럼 흐릿해졌다.
눈동자가 까맣게 흰자와 구분되는게 보통 사람들의 모습인데
그 구분이 점점 없어져간다.
까만 눈동자와 흰자위의 경계가 번진것 같고 색깔도 누렇게...
게다가 자꾸 함몰되어 들어가는 안구가 이제는 꺼림칙할 정도로 보이기도 한다.
더 심해지면 어떻게해야할까?...
자기 모습을 거울을 통해보면 많이 상심하고 두려워질지도 모르는데...
어제는 아이에게 차를 마시며 스무살이 얼른 되어 혼자 다 결정하고
독립적으로 살아달라고 말했더니 아이가 말이 없어졌다.
오빠들 둘이 다 그렇게 스스로 무엇을 하던지 결정하고 살아주어
지금 이 상황에서 얼마나 엄마 아빠가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르겠다는 말과 함께,
뻔히 아는 우리가족 스타일이라 아이도 새삼 낮설지는 않다.
어떤 욕심도 강요도 하지않고 어디를 가던지 무슨 진로를 택하던지
반대하지 않겠다고 늘 말해왔기 때문이다.
제대로 지원도 해주지 못하고 언덕도 되어주지 못하면서 그럴수없으니,
예전에는 참 좋은 입장에서 그런 기준을 세웠는데 어쩌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것도 운명일까?
눈이 망가져 가는 아내를 보면서,
딸아이 나눔이와 밖에서 부등켜안고 울었던 이야기를 해주면서,
나는 아내에게 최소한은 5년만 더 살자, 그랬다.
몸도 힘들고 마음도 많이 힘들다.
아이에게 최소한의 책임은 다하면 그날부터 어서 우리를 천국으로 불러달라고
새벽마다 기도하고 싶다고 아내에게 말했다.
믿음 변하고, 혹여나 죄를 더지어 천국갈 자격도 없어지기전에
어서 데려가주시면 좋겠다고...
정말 이렇게 불완전하고 수시로 연약해빠진 몸뚱이를 끌고,
수시로 흔들리고 치솟는 분노, 우울함을 안고 더 산다는게 무슨 복일까 싶어서...
그런데 아이가 스무살만 되어서 우리가 떠나면 미안하지 않을까?
두 오빠놈들이 자상하고 잘 챙겨주지 않으면 자주 외로울텐데,
한 5년만 더 있다가 결혼이라도 시켜서 가정을 가지는걸 보고 갈까?
마치 우리의 수명이 우리 마음대로 되기라도 하는냥 아내와 이야기했다.
얼마나 가소롭다고 위에서 보고 들으며 웃고계실까? ㅎㅎ
그럼 이 답답하고 막막한 맘도 좀 알아주시고,
단 하루도 쭉 뻗어서 마음놓고 아프지도 못하는 몸도 좀 챙겨주셨으면...
아버지! 재미있어요?
다보고계시면서 침묵하시긴가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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