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각자 주인공인 설날 풍경

희망으로 2012. 1. 24. 14:46

설날 풍경


1.

이 사람 저 사람 모두 주인공들이다.

소설도 단편이 아닌 장편의 주인공,

나는 그 모두의 겉을 빙빙 돌아가는 단지 조연일 뿐

그러니 함부로 화내지도 말고 낮추어 무시하지도 말라

그러나 서러워말라

나도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또 하나의 장편드라마

그 속의 가장 중요한 주인공이나니


2.

집으로 가지 못하는 사람들과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이 한 공간에서 

사흘 명절을 24시간 지지고 볶으며 지냈다.

공연한 짜증과 그 와중에도 작은 차이에도 시샘이 솟아

장마철도 아닌데 사흘 손님처럼 서로를 찌른다

밤늦게 이야기한다 시끄럽다 하고

돌아서면 수군거리고 채널가지고 예민해지고...

각자의 장편이 겹치는 고통스러움


3.

무엇이라도 더 먹이고 싶어 자꾸 주고

하릴없이 좁은 장소에서 꾸역 먹어대고 제자리에 눕다가

기어이 탈이 난 아이는 새벽부터 토해냈다.

두번 세번,

오면 반갑고 갈 때는 더 반가운건 손주들만이 아니다

병실에서 챙겨주다 돌아가는 아이들까지 그걸 느낀다.

사흘째 마음놓고 킥킥거리지도 못하고

혼자 고요한 시간을 가지지 못하고

입은채로 자고, 자고 일어난채로 밥 먹고,

기어이 피곤함이 모두에게 버들가지 물오르듯 오른다.

주인공도 조연도 구분없어지는 사흘간의 병원 명절


4.

미처 감사인사도 못 드린 사람에게서 

새해는 더 좋아질거라는 덕담과 밥값도 오고

내가 보고싶어 먼저 보낸 인사는 메아리도 없고,

그렇게 세상은 주고 받는 맞거래가 아니고 돌려막기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난 눈물 한방울도 안흘릴것 같은데

내가 세상을 떠날 땐 좀 울어주고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기대

이게 무슨 불공평한 시나리오인지,

분명 이 세상은 저울대위에서 일찌감치 내려와버렸다.

 그렇지않고서야 설날 먹을 밥도 안팔고

해먹지도 못할 사람, 해먹을 거리도 없는 사람이

함께 살아갈까...


5.

설 전날 주일예배때 목사님은 

이건 죽어도 못 잊어! 하는걸 버리는 날이 섣달그믐날이라며

그래야 새로 오는 한해가 행복해진다고 하신다.

그래 이건 죽어도 못 잊어! 하는게 참 많이 쌓였다.

이 사람은 죽어도 좋아하기 싫어! 하는 것고 많고,

이 욕심은 죽어도 못버려! 하는 것도 참 많고,

이걸 망각하게하는 날이 설 전날이란다.

다음 날, 다음 한 해는 행복하려면 다 내려놓고 잊어라는데...


6.

고단함이 몰려와 어깨가 축 늘어진다.

울컥 치솟는 성질과는 역주행으로!

아내는 얼굴 좀 펴고 민감한 아이들이 눈치 안보게 하란다

나가지도 못하고, 머물러도 안 편한 심사가

서럽게 분노로 바뀌는 장편의 뒷부분 쯤

내 드라마속으로 들어 온 아내가 딱하다.

좀 더 좋은 줄거리와 배경으로 갔더라면 재미있었을 설 명절,

한 번으로 끝날 행사도 아니고,

한 번 더 보낸다고 더 잘하지도 못할 그 주인공이 그 주인공...


7.

참 대단하시다.

이렇게 얽히고 서로 영향력을 끼치는 수십억개의 장편소설을

제 각각 주인공이라고 고개 쳐들고 핏대세우는데도

용케도 일인 이역, 삼역을 해내며 살게 도우신다.

내 드라마는 주인공,

아내나 아이들에게는 조연으로,

남들에게는 엑스트라 대접을 벗어나지 못하는데도

굳세게 살아낸다. 투덜거리고 떼쓰면서도...

이 많은 장편을 쓴 분이 단 한분이라는 놀라운 사실,

대단하신 작가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