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가는 길/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

고독함과 적적함, 그 하늘과 땅 차이...

희망으로 2012. 1. 12. 05:05

아내의 호출에 잠에서 깨워져 졸음을 참으며
생리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다시 누웠는데 잠이 달아나버렸다.
몸은 뒤틀리고 고단하다고 신호를 보내는데
심사는 점차 맑아지면서 하늘로 날아가려 한다.

큰일났다.
이러면 오늘 하루가 엇갈린 리듬때문에 또 애먹을텐데... 

고독하다는 것,
사람들에 둘러 쌓여서도 천지가 고요한 진공상태

적적하다는 것,
누군가 나를 보아주고 함께 해주면 행복해지는 것!

둘은 비슷하면서 하늘과 땅 만큼 다른 대상...

지금 나는 고독한걸까? 적적한걸까...
새벽 3시 46분에!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풀이를 해놓았다.

<고독 [孤獨,蠱毒]뜻 - 홀로 있는 듯이 외롭고 쓸쓸함>

또 하나의 단어 적적함은 이렇게,

<적적하다 주요 뜻 - 홀로 떨어져 있어 심심하고 외롭다,>

총각시절에 참 많이 딩굴거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떼굴떼국 구르기도 하고
불을 켜고 애꿋은 라디오를 마냥 틀어놓아도보고
그래도 견딜 수 없어 무작정 집을 나서서 
마냥 걸어야 했다.
어느 때는 달빛에 창백한 상계동의 비닐하우스 들판사이를 헤메고
또 어느 때는 수락산을 마냥 올라가 적당한 공간에서 몸부림치다가
새벽이 밝아오면 그곳이 남의 무덤 잔디밭인걸 알고 놀라기도 했었다.

그때는 혼자 맞이하는 밤이 무섭고 두려웠다.
그래서 이유만 있으면 남들을 붙잡고 늘어져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밤 늦도록 할일이 생기면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누군가 집으로 저녁을 먹어러 오라고하면 신났었다.
배부른 밥보다 늦은 시간까지 이야기하고 보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것은 모두 홀로 지내는 적적함이 힘들어 겪는 괴로움들이었다.
가족이 없이 세월을 보내며 살던 열 너댓살부터 생긴 두려운 대상,

그러다 교회에서 만난 친구와 한집에서 살면서 
봄눈 사라지듯 그 괴로움들이 사라졌다.
더 먼저 만난 청년부의 여자 친구와 군에서 돌아온 남자 친구가
결혼하면서 순전히 집 전세금이 모자라 같이 지내자고 나를 불렀다.
우리는 때로 혈육의 형제보다 가까운 마음을 느끼던 사이라서
남자 둘에 임신한 여자 한 사람, 
그렇게 셋이서 사는 이상한 눈초리를 받기도하며 5년을 한 집에서 살았다.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하면서 따로 나오기 직전까지!

친구 부부의 아이는 나를 정말 삼촌으로 부르며 
내 무릎에서 쉬를 하기도하고, 엎히고 안겨서 놀았다.
아이가 아프고 남자 친구가 늦으면 내가 같이 병원을 가기도 했다.
마치 아빠의 자리를 채우듯!

그렇게 한가족으로 살면서 그 지독한 적적함의 고통에서 해방된 것이
마치 하늘의 축복 같았다.
그렇게 해결된 적적함은 아내와 결혼하면서 여전히 이어졌다.

그러나 그때, 결혼 후 서른 넘어서부터 내겐 새로운 괴로움이 몰려왔다.
고독함,
아무리 바쁘고 힘든 직장생활, 늦게 돌아온 신혼 가정에도 불구하고
늘 하늘을 보며 한숨을 짓기도하고 가슴속을 치고 가는
늦가을 벌판의 바람같은 흔적을 느껴야 했다.

산다는 것의 이유, 
산 다음에 무엇을, 어디를 갈 것인가에 대한 막막함,
늘 열심이던 교회생활의 무조건적인 생활에서 벗어나면서
새롭게 들이닥친 질문들이 답이 오지 않았다.

죽도록 야근에 스트레스를 받으며 보내는 직장의 시간조차
인생의 목표도 아니고 대책도 되지 못하는 우울함에 빠져들게 했다.

그것은 고독, 쓸쓸한 허무 같은 것이었다.
군중속에서도 외롭고 시끄러울수록 더 조용해지는 적막강산...
이게 아닌데, 이렇게 살아서 보내는게 무슨 의미라고,
끝없는 조용한 비관들이 계속되었다.
예전의 바쁘고 단순한 교회생활만으로는 채워지지않는 질문들,
외형적으로 반듯하게 잘지키고 살다 죽으면 간다는 천국스케줄이
설득력을 잃고 맥을 못추는 새로운 메마름, 빈 마음들이었다.

그러다 시작된 가정 모임 신앙공동체,
오랜 규칙적인 신앙생활에서 목숨과 생활을 다 걸고 하는
본질적인 제자의 길이 나를 흔들었다.

미친듯 갈증을 채우며 깊이 공부하고 찾아보는 몇년동안
나는 이 신앙공동체의 길이 그 무서운 고독함을 해결하는 답으로 느껴졌다.
결혼만 하지 않았더라면 바로 수도원에 입소라도 하던지
어딘가 이미 진행되는 공동체를 찾아가서 그 길을 걷고 싶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세상이 분주하게 성공과 부유함을 채우는 아우성 속에서
도저히 낮설고 겉돌아가던 사막에 떨어진 기분이던 삶이 활력을 찾기 시작했다.
떼제의 하루 세번 기도회가 차라리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사는 이유로 더 적합했고 위로가 되었다.
새벽과 밤 예배까지 날마다 가지며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동안
다른 노선으로 가고 싶은 바람이 깊어져 갔다.

모임에서도 직장에서도, 또 가정안에서조차
나는 늘 시골 어딘가 자연으로 들어가 살고싶다!를 중얼거리며 지내고 있었다.
적적함도 죽을 지경이라고 밤거리를 헤메다가
그보다 더 무겁고 사람으로는 해결할길이 없는 무서운 고독함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보이는데 계속 예전처럼 살 수가 없었다.

그 고독함이라니...
그 시간은 정말 하나님이 부르시는게 맞다.
부모 형제가 다 한 방에 앉아 웃는 명절에조차
마치 극장에서 스크린을 보고 있는 느낌의 아득한 분리감, 
이질감을 뭐라 설명할까... 

절대적 고독함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라고 그랬다.
그제서야 그 말이 실감으로 내게 다가왔다.
하나님만이 그 고독함의 늪에서 건져주고 죽지않고 살게 해주는
유일한 길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노래 부르며 사는 직장은 결국 막을 내렸고
여기 저기 기웃거리며 견학을 하다가 결국 가족을 끌고 이사를 했다.
한 오년이나 십년쯤 살다보면 조그만 터전은 만들어지겠지?
나와 같은 장소, 모임이 필요한 누군가를 받아들일 만큼의 공간이!

그러나 그것은 생활전선이라는 무지막지한 현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참 어렵다는 결론만 우리에게 확인시키며 
오년이 지나가고 십년이 지나가고 십오년도 지나가고 있었다.
애초에 시골 자연속으로 옮기던 꿈은 바래지고 낡아져서
벽에 걸린 그림처럼 그저 전시용으로만 남아서...

그러다 아내가 아프면서 모든 계획은 종지부를 찍었다.
이미 그보다 몇년전부터 거의 기진맥진 불평만 남긴채
내겐 의욕도 자신감도 모두 바닥으로 추락해 있었지만...

다시 몰려오기 시작한 고독함들이 날마다 아내를 괴롭혔다.
'이게 뭐야? 이렇게 살려고 온거 아니었는데...'
이런 자괴감 한숨으로 시큰둥하는 나를 달래며 아내는 지역 교회를
섬기기 시작했다. 나는 죽어도 안하겠다는 고집을 부리는데도,
아이들 신앙문제로 나도 받아들이고 습관적인 봉사와 
양심 무마용으로 교회를 다니는 날이 계속 되었다.

그러다 완전 종지부를 찍고,
살고 죽는 기로에 서면서 가정도 원심분리기에 돌린 듯 해체되었다.
모든 불만들이 다 우스운 쓰레기들이었다.
죽음을 앞에두면서 다시 조명해보니 기가 막혔다.
그림으로 그리는 신앙공동체의 설계도라니...
그 초라하고 오만한 어리석음들이라니...

다 비우고 죽음을 맞이하며 기다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며
나는 오히려 마음이 평안해졌다.
예전에 한때는 노력으로 받는줄 알았던 천국티켓도 사라졌고,
다시 이론으로 세웠던 천국행 자격증 과정도 물거품 같아졌다.
그저 잘못했던 사람들에게 사과를 다 하고,
죽을 날을 기다리며 욕심없이 믿고 기다리는 동안 
오래도록 나를 괴롭히던 조급한 불안, 고독함들이 녹아져갔다.
거저 값없이, 그러나 확실히 주시는 다음 세상의 영원한 생명이
눈물나게 고맙고 감지덕지일 뿐,

이렇게 새벽에 잠이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해도
예전처럼 수렁으로 빠져들지는 않게 된 것이 그런 시간을 보내고
얻은 평안인가보다.
비록 고단하고 쉽게 다스려지지않는 정서적 산만함들에 애태우지만
근본적인 소망, 우리를 부르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실 
하나님의 은총과 계획은 날이 갈수록 믿어지니!

그래서 결론은?
이 새벽의 서성거림은 아무도 깨울 수 없고 놀지 못하는
적적함! 이라고 판정한다.
단지 누군가가 말벗이 되어주지 못하는 홀로 있음의 고단함 정도?

이 적적함이 계속 반복되면 또 고독함에 빠질지 모른다.
왜 이리 자주, 길게 적적하게 두냐고 원망하면서...

그럼 또 하나님을 만나는거지 별 수 없다.
그 자리에 푹 주저 앉아서, 
어디계세요? 하나님? 휘휘 둘러보며 이름을 부르고 앙탈을 해서

하나님의 허리춤이나 품에 안겨 회복을 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