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가는 길/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

꼭 필요한 실패의 이야기

희망으로 2011. 12. 11. 23:52

꼭 필요한 실패 이야기

 

빨래 보따리를 한가득 담아 빨래방으로 가다가

건널목에 걸린 현수막을 보았다.

ㅇㅇㅇ변호사의 노력강좌!

전에도 티비에서 보았고 어딘가 책에서도 보았던

변호사로 성공하고 티비도 나오고,

정치계도 스카웃되어 국회의원까지 된

진짜 성공한 사례의 강좌를 알리는 현수막.

 

머리가 안 좋다고 생각해서 남들 한시간 공부하면

두 시간하고, 책 한번 보면 자기는 세 번 네 번,

심지어는 열 번도 보고 외워서 사법고시도 통과했다는...

 

세상엔 그런 성공담 이야기들이 참 많다.

책방에 가면 이런 저런 아이디어로 대성공을 거둔

사람들의 비결과 과정이 무진장으로 나와있다.

돈을 번 성공 사례만이 아니라 각종 분야마다

그런 성공케이스와 뛰어난 방법, 행운 등이

성공으로 안내하는 가이드처럼 널려있다.

 

비단 책만이 아니다.

사회적인 성공만이 아니라 종교분야에서조차

기적이라는 이야기로 각종 간증과 사례가 넘친다.

믿음을 따라 살았더니 고난이 변하고,

남들이 깜짝 놀랄 만큼 큰 결과를 가져오고

자녀들이 줄줄이 복을 받은 이야기들이...

 

사업을 하는 사람들,

믿음의 향상을 꿈꾸는 사람들,

가난과 각종 질병으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

여러 분야에서 여러 목표를 세운 사람들이

그 책을 보고 용기를 내고 따라하고

그 방법들을 모방하면서 창업을 하거나

자녀교육에 매달린다.

 

대부분 공통적으로 성공의 자리에 올라서서

혹은 꿈을 이룬 결과를 품에 안고 승자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감 넘치게 권하는 형태다.

 

신호를 기다리며 그 현수막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문득 다른 처지의 경우가 자꾸 떠올라 착잡해진다.

모든 사람이 저대로 따라만 하면 다 될까?

그건 나중일이고 모든 사람이 끝까지 따라하기나 할까?

사람마다 환경도 다르고 때도 장소도 다른데?

사람마다 타고난 성격이나 능력도 다른데...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계속 몰려오는 불운에 허덕이는

말도 안되는 사람들도 있고,

다행하게 어려운 중에도 몇가지 조건을 잘 살리는

좀 나은 경우도 있는데...

 

실화를 영화로 만든 호텔 르완다에는

단지 태어난 조건 하나 때문에

어린이 여자 가족들이 떼로 몰살당하는 수십만이 나온다.

그걸 살리려 애쓰고 기적같이 많은 생명을 구한다는 슬픈 감동,

 

전에 비행기를 타고 유럽신앙공동체를 돌아보러 갈 때

중국의 고비 사막을 지나가며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만일 내가 저 넓고 황량한 고비 사막에 태어났더라면

그래도 이런 기회를 얻어서 신앙의 순례를 할수 있었을까?

그건 제쳐놓고 나는 무슨 꿈을 가지고 어떤 모습으로

살고 생각하고 죽어갈까?

전혀 다른 인생이 기다릴게 뻔할거다.

단지 선택도 아닌 탄생의 이유하나만으로...

개인의 재능과 노력조차 임의의 탄생 운명에 비하면

정말 작고 초라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성공한 이야기

성공한 방법과 노력, 더나가 그걸 만드는 틀과 같은 강좌,

때론 그건 참고도 되고 목표도 되면, 용기도 줄 수는 있을 거다.

그러나 그건 없어도 지장은 없을 거다.

모른다고 양심을 따라 살거나 희망을 이루려고 노력하는걸

포기하지는 않을테니

 

반대로 실패한 이야기

끝나지 않은 고난 중의 이야기

어떻게 망하고 구덩이에 빠지고 어떤 고통을 버티며 사는지

그걸 견디느라 이렇게 저렇게 애쓰는 방법들은

정말 꼭 필요한 이야기인지 모른다.

그런 절실한 느낌이 몰려온다.

 

우리가 아는 신앙의 많은 선배들은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까지만 본다면,

사도바울이 그랬고,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그랬다.

그렇게 예수의 죽음과 부활, 하나님의 뜻을 전하려고

온갖 고생과 핍박을 당하며 끝내 비참하게(사람들의 기준으로)

순교의 최후를 맞이했다.

그렇게 허무하게 끝을 보려고 모두 그렇게 살았을까?

진정 그 끝은 허무만 있는걸까?

그들의 이야기는 죽음까지만 보면 전부 실패의 결과다.

 

그러나 그들에겐 그 고통중에도 견디는 이유가 있었고

견딜만한 힘을 주는 경험이 있었다.

비록 살아 성공을 손에 쥐고 폼나게 사람들앞에서

인정받는 간증도 강좌도 할 수 없었지만

흔들리지 않는(때론 확신하지도 못했지만) 확신을 가졌었다.

 

그래서 그들이 비록 고난과 실패의 외형속에서도

간증(전도)하고 강의를 하고 다녔던게 아닐까?

그 효과는 많은 사람들을 공포와 이 땅에서의 실패를 극복하고

무언가를 소망하며 살도록 하지 않았을까?

그들이 아니었으면 과연 수백년 동안의 흑암에 빠진 사람들이

죽음을 맞으면서도 올바른 길을 가고 평안을 가질 수 있었을까?

 

당시에 성공한 사람들의 간증이나 강의라면

유대교 제사장들이나 로마의 관리들이 더 어울렸을 것이다.

많은 부귀와 권력, 명예와 안정적인 생활,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그들의 길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델로 삼으려고는 하지 않는다.

비록 죽도록 그것들을 향한 욕심에서 못 벗어나며 살지라도...

 

때론 빛이 없는 터널을 계속 걸어가는 내 모습이 참 한심하다.

모두들 행복하고 넉넉하게 웃고 어울리며 살아가는데

늘 무겁고 무엇인가를 받기만 하면서 살아야하는 꼴이라니...

그러면서 다음세상의 믿음을 이야기하거나,

올바른 정의로운 세상, 나누며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말하려면

떳떳치 못한 내 처지가 곤혹스럽기도 하다.

무슨 거지같은 동정을 요구하거나 늘상 심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

 

그래도 꼭 필요한 건 실패의 이야기다.

나보다 힘든 사람들의 비명소리,

나보다 길게 터널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록 내게 성공의 계단을 보여주지 않지만

오늘 하루를 버티고, 그것도 사람 체면을 포기하지 않고

버티도록 도와주는 힘이 있어서!

 

찬양 하나를 몇 시간째 듣고 있다.

우리 이 땅에라는 찬양,

가사가 자꾸 내게 이야기를 걸어온다.

맞냐? 맞지? 그러면서...

 

-1.우리 이땅에 몸으로 태어나

무슨 일 하다가 무엇을 남기랴

우리의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주나

너와 내가 남 남으로 주앞에 설때에

우리 무엇으로 주님께 드리랴

 

2.혹은 긴 인생 어떤 인 짧은 인생

그러나 누구도 영원히 살수 없네

천국이 없다면 인생이란 허무한것

너와 내가 영혼으로 만날수 없다면

우리 이별을 어떻게 견디랴

 

3.주님 안에서 영원한 생명 얻어

언젠가 또 다시 만날 수 있기에

우리 헤어져도 슬프지 않을수 있어

너와 내가 영혼으로 또 다시 만나세

주님 그때까지 함께계시리라

우리 위해 함께 계시리라

 

특히 이 부분,

천국이 없다면 인생이란 허무한것

너와 내가 영혼으로 만날수 없다면

우리 이별을 어떻게 견디랴

 

듣다보니 또 최간사님 찬양2집인가에 있는 곡이다.

천국이 없다면 인생이란 허무한 것,

영혼으로 만날 수 없다면 이별만 못 견디는 게 아니라

하루의 생조차도 어떻게 견디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