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난 당신이 좋아' 김병년목사님과 같은 점 다른 점!

희망으로 2012. 1. 3. 10:58



나이고 당신이기에, 호흡할 수 있는 우리이기에 할 수 있는 말, [난 당신이 좋아]

고통은 때로 가야할 길의 이정표가 되어 주기도 한다. 김병년 목사는 식물 인간이 된 아내를 10년째 보살피며 걸어온 삶의 고통과 깨달음의 시간을 이 책에 담았다. 병의 치유를 경건한 신앙의 모범으로 여기는 교회의 분위기 속에서 낫지 않는 것이 결코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님을 알려 준다. 하루하루를 사는 것이 믿음이라고, 해답은 없어도 살아 있는 것이 믿음이라고 말하며,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랑하는 '진실한 믿음'을 일깨운다. 어떤 신학서적보다 깊은 곳을 꿰뚫고, 어떤 설교집보다 은혜로운 메시지가 있으며, 어떤 수필보다 진정성을 담고 있는 책이다.




[도서]다 보고 계시지요?

기약없는 아내의 간병을 통해 하나님 아버지께 보내는 김재식님의 간절한 편지
그 편지속에서 우리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어렵지만 너무너무 힘들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향하여 날마다 외치는 그의 기도를 엿봅니다. 그리고 함께 하기를 원합니다.








아내를 돌보느라 긴 시간을 하나님과 씨름 하며 보낸 동병상린...

그 닮은 모습과 다른 점을 비교해가며 책을 읽었다.

어디다 쓸려고, 혹은 무슨 무게를 저울질 해보려고 하는게 아니라,

그저 되돌아보고 내게 없었던 힘을 배우고,

내가 좀 더 다행이었던 점을 위로 삼으며 읽었다.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른걸까?



1. 

같은 점은 우리 두 사람은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아내의 깊은 병으로 간병을 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다른 점은 김병년 목사님은 아내가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7년째이고,

저는 아내가 다발성경화증(데빅씨병)이라는 희귀난치병으로 사지마비가 되어

4년째 병원을 떠돌며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같은 점은 우리가 간병을 하면서 겪은 과정을

책으로 내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점은 김병년 목사님은 그 책의 제목이 '난 당신이 좋아'이고

'고통 속에서 부르는 아가(雅歌)라는 부제목을 달았습니다.

저는 '다 보고 계시지요?'라는 제목에 '하나님께 보내는 편지'라는

부제목을 달았다는 것입니다.


3.

같은 점은 목사님도 저도 세 아이의 아버지이고,

형제들 중에서는 둘째(차남)라는 것입니다.


다른 점은 목사님의 사모님은 아가의 방구냄새를 맡고

순간적으로 시작된 고난이고,

저는 아내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8개월만에 완전 마비가 되어

눈 뜨고 고스란히 과정을 받아들이며 깊어진 고난이라는 점 입니다.


4.

같은 점은 두 아내가 자기 몸을 자기가 원하는대로 못 움직이며, 

대소변조차 본인의 의지대로 못한다는 점이고,


다른 점은 목사님 사모님은 대화도 못하시며 눈으로 전달하지만

제 아내는 보고 듣고 말하며, 웃고 울기를 자주 한다는 점 입니다.

사모님은 아이들과 날마다 인사를 나누지만,

아내는 병원생활을 하느라 거의 아이들을 보지 못한다는 점 입니다.


5.

같은 점은 아내를 처음 만나는 날 결혼해달라고 한 것이고

실재로 거의 승락을 받아 1년과 1년반 후에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김병년목사님은 1995년 예배당에서 양가 축복을 받으면서 

김동호목사님의 주례로 올린 것이고,

저는 1988년 종로 기독교100주년 기념관에서 

교회를 다니지 않으시는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당시 모임을 가지던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6.

같은 점은 새벽기도회를 통해 배우자를 만나게 해달라고 한 것과,

고단한 인생길에서 수시로 투덜거리고 불평을 한다는 것이고,


다른 점은 목사님은 큰 기도팀에서 폼나게 선을 보이시며 점수를 땄지만

저는 순전히 협박조로 나를 믿어달라고 스스로 홍보를 했다는 겁니다.


7.

같은 점은 결혼 후 아내들이 남편들의 무심하고 성급함으로

신혼초 우울증을 겪으며 눈물을 흘린 시절을 보냈다는 점,

빚지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아내와 빚지는 것을 당연히 여겼던 남편이 같고,

사람 좋아라고 대책없이 데려오면 잘 대접해서 나중엔 아내가 인기가 좋은 점이 같다.


다른 점은 목사님은 멘토의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극복해간 반면,

저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고 더 고집이 세졌다는 것입니다.


8.

같은 점은 '보호자'라는 명함 하나를 주고,

감당키 어려운 온갖 통보와 결정들을 요구받는다는 것,

목사님은 뇌수술 동의서를 강요받으면서 '하나님! 당신이 보호자시잖아요!' 했고

저는 척수종양이라는 mri판정을 주면서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하라는

지방대학병원의 선고를 받고 '하나님, 어떻게 해야하는지 아시잖아요,

그런데 왜 말을 안해주세요? 그러면 제가 믿을수가 없잖아요.' 했다는 것,


다른점은 목사님은 결국 수술동의를 하셨고 결과가 예측대로 되었지만

저는 오진으로 계획이 바뀌고 새로운 희귀병 판정으로 

새로운 고난이 지작되었다는 점. 


9.

같은 점은 차가운 느낌의 중환자실을 종일 기다리다 하루 두 번, 

20분의 면회시간을 뭘 해보지도 못하고, 더 무겁게 나오곤 한 경험을 했다는 것,


다른 점은 목사님 사모님은 수술 후 단번에 중환자실로 가셔서 오래 계셨고,

제 아내는 일년을 내리막길로 응급실을 들락거리며 점점 악화 된후,

마지막 3개월을 하루 흰죽 한컵으로 버티다 폐까지 마비되어

산소통을 안고 살다가 들어 갔다는 것, 금방 나오곤 또 가고 반복했다는 것 ...


10.

같은 점은 금식기도, 기도원에 매달리고, 낫는다는 응답을 여러번 받았다는 것,

기도가 만병통치약이고, 기적은 정성과 확신에 좌우된다는 분위기가

정서에 잘 맞지않아 곤혹하며 몸부림을 치는 사이 피골이 상접했던 경험...,


다른 점은 목사님은 혼자 가셨지만 저는 아예 아내를 데리고 들어가

5개월을 온갖 종류의 안수 안찰 기도를 다 받으며 지내다 생활비를 감당못해

간신히 밀린 빚을 갚고, 걸어 들어갔다가  차에 실려 나왔다는 점.


11.

같은 점, 결혼기념일을 병원에서 맞이하고, 같이 선물을 주고 받을 수도 없고,

같이 나가서 식사라도 하는건 더욱 불가능한 좋은 날을 좋지 못하게 보낸 점,

그럼에도 목사님은 처제에게, 저는 처형에게 부부의 결혼기념일 축하를 받았다는 점,


다른 점은 목사님은 아이들과 손을 모으고 엄마를 위해 기도할 수 있었지만

저는 병실에서 단둘이 쌓여오는 병원비 생활비들을 어떻게 마련할지 고민하며

차라리 단번에 끝나는 병이 아님을 원망하며 지냈다는 것,

아이들은 아주 먼곳에 뿔뿔히 떨어져 지내며 같이 기도도 하지 못하며,

특히 막내 딸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여기저기 떠돌며 살고 있다는 안타까움...


12.

같은 점,

1급장애판정,

전신마비,

교회식구들의 날마다 드리는 장기기도,

살림을 맡은 가장, 보호자로 간병, 홀로 부모역할 ,

주위 사람들의 숱한 회복 꿈,

아내없이 혼자 나들이 눈물,


다른 점,

가정으로 퇴원과 달리 병원에서 병원으로,

아이들과 함께 사는 방식이 아닌 떨어져 지내는 생활,

화장실이 두개나 있는 아파트 대신 있던 집도 사라지고 

갈 곳이 없어진 점...


13.

같은 점은 몇년에 이어 앞으로도 끝이 기약없는 병원비, 생활비

그 긴 시간동안 엄청난 비용과 작은 필요까지 다 채워주심

전혀 예상도 못하고 연결도 안되는 곳에서 이어지는 도움들,

쓰러져 누운 아내가 건강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들어오는 신기함,

여호와이레! 믿으면서도 돈보다 어서 회복되기를 떼쓴다는 점...


다른 점은 목사님은 가진 형편보다 더 큰 아파트를 허락하셨으나

저는 있던 시골 헌집조차 팔아서 빚을 갚고 살림을 몽땅 버린 후

떠 돈다는 점, 채 갚지 못한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되어버린 아내,

목사님의 딸이 점점 받은 사랑을 갚을 마음을 먹어가는 동안

우리 딸아이는 마음이 무거워져 '거지'처럼 궁색하기 싫어진다는 갈등을 

날이 갈수록 힘들어 한다는 점,


14.

같은 점은 끝이라고 생각했던 자리에서 또 이어지는 시작이

자주 반복해서 이제는 끝을 기대하기 두렵다는 것,

아무리 신앙으로 버티다가도 긴 기다림때문에 불행은 만성이되고

죽음조차 반가운 대상으로 기다리기조차 한다는 것,

하루에도 반복하는 절망감과 확신을 오가며, 

아무것도 특별한 바람이 없는 그런 행복을 고대하는 것,

부부가 같이 걷는 모습만 보아도 부럽고, 새벽기도를 같이 하고 싶은

생각만해도 눈물이 먼저 나올 것 같은 그리움을 안고 산다는 점...

부활이 없으면 가장 불쌍한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고백,


다른 점은 마지막 순간까지 천국 갈 수 있기를 가족들이 빌어주고,

혈육의 처가집 아버지도 확신하고 가셔서 본을 보여주었지만,

저는 어머니가 끝끝내 각각 병원생활 몇년차에 신앙도 없이 떠나신 것,

아내곁을 비우지 못해 임종도 보지 못하고, 

장례도 참여못하고 보내며 통곡했다는 깊은 외로움에 방황했다는 점,


15.

같은 점은 지치고 서투른 간병 때문에 아내를 다치게 했다는 것,

목사님은 큰 수술에 생사를 넘나드는 고비를 넘기고 다리 한쪽을 

잃어야했던 아픔을 가졌고, 통곡을 하면서 가슴에 묻고 가신다는 것,

저도 목욕을 시키다 서툴러 꼬리뼈 살을 찢어놓고 목욕탕 바닥을 피로 물들이고,

숱한 어설픈 돌봄으로 손가락 발가락 배 살을 껍데기를 벗겨냈던 기억들을 

가슴치고 도망가고 싶었던 간병의 자리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


다른 점은 목사님은 영원히 복구되지 않는 큰 상실로 남았고,

저는 흉터들만 남기고 치료가 되고 회복이 되었다는 다행스런 기억이라는 점.



저자 후기 중에서 
이 책은 죽음의 그림자인 육체의 질병 앞에서 비교적 솔직하게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을 이야기하며, 고통을 향한 우리 가족들의 항거가 만들어 내는 인생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있다. 나의 삶은 죽음에 가깝지만 함께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어 아름답다. 
“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해서”라는 시구처럼, 아픔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임을 배우게 되었다. 고통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했고, 이전에 내가 몰랐던 하나님을 알게 했고, 결국에는 나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고통당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했다. 찾아온 고통을 극복하는 법만 가르치는 현실에서 고통을 품는 법을 배웠다. 서두르지 않고 인생을 살아가는 법 또한 배웠다. 

한국 교회에서는 현실적인 성공과 병의 치유를 경건한 신앙의 모범으로 여긴다. 신앙과 성공, 믿음과 병고침이 반드시 동반된다고 여긴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숨 쉴 공간은 없다. 항상 뭔가 부족하고 잘못된 인생을 살아가는 듯한 정죄감에 시달린다. 낫지 않는 병 때문에 아픔을 겪으면서도 믿음이 부족하다는 비난을 듣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낫지 않는 것이 결코 믿음이 없기 때문이 아님을 알려 주고 싶었다. 

오랜 시간 투병하는 환자를 둔 믿음의 가족들에게 전한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믿음이라고, 해답은 없어도 살아 있는 것이 믿음이라고. 신앙은 우리에게 고통을 없애는 능력만이 아니라 고통을 품게 하는 능력도 준다. 고통이 삶을 묶었지만, 믿음은 고통으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삶의 아름다움을, 부부간의 사랑을, 자녀양육을 그리고 성도들을 사랑하고 위로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사랑하는 진실한 믿음의 친구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re] 다시 남겨주신 마음...

김병년 Y 2012.01.22 07:19

집사님, 질병앞에서는 직분이 필요없지요. 그저 하나님 앞에서 한 인간으로서 만나고 나누고 위로를 받잖아요. 저도 형제님의 글을 읽으며 울었어요. 이런 삶도 있구나. 국민일보 기사도 찾아서 읽었고요. 이제 책만 사서 읽으면 되요. 두분이 계시는 요양병원의 주소도 적어두었어요. 그쪽을 지나가면 반드시 찾아뵐 예정이예요. 이미 우리 성도들에게 말했는 걸요. 오늘은 명절을 앞두 주일, 설교 준비에 헤메이다 다시 찾아왔어요. 저도 오늘 하루종일 아내를 돌보며, 내일도 아내를 돌보며 명절을 보내요. 멀리 있어도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글이 있어 감사해요. 형제님. 힘내세요. 사실은 나이로 저보다 형인데. 미안합니다.


┗ 희망으로 Y 2012.01.22 09:32

목사님 거듭 이렇게 마음을 열어주시고 글 남겨 주심이 많이 감사합니다. 
전혀 누구의 잘못이냐? 무슨 잘못 때문이냐?가 떠오르기 십상인 큰 시련앞에서, 
매를 맞는 자녀가 부모에게 더 파고들 듯 
신앙으로 사시는 모습에 큰 힘을 얻습니다. 

누구나 닥치는 고난을 누구나 잘 견디지는 못하는데... 

아이들을 보살피는 것이 가장 힘들다는 말씀에 열번 공감했습니다. 
저도 초등학교 5학년이던 막내 딸아이가 홀로 버티는 몇년을 참 많이, 
바닥이 꺼지도록 울었던 기억들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버티다 죽을망정 받아들일수 있는 것과는 또 다른 무거움이었습니다. 

환자와 간병 양육, 그 모든 현실을 하루하루 살아내는 벅찬 일을 잘하시는 모습에 이어, 
또 하나의 존경은 신앙고백의 공감대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처지나 형편이던 별개로 하나님앞에서 이 땅의 사는 기준은 
같은 신앙인이라도 천차만별인데, 여러가지에서 제 고백과 같다고 느꼈습니다. 

이 땅에서 받는 외형적인 복의 크기만으로 하나님을 더 잘믿고 안믿고를 규정하는 
그런 흐름에 저도 의문을 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으로 같은 슬픔을 가진 분들과 하나되어 살라는 
선택과 복으로 저는 자꾸   받아들여집니다. 
과부가 과부의 심정을 안다니 과부가 되는 의미는 그런 것일꺼라고... 

마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모래바람 마시고 풍잔노숙하시며 
기어이 누명과 모욕으로 돌아가시도록 우리와 함께한 이유가 그렇듯! 

오늘 설날을 앞두고 조용한 병실에서 목사님이 남겨주신 글을 봅니다. 
재활병원의 특성이 휴일이나 명절엔 집으로 외박을 많이 가버립니다. 
병원으로 설 명절을 쉬러 온 막내 딸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사먹었습니다. 

이렇게 보내는 새해, 명절, 성탄이 벌써 몇번째인지 세는 것도 
헷갈립니다. 익숙해져가는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도 무뎌지는 중입니다. 

목사님께 책은 제가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지금은 우체국이 수는중이라 명절지나면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주소를 주시면 좋겠고 아니면 교회로 보내겠습니다. 

서로를 돌아보며 서로의 짐을 지라고 하신 하나님이 참 인정이 많으십니다.

IP : 112.**.***.209
 kammy (2012-01-22 09:40:35) 
  
목사님께서 주일이라 바쁠텐데 아침 일찍 마음을 다시 남겨주셨군요. 
IP : 58.***.**.3
 (2012-01-22 09:46:04) 
 
예! 주일이라 바쁘실텐데도...
저는 남들 쉬고 잘 보내는 주일이 부럽습니다. 
명절이나 성탄절 그런 때,
오늘은 주일에 명절 첫날이 겹쳤습니다. 
남자들이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듣는 여자들의 심정이 왜 떠오르지요? ㅎㅎ
(캐미님 제 쪽지는 보셨는지요?)
IP : 112.**.***.209
박영욱 (2012-01-22 22:32:50) 
 
`
'목사의 죄' 中
<잘되는 것이 주는 가치혼란>

지금은 교인들이나 목사나 잘되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잘되는 것은 물론 좋은 것이다.
성경에도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3서 1:2)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여기 무서운 유혹이 있다.
무엇이나 잘되고 보자는 생각이 신앙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된다. 무엇이나 잘되기를 바라는 것은 세상 사람의 세속적 사상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사도 요한이 사랑하는 교우들에게 전한 요한 3서 서문에 쓴 이 한 절로 된 성구를 삼박자 구원설로 각색한 것은 큰 착각이다. 그런 줄로 믿는 교인이 수없이 많다. 그 말은 편지 서식에 쓰는 교인에 대한 위로의 예문이다. 그것을 교리처럼 쓴다면 성경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 서신에는 그런 암시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신앙의 목적은 오히려 세상에서 잘되는 것과 거리가 멀다.
요한 3서에도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귀중한 가치로 가르치고 있다. 영혼이 잘됨과 범사에 잘됨을 평행선에 놓고 읽으면 곤란하다. 영혼이 잘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다는 뜻이다. 그 다음은 영혼의 잘됨으로 말미암는 어떤 것도 잘된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 성경의 정신이다. 여기에 신앙인의 가치관이 숨겨져 있다.

목사가 된 것이 잘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목사로 사는 그 모든 이후의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목사가 된 것은 잘되었으나 목사로 어렵게 사는 것은 피해가려고 한다면 배신이다. 목사가 목자(牧者)의 정신을 유지하는 기본이 흔들렸다면 한평생 목회를 해도 헛 일을 한 것이나 다름 없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목사들에게 미리 선언해두신 말씀이 마태복음 7장 15-27절에 기록되어 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다면 목사에 해당한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한 사람도 목사가 아닐까 싶다. 열심히 일하고 갔더니 주님은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시며 물러가라고 내쫓으셨다. 그 정도로 끝내지 않고 한 말씀을 덧붙이시기를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엄중한 판결까지 내리셨다. 여기서 '불법'을 알아야 한다. 

목사들의 우상은 목회이다.
목회를 잘하면 상급을 받는 줄 아는 것부터 바로 알아야 한다.
목사가 자기의 역량을 과시하여 자기가 무엇을 잘했다고 하는 그것이 불법이다.
예수님의 심판이 마태복음 25장에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목사의 상급은 양에 달렸다. 
양을 어떻게 먹였는가를 보시는 것이다.
목자의 평가는 그 양을 봐야 알게 된다. 양을 잘 길렀다면 좋은 목자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인이 잘 되어야 목회를 잘 한 것이다. 그런데 많은 목사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다.
자기가 잘 되려고 별의 별 짓을 다한다. 무슨 감투를 얻어 쓰고 교인들 앞에 나서서 그걸 자랑한다. 자랑도 모자라서 잔치까지 벌인다. 그런 것은 목회와 상관 없는 일이다. 오히려 목회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것이 교회를 병들게 한다. 교인이 잘 되면 그것이 목사의 자랑이다. 목사가 잘 되어서 교인이 기뻐하는 것은 경사가 아니라 망조다. 교인이 잘 되어서 목사가 기뻐하는 것이 교회의 축복이다.

어느 유명한 교수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분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만나서 악수 한 번 하는 데도 행복감이 넘쳤다.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고명하신 교수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랬더니 그 교수가 웃으면서 정중하게 나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었다. "목사님, 뭘 잘못 알고 계신 것 같군요. 원래 유명한 교수란 어디에도 없습니다. 교수란 일은 자기가 가르친 제자가 잘 되었을 때 얻게 되는 기쁨일 뿐입니다."

일개 교수도 그런 것을 알고있는데 목사는 왜 그것을 모르는가?
목자(牧者)가 곧 바른 목사라는 이 가치관이 흔들린다면, 그런 목사는 지금이라도 그만두든지 아니면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좋을 것 같다.

.

희망으로 목사님^^, 설 잘 쇠세요.
당신은 <집>이 없지만 사랑하는 <가족>이 있지 않습니까.
<가족>은 없고 <집>만 가진 사람보다는 낫지 않겠습니까.
IP : 180.**.***.147
 (2012-01-22 23:17:22) 
 
박영욱님
귀한 말씀 고맙습니다.
그 가족에 님도 계시겠지요?
샬롬!
IP : 211.***.**.116
 별빛 (2012-01-23 17:16:36) 
  
<우리의 마음이 부서진 악기처럼 무너져 있더라도 
하나님,그 분의 손에 들려져서 연주가 시작되면 
나는 영광의 쓰임받는 도구가 된다.>

나의..우리의 부서진 악기가 
주님의 손 길로 아름답게 연주 되기를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IP : 110.**.***.70
오직 은혜로 (2012-01-24 16:15:01) 
  
두 분이 만나실 날이 속히 오기를 바라며..
만나시면 또 올려주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