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발성 경화증을 앓는 안정숙(44·여)씨가 6인용 병실 창가 옆 침대에 기대 눈을 감고 있었다. 남편 김재식(52)씨는 말을 걸며 아내의 다리를 주물렀다. 3년 전 쓰러진 아내에게 마비 증세가 온 후부터 재식씨는 습관처럼 아내의 몸을 주무른다. 재식씨가 아내에게 간간이 이야기하면 아내는 조용히 웃다 가끔 고개를 끄덕인다. 아내는 말수가 적다.
“택배요!”
우체국 택배 기사가 조그만 박스 하나를 건넨다. 재식씨가 박스를 여니 크리스마스트리와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새겨진 향초, 책 한 권이 들어 있다.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한 여성이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부부는 편지 봉투를 열었다.
‘안녕하세요. 크리스마스를 남들처럼 밖에서 보낼 수 없는 님들께 향초가 좋은 선물이 되길 바랍니다. 향초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더 좋은 것을 보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2011. 12. 18.’
재식씨의 간병 일기가 담긴 블로그를 보고 누군가 선물을 보낸 것이다. 며칠 전 미국에 사는 ‘h님’이 이들 부부에게 선물을 보냈고, 재식씨가 이에 감사하다는 글을 올리자 또 다른 여성이 자신도 뭔가를 선물하고 싶다고 직접 향초를 만들었다.
희귀병에 걸린 아내는 향초에 새겨진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를 신기한 듯 쳐다보고 만지작거리다 코로 냄새를 맡는다. “아, 향기 참 좋다.” 아내는 아이처럼 웃으며 좋아한다. “크리스마스 선물도 받고 기분이 좋아졌네. 여보, 축하해.” 잠깐이라도 통증을 잊고 웃는 아내를 보며 재식씨도 웃는다.
“이번 크리스마스에 뭐하지?”
“글쎄. 지난해처럼 아마 병원에 있겠지.”
“우리 지난해에 뭐 했었지?”
“경아씨가 찾아와서 케이크도 먹고 파티 했잖아.”
“응, 맞아. 그랬었지.”
아내는 다시 눈을 감고, 재식씨는 아내의 다리를 주무른다. 지난 20일 충북 청주시 가경동 씨앤씨재활병원 405호에는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와 있었다.
밤이 깊다. 그리고 너무 길다
서울 양재동에서 직장을 다니던 재식씨와 아내는 시골생활을 꿈꾸다 16년 전 사과 향기 가득한 청주의 한 산골 마을에 내려왔다. 큰 돈은 없었지만 단란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2008년 아내에게 다발성 경화증이 찾아오면서 가정은 피투성이가 됐다.
병원에 찾아오고 걱정하던 친인척과 친구들도 3년이란 시간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아내의 병은 염증으로 신경이 죽고 몸이 굳어가는 희귀병이었다. 다발성 경화증도 여러 분류로 나뉘는데 아내의 병은 빠른 속도로 끊임없이 재발하는 가장 나쁜 케이스였다. 3년간 열 번이나 재발했다. 암센터에서 치료받다 호전돼 재활전문병원으로 이송, 다시 한 달 만에 고열이 올라 큰 병원으로 이송, 항암주사 투입, 다시 10일 만에 욕실에서 눈동자가 돌아가고 정신을 잃어 응급실행. 병명은 끊임없이 늘어갔다. 다발성 경화증, 중추신경계통 말이집탈락 급성횡단성 척수염, 시신경 척수염, 요로감염, 욕창성 궤양, 제3뇌 신경마비…. 아내의 온몸은 마비됐고 한쪽 눈은 시력을 잃었다.
재식씨는 2009년부터 다니던 가구 공장을 그만두고 24시간 병실을 지키며 밤을 샜다. 아내는 방광 세균 감염으로 소변 주머니조차 찰 수 없어 넬라톤 방식으로 소변을 직접 빼내야 했다. 배변 기능이 약해 관장약을 쓰고서도 1시간씩 힘을 주다 정신을 잃었다. 어두운 밤, 6인용 병실에서 남들에게 폐 끼치지 않으려 조심조심 소변을 빼내다 시트와 환자복을 다 적시는 날도 많았다. 그럴 때면 재식씨는 옷과 시트를 빨다 밤을 샜다. 아내는 한없이 미안해하다가도 가끔씩 신경을 곤두세웠고, 재식씨는 이런 아내가 섭섭해 화를 내고 병실을 나갔다.
‘속상하면 휙 나가서 마음 풀고 올 수도 있지만 아내는 거동조차 할 수 없다.’ 미안한 마음에 병실에 돌아오면 아내는 울고 있었다. 아내의 눈물을 닦아주다 재식씨는 오열하고 말았다. 어느 날부터 아내는 남편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 일부러 물이나 밥을 적게 먹었다.
외가에 맡겨진 겨우 중학교 1학년짜리 막내딸은 재식씨에게 전화를 걸며 울었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고. 아내가 잠들면 그는 매일 밤 병원 인근 숲으로 나가 울다 노래 부르다 소리를 질렀다. 차라리 그만 살고 싶다, 아내를 데려가 줬으면 좋겠다, 온갖 생각을 하다가도 죄책감에 고개를 떨궜다.
재식씨 형편에 어마어마한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빚을 내다 결국 집을 팔았다. 아내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병원비 청구서에 맥 빠진 아내 앞에선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큰소리 쳤다. 그래 놓고선 빈 통장을 들고 몰래 가슴을 졸였다.
‘하나님! 앞이 보이지 않는 밤이 너무 깊어요. 발길에 차이는 돌부리가 너무 많아요. 비탈도 언덕도 많아서 나갈 수가 없어요. 뼈와 살 한 점 속에 있는 기름마저 짜내서 불을 밝혀야 하나요? 누가 이 괴로움을 알아줄까요? 이 세상에는 평안을 얻을 길이 없는 걸까요? 모자라는 체력, 말라붙은 정서, 비어버린 통장. 아무에게도 계속되는 부담 주기가 싫어요. 계속해서 받아줄 사람도 없고요. 그게 당연한 세상살이고 사람의 속성 아닌가요? 이제 남은 선택은 무엇일까요?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지난해 온몸으로 울며 쓴 글이다. 생이 너무 가혹하다며 원망하다가 다시 신에게 매달리는 나약한 보통의 인간, 재식씨였다.
살아있다는 것
“참 신기해요. 그렇게 돈이 없었는데도 돈 때문에 병원에서 쫓겨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병실에서 만난 재식씨가 이렇게 말하자 아내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던 아내는 상태가 호전돼 남편의 도움을 받아 재활치료용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다. 물론 이마저도 5분 운동하면 한참을 누워 있어야 하고 언제 악화될지 알 수 없다.
재식씨는 병 때문에 많은 것을 잃었지만 얻은 것도 많다고 했다. 그는 절망과 희망 사이를 수없이 오가며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된 듯했다. 돈이 없어 궁지에 몰릴 때면 이름 모를 누군가 그에게 치료비를 주었고, 그렇게 그렇게 기적처럼 고비를 넘겼다. 재식씨의 블로그를 본 새로운 친구들은 편지나 선물을 보내며 부부를 위로했다.
통장 잔고가 8700원까지 떨어진 날, 대전의 어떤 이가 100만원을 보냈다. 재식씨는 그 돈을 형편이 어려운 교회에 보냈다. 그렇게 돈은 피처럼 돌고 돌아 어려운 사람들의 온기가 됐다.
“결혼하고 20년이 지나서야 사랑을 알았어요. 일상적인 부부, 아들딸의 부모로 지지고 볶고 살다 그냥 떠났으면 몰랐을 거예요. 이 사람이 얼마나 좋은지. 예전엔 아내가 어떨 땐 마음에 들고, 어떨 땐 마음에 안 들었어요. 없어지면 다시 볼 수 없으니까, 이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생각할수록 아내가 더 귀해요. 처음엔 죽고 싶다고 발악했지만 그러다 점점 깨달은 거지요. 사랑스러워요, 집사람이.”
이 말을 들은 옆 침대의 30대 여성 환자는 한숨을 쉰다. “아휴, 나도 저런 사람 있었으면.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나 보던 사람이잖아요. 병원에서도 잉꼬부부라고, 자상하다고, 저런 사람 없다고 다들 난리예요. 아, 부럽다.”
누워 있던 아내가 느릿느릿 웃으며 농담한다. “내가 예전에 잘하고 살아서 그런 거지.” 이 말 끝나기 무섭게 남편이 아내 자랑을 한다. “환자 노릇을 참 잘해요. 병원에서도 짜증 거의 안 내고. 정말 잘 참아요. 아내나 나나 힘든 걸 서로한테 반사하면 서로 못 견딜 텐데.” 이 말을 하는데 아내가 남편을 가리키며 말한다. “참 자상해요.”
이쯤 하니 슬그머니 옆 침대에서 “아휴” 하고 한숨 쉬는 여성 환자 심정에 공감이 간다. 옆 침대의 환자가 이렇게 말한다. “제 심정 이해가시죠? 아휴.”
70억 인구 중에서 만난 이 두 사람은 20년 넘게 가장 자주, 같이 한솥밥을 먹은 사이다. 남편은 오늘도 아내 입에 밥을 떠먹인다. 얼마나 더 오래 아내 입에 밥을 먹일 수 있을까.
재식씨는 넉 달 전 지인의 도움으로 아내를 간병하며 쓴 에세이집 ‘다 보고 계시지요?’를 냈다.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당신, 다시 태어나도 나랑 결혼할 거야?” 아내가 물었다. “아니.” 재식씨가 대답했다. 섭섭한 아내가 재차 물어도 여전히 재식씨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난 당신이랑 남편, 아내 말고 친구가 되고 싶어. 아주 편한, 친한 친구. 없는 형편에 살림하랴, 애들 키우랴, 시부모님 봉양에 너무 고생만 시켰잖아. 당신이 ‘어이, 재식씨 나 오늘 일 안 하고 쉴래’라고 마음 편히 말할 수 있는 친구 하고 싶어.”
재식씨는 인터뷰를 마치며 이런 말을 했다. “생은 불공평하지 않아요. 어떤 사람은 겉은 부자지만 속이 부자가 아니잖아요. 우리는 가난하지만 마음은 부자에요. 일방적인 부자도 가난한 자도 없으니까 공평한 거잖아요.”
재식씨와 아내를 만나고 돌아오는 서울행 고속버스에서 새삼 두 손 모아 기도를 했다. 숨쉬고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사랑하는 이들이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오늘 희망하고 내일 절망하더라도 모레 다시 희망할 것이다. 그게 ‘가난한 부자’ 재식씨의 삶이다.
청주=글 박유리 기자, 사진 곽경근 선임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