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강남 삼성병원에서 새벽에 충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계속 빠진 체중이 63키로에서 10키로나 빠져 53키로를 오가고
시도없이 현기증이 자꾸 났다.
운전을 하고 일을 하러 가야하는데 불안해서 휴게소마다 쉬었다.
응급실 입원실을 들락거리며,
수시로 1층 로비 의자에서 새우잠을 자고 했더니 그런 것 같다
오늘 일산 국립암센터를 혈액검사를 맡기고 부리나게 내려가는데
문득 그때가 떠오른다.
이제 체중도 제자리로 돌아왔고 현기증도 줄어들었다.
2년반쯤 전과 지금 무엇이 달라진걸까?
돌아보니 아마 몇번의 포기를 하면서였던 것 같다.
처음 진단이 나오고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들었을때는
죽을까봐 겁이 났고, 살려줘야만 한다고 매달렸다.
그러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많았었다.
어둡기만 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쿵쿵거리고 좌불안석이었다.
잠을 잘려고해도 가위가 눌리고 자꾸 악몽에 시달렸다.
그러기를 몇번... 마침내 지쳤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계속되는 질문, 애원들
결국 나와 똑같이 무서워하는 아내를 붙들고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준비를 하자고 했다.
'그동안 우리 참 행복했고 아무 미련이나 후회없잖아?'
살아야만 한다는,
죽기 싫다 무섭다는 집착을 내려놓기로 했다.
남은 아이들이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살아온 날들을 정리하니
밑지지도 억울하지도 않고 오히려 감사하다는 결산이 나왔다.
어쩌면 숨차고 신경통증에 시달리던 아내는
나보다 더 빨리 내려 놓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러고 나니 오히려 밥도 먹게되고 잠도 조금씩 편히 자게 되었다.
혹시 우리를 같이 데려가시면 더 좋을텐데... 하는 바람도 가지니
그런 곳을 자청해서 가고도 싶었다.
이슬람 선교지라도...
몸은 추스려도 그치지 않는건
현실적인 병원비용, 생활비용들이었다.
꼬박 꼬박 청구서의 액수는 늘어나고,
아직 수입이 없는 두 아들과 딸아이는 계속 돈이 필요했다.
이리 저리 빌리고 팔고 떼우다,
결국은 빚이 늘어나고 심지어는 기도원의 밥값 숙소비도 몇달이 밀렸다.
일주일에 삼일 사일을 둘째아이와 교대로 아내를 돌보며
일하고 오고 해도 그걸로는 모래땅에 물붓기였다.
새발의 피라고 했던가? 조족지혈...
결국 민망하고 쪼달리는 한숨을 감당못해
시골의 얼마나가지도 않는 집을 팔아치웠다.
어머니를 모시느라 장만했던 시골 구옥,
시어머니 조카 둘, 우리 다섯!
그렇게 8식구가 재미있게 살며 아이들이 자란 추억이 담긴 곳,
돈 액수보다 한 열배는 값어치가 나가는
나와 아내의 정성이 담긴 집이었다.
직접 심야전기보일러실 겸 아이들방을 조립식으로 만들었고,
한쪽 마당에는 목재로만 열평정도의
아내의 그림 작업실겸 휴식처도 만들었다.
여기저기 전부 직접 만든 가구며 테이블, 아내가 쌓은 돌담 등...
그 모두를 포기하고 싼값에 마을 분에게 팔아넘겼다.
그렇게 빚도 일부 갚고 당장 먹고 쓸 비용은 마련했다.
그러고나니 목이 조일것 같이 구차하던 심정이 편해졌다.
어차피 들어가 살지도 못하면서 겨울이면 빈집에 얼어터진 수도나 교체하고
여름이면 잡초 풀밭이 된 마당 정리하던 일도 더 안해도 되었다.
이것마져 잃을까봐 전전긍긍하던 재물과 돈의 압박을 내려버렸다.
이제 빈 손이 되면 아무 산아래나 쓰러진 빈집이라도 몰래가서
그냥 자리깔고 죽기를 기다려야지 작정했다.
잠시도 아내의 옆자리를 비울수도 없고,
갚을 길 없는 빚을 내는 것도 못할 일이고,
그러니 그렇게 간다해도 결코 자살은 아니지 않을까?
하나님이 안주시고 데려가시면 가는거지 우리가 무슨 힘이 있나?
그렇게 배짱이 생겼다.
돈으로부터도 마음을 비우니
오히려 아이들이 오면 맛있는 것도 사줄수 있었다.
그래봐야 기껏 돈 만원 안팍의 치킨이나 피자였지만!
그렇게 우리를 생명과 재물로부터 포기시킨건
순전히 주님의 말씀이었다.
들에 핀 백합보다 귀하고
공중의 새보다 귀한 생명이라고 하시며,
'무엇을 먹고 입을지 걱정말라 그런다고 키가 자라겠냐?' 하신 주님!
그런데 죽지도 않고, 살아서 평안이 왔다.
건강도 회복되고 산밑 빈집으로 가서 누울 일도 안생겼다.
마음의 걱정 염려도 없어져 잘 자고 잘 먹고~~
세상살다가 포기하고 주저앉는 사람들 많이 보았다.
남의 이야기 필요없이 나도 그랬다.
어릴때 낮에 신문배달 밤에 검정고시 준비하다가
해도 해도 꼬이고 몸의 고단함도 이겨내기 힘들어
딱 한번 자살을 기도했었다.
아직 예수를 만나기전이었다.
을지로 국립의료원에 삼일을 있다가
밤에 환자복을 입은채로 도망나왔다
단지 창피하고 민망해서...
그렇게 세상의 방식은 포기하면 죽는 길이다.
그런데 주님이 주시는 포기는 그런게 아니었다.
정반대의 현상을 불러왔다.
살아야만 하는 집착을 포기하니
죽는게 아니라 죽어도 원망않고
겁 안나니 사는 날까지 편할수 있게 한다.
먹을건 먹고, 웃을 건 웃고!
오히려 자유로워지게 하는 묘한 포기였다.
재물도 마찬가지다.
꼭 움켜쥐어도 불안하고
그것 없으면 다른 값진 것조차 포기하는
세상의 포기와는 다르게
주님이 주시는 재물에 대한 포기는
오히려 없어도 초조하지 않게 해주었다.
꼭 쓸곳엔 기쁘게 탁탁 털어 사용하면서도 짜증나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거나 원망도 하지 않게 되었다.
성공만 바라보다 포기하는 세상의논리는
낮은 자리 꼴찌를 외면하지만
주님이 주시는 포기는
모자라고 낮은 자리의 성취도 감사하게 만들었다.
꼴찌도 귀한 사람이라고 품어안게하는 놀라운 포기였다.
죄나 실수는 작고 사람은 훨 귀하다는 인식을 하게하는
주님이 주신 포기!
그 모든 포기와 체념들이
세상의 방식과는 다르게 평안을 가져오는 길이었다.
그렇게 포기하지 못하고 하나의 길만 있다고 보았을때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돌아보니..
오늘 혼자 운전하고 내려가는 이 시간들이
예전의 한때보다 많이 달라진 평안이 함께하는거
순전히 주님이 주신 포기,
높은것, 많은것 등 한쪽만 보지말라는
넓은 면에서 포기의 가르침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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