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자정이 넘은 시간에 편의점을 갔다.
밤중에 넬라톤이라는 소변을 빼주는 처리를 하려면
다들 자는데 불을 켤수도 없고 해서 작은 후레쉬를 머리에 쓴다.
두 손이 다 필요하기 때문에 들고 할수도 없고...
어떤 사람은 입에 물고 하기도한다.
물론 큰 병원은 개개인 침대마다 따로 불을 켜는 조명이 있지만
작은 재활병원들은 흔하게 그런 시설이 안되어 있다.
상가 건물을 내부 인테리어만 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건전지가 다 되어 불이 약해서 간신히 사용하곤
아무래도 새벽에 또 한번 할텐데 불안해서 안되겠다 싶어 사러갔다.
가는 길에 나눔이에게 자는지 문자를 넣었더니 아직 안자고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자야겠다고 해서 끝냈다.
"잘자! 내 꿈꾸고! 니꿈은 내가 꾼다~~"
이게 언제적 멘트인데 아직 사용하다니...
그래도 아이는 익숙해서 별 낮설지않게 소화한다.
참는건가? 느글거리는 애정세례를~~ ㅎㅎ
그러고나서 돌아오다가 갑자기 처량한 생각이든다.
가족이, 그것도 아직 열대여섯 된 딸아이와 맨날 이러고 살다니...
거실에서 안방과 작은방으로 헤어지며 하는 인사도 아니고,
어떤 사람이 그런말을 했다.
그냥 어디 외국으로 유학보낸 딸처럼 생각하고 살아봐! 하고...
물론 그것말고도 어디 여행중이거나,
아님 내가 외국으로 돈벌러 나와있는 중이거나,
뭐 좋은 일인데도 떨어져지내는 온갖 경우를 떠올리며 살 수도 있다.
말하자면 착각을 할만큼 마인드컨트롤 해가며 위로해보라는 거다.
하지만 난 그게 싫다.
그건 사실도 아니고, 한편으로 깨지면 더 크게 다칠 속임수 일뿐이다.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중에는 억울한 경우도 있고,
벌받는 힘든 사람도 있고, 더러는 좋았다 나빴다 하기도 하는게 당연하다.
만약 자기 마음을 속일수 있어서 생이별을 하고도
우린 지금 좋은 일로 떨어져지내는 중이야! 그렇게 최면이 된다면
세상에 가족을 잃고 우는 사람이 있을까?
마치 아침에 일하러 직장에 간 것처럼,
공부하러 학교 가서 떨어져 지내는 중인것처럼 마음 먹을수만 있다면
누가 그 시간에 종일 울며 기다리겠는가?
그렇듯 아무도 슬퍼하지 않겠지,
그러면, 그러면 사람이 가장 현명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사는게 되는걸까?
본질적인 늙고 병들고 죽고, 이별하고 그건 변함이 없는데,
단지 자신도 속이고 남도 속인 거짓만 가득찬 세상이 되는데...
아무도 더 이상 남의 슬픔과 고통에 귀기울이지않고 동정하지 않으며
굳이 아무런 사랑도 나눌 필요가 없는데..
사랑이 왜 필요하며 나눔과 동행이 왜 필요해질까?
그런 끔찍한 세상이 싫어
나는 그냥 고통을 고통으로,
생생한 이별을 이별로 받아들인다.
할수만 있다면 그 고통과 이별 속에서도
부디 여린 새싹같은 생명의 느낌을 잊지말고 살기를 기대한다.
그걸 공감하는 사람들과 함께 다독거리며
누군가 등 두드려주려고 기다리는 그날까지 살고싶다.
그래야 짐 내려놓는 날,
그날이 확실히 고통이 끝장나는 해방의 첫날이 되지 않을까?
'이것저것 끄적 > 날마다 한 생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철수교수님께 드리는 감사편지 (0) | 2011.11.14 |
---|---|
머리로는 아는데 가슴으론 안되는 것들... (0) | 2011.11.10 |
건전지 빼고 심장을! (0) | 2011.10.29 |
'선택'은 '버림'입니다. (0) | 2011.10.27 |
알맹이는 가고 껍데기만 남았다? (0) | 2011.1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