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으로 내다 보는 하늘이 깨끗한 푸름입니다.
아무 티도 군더더기도 없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우리네 살아가는 일도 늘 이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봅니다.
문득 누군가의 말이 기억납니다.
24시간 날마다 맑고 푸르기만 하면 십중팔구 사막이 되고만다는...
풀도 나무도 물도 없는 사막,
아름다운 사진이야 나올지 몰라도 살기에는 괴로운 곳입니다.
정말 날마다 아무 일도 없고,
화내고 슬프고 외롭지도 않는 날들만 계속되면
고마움도 반가움도 없어져 마음의 사막이 되고말까요?
그래도 그런 날들에 파묻혀 살고 싶어지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 찾아보니 그런 곳이 있습니다.
추위도 더위도 배고픔도 없고,
다툼도 외로움도 매맞을 일도 없는,
고요하고 변동없는 날들만 계속되는 곳
바로 공동묘지, 그속에 누운 사람들입니다.
오랜 병원생활로 이곳 저곳 떠돌다보니
참 많은 룸메이트들을 만나고 헤어지곤 했습니다.
그중에는 친구 형제보다 잘대해주고 힘이 되었던 분도 있었고
또 어떤이는 무거운 마음을 더 할퀴어 우리를 괴롭게 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고를수도 없고,
반대로 어떤 사람에겐 우리가 그런 맘에 안드는 새 룸메이트가
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 많던 만남들을 돌아보며 기억하는 것도
양이 많아져서 한참 걸리기도 합니다.
죽음을 넘나들다 벌써 세상을 떠나셨을 분도 여럿입니다.
웃다가 울다가 가족들이 그렇게 버티고 앞으로 가고 있을
몇몇도 떠오릅니다.
새로운 병원으로 가서 병실을 배정받고 짐을 풀면서
이미 계시는 분들을 살펴보며 마음을 졸이던 기억때문에
우리가 있는 병실로 새로 오는 분들을 보면 그 고단함이
짐작되어 안쓰럽습니다.
아주 고치기 힘든 병으로 판정이 나고,
나날들이 고통스럽게 지내는 병상생활을 하는 분을 만나면
덩달아 내 마음도 깊이 무거워집니다.
왜 어떤 사람은(대개는) 일평생 이런 고통없이 살다가고
어떤 사람은 죽지도 못하고 살아서 곤욕을 치르며 가는걸까?
항의성이 다분히 담기는 의문을 가지게됩니다.
마음의 리듬이 좀 밝아지거나,
병의 증상이 좀 나아져서 기운이 날때면 만화속의 캔디처럼
울지않고 씩씩하게 이겨낼것처럼 팔을 걷어부치고 웃다가도
두어가지의 어려움이나 속상할 일이 내리오면
바로 궂은 장마비가 쏟아지는 한 밤중 같아집니다.
우울증보다 더 무섭다는 조울증을 징검다리처럼 건너갑니다.
실화를 바탕으로한 엔도슈사쿠의 '침묵'이라는 소설에는
포르투칼 신부로드리꼬가 배교자의 밀고로 잡혀 고문당하는 부분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성화를 가져다놓고 발로 밟으라고...
거절하면 한명씩 고문해서 죽이고, 신도중에서도 제발 배교하더라도
자기들을 살려달라고 원망과 애원을 합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예수님은 언제나처럼 그저 침묵만 하십니다.
마침내 로드리꼬 신부는 성화를 발로밟고 배교를 해서
신도들을 살리기로 결심을 합니다. 순교보다 더 어려운 결심을...
자살을 할수도 없는 성직자를 죽이지도 않고 고문하며
신도를 보는 앞에서 죽이는 것을 계속 보기란 죽음보다 괴로웠을 겁니다.
죽은 뒤에도 영원히 배교자라는 낙인이 따라다닐 길을 선택했습니다.
누군가를 살리는 것이 주님의 뜻일거라는 한가닥 소신만 붙들고,
마침내 예수님의 초상화를 밟기 위해 발을 들었을 때
발에 심한 통증이 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동안 침묵만 하셨던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밟아도 좋다.
네 발의 아픔을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밟아도 좋다.
나는 너희에게 밟히기 위해서 세상에 태어났고
너희의 아픔을 나누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것이다"
- '사도행전속으로' 4권에서 인용했습니다.
어쩌면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도 힘들고 두렵지만
더 괴로운 것은 죽지 못하고 살아내야 하는 긴 세월이나
순교가 아닌 배교를 선택의 여지없이 하는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오랜 병상생활을 하는 분들이 겪는 상황이 그럴수도 있습니다.
특히나 난치병을 앓거나 크리스찬일 경우는 더더욱...
죽는 것도 허용이 안되고,
제대로 살 수도 없는 상태로 온 가족들을 구덩이로 끌고 가는 생활,
그것을 맨 정신으로 지켜보고 참아내야하는 이중고통...
쉽게 힘내라!거나 믿음으로 기적을 일으키라고 주문하기엔
그 순간 순간들이 너무 길고 지루한 고통입니다.
어느날 예수 믿는 사람은 모두 처형한다는 공문이라도 붙는다면
그 장소 그 시간으로 기꺼이 가서 자랑스럽게 죽을 수도 있을겁니다.
오죽하면...
이 상황을 견디며 배교(신뢰를 포기)하지 않고 산다면,
분명 순교에 버금가는 믿음으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모양은 볼폼없이 비틀거리겠지만...
오직 하늘의 음성이 필요합니다.
'침묵'에서 마지막 순간에 들려 온 예수님의 음성처럼,
'밟아도 좋다.'
'밟아도 좋다.'
'밟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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