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바람속의 죽음, 바람속의 주

희망으로 2011. 7. 30. 10:22

 

바람속의 죽음, 바람속의 주!

 

병원에서 가장 나를 주저앉게 하는 것은

아픈 아내도 아니고,

무서운 주사를 놓는 간호사도 아니고,

간들간들 바닥을 긁어대는 병원비 마련도 아니다.

 

기 쓰고 땀 빼며 아픈 사람 돌보는 중에 들리는

이러고 살면 뭐해..., 차라리 콱 죽어버리는 게 낫지!’

한숨과 비탄이 섞인 소리로 좌절하는

한 병실 옆 침대를 사용하는 환자들의 말 한마디다.

 

어느 정도 시간을 같이 지내다보면 서로 사정도 알고

구석구석 아픈 정도도 알만하니 실감이 난다

그래서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 우리도 확! 죽어버리고 싶은 때 부지기다...’

속으로 그러면서,

 

어느 때는 안타까움으로 달래도 보고

어느 때는 성질이 나도록 밉게 들리기도한다.

그 사람은 그 말들이 얼마나 우리를 맥빠지게

주저앉히는지 잘 모를거다.

알고서도 그런 말 쉽게는 못할테니....

 

그런 부정적이고 절망적인 말들은

바람이 되어 병실을 썰렁하게 휘돈다.

빠른 속도로 음산하고 슬픔과 짜증의 감정을 일으키며,

마치 죽음의 냄새를 머금은 해골계곡의 바람같이...

 

그중에는 죽을 정도도 아닌데도

습관처럼 하는 이도 있고,

다른 사람이 약 먹을 의욕도 꺾는

모진 말로 하는 이도 있다.

 

왜 안 그럴까,

하반신이 덜렁거리는 쓸모없는 짐이 되어버리고,

가족들을 망치고 나아질 가망도 없다는

최종진단서를 받은 사람이 흐린 날이 왜 없을까,

 

일어나고 힘내고 다시 치료해도

끝없이 돈을 빨아먹고 거듭거듭 수술을 해대는

중증의 환자나 가족들,

아내처럼 희귀난치병 이라는 명패를 덜컥 안고 사는 이들,

그 모든 사람들이 밟고 살아가는 바닥은 단단한 땅이 아니고

얼음같이 차지만, 얇은 유리 같은 살얼음판이니...

 

병원 아니라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 다 그렇겠지.

누구든, 무엇을 하든

그런 죽음 같은 바람 수시로 불겠지.

 

그 죽음같은 바람을 밀어내고 바꾸는 또 하나의 바람,

하늘에서 비둘기같이 온유하면서도

불같이 쏟아지는 성령의 바람,

지나간 자리마다 죽은 것들이 다시 살아나고,

슬픔과 애통의 소리가 사라지게 하는 주님의 힘이다.

바람속의 주!

 

오늘도 아래를 내려다보면 무저갱이고,

옆을 보아도 앞날을 보아도 검은 구름떼만 들어오지만

한줄기 바람으로, 그 속에 살아서 다가오시는

바람속의 주님을 끌어안는다.

기운이 좀 나면 다른 이들에게도 가라고 밀어 보낸다.

 

(그 옷차림 스친 곳에 스며있는 향기를.

그 발자국 패인 곳에 굳어있는 믿음을.

 

바람 부는 돌밭 속에서 가득 안은 이 기쁨.

내 이젠 다시 헤메이지 않으리.

바람 속에 내주여....

 

그 뒷모습 혼자이나 어디에나 계시고.

그 목소리 아득하나 바람처럼 가득해.

 

간절하게 올린 기도로 만나 뵈온 이 기쁨.

내 이젠 다시 외로웁지 않으리.

바람속의 내주여......- 유경환-바람속의 주)

 

아무도 모르게 독창을 속으로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