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종합세트로 몰려온 우울한 하루...

희망으로 2010. 11. 18. 00:06

종합세트로 우울함이 몰려 오는 날

맑은 하늘인데도 먹구름과 쏟아지는 비를 맞는 착각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오늘 나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맑은 날인데도 고개만 숙이면 비가 쏟아지고
온통 먹구름이 천지를 덮어서 컴컴한 기분을 경험했습니다.
이런 날이 자주야 없지만 요즘 들어 잦아진다는게 한편 두렵기도 합니다.

나도 밝은 이야기로 남들을 기분 좋게하고 나도 웃어지는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어느 누가 늘상 진지하고 심각하며 마음을 쥐어짜는 이야기를 좋아라 듣고 싶으며 무슨 환영을 받겠습니까?
모르는 것도 아니고 바라는 것도 아닌데 자꾸만 ‘죽음’'슬픔’이나 ‘인내’,
뭐 그런 종류의 무거운 제목 무거운 주제, 무거운 내용을 자꾸 말하게 되는 것이 많이 속상하고 때론 그렇게밖에 못하는 자신이 미워집니다.

크게 나쁜 일이나 상태가 안좋은 것도 아니고, 큰 고민거리가 생긴 것도 아닌데,우울한 일들이 잔 파도처럼 계속 몰려온 날이 되고 말았습니다.
벌써 6년이 넘도록 시립병원에서 거의 돌아가실 날만을 기다리는 형편인 어머니가 요즘은 자꾸 내 마음을 무겁게 하고 미안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시골 충주에서 모시다가 결핵 당뇨 위암 파킨슨 치매까지...
도저히 가정에서는 더 모실수 없는 상황이 되어 울산 시립요양원으로 가신지도
벌써 6년째가 되어갑니다. 아내가 집에서 모실때는 이틀에 한번씩 직접 인슐린 주사를 놓아드리고 날마다 혈당체크를 하곤 했지만 갈수록 심해지는걸 감당 못했습니다.

이제 집사람도 3년째나 보호자없이는 못 지내는 병원신세를 지는 마당에 나는 생이별 중입니다. 어머니와...
오늘 울산 병원을 다녀온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한쪽 팔이 죽어가는 현상을 설명 듣는데 아프던 마음이 울컥 치밀어 오릅니다.
뼈만 남고 가죽이 살짝 덮은 팔순이 넘은 어머니의 팔이 굳어지고 혈액 순환이 안되면서 각질로 변해가며 죽어가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러다가 어머니 살아계셨을 때 얼굴도 한번 못 뵙고 이별하는 것은 아닌지 철렁합니다.
특별히 우리 둘째아들 내외를 더 마음에 애처로워하시며 마침내 같이 살기도 했던 어머니가 어쩌면 돌아가시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무겁게 짖누릅니다. 큰형님께 나는 사람 구실도 못하고 이게 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 하는데 깜박하면 소리내어 울뻔 했습니다. 병실인줄도 잊어버리고...

그런 과정을 옆에서 다 듣던 아내는 시무룩해졌습니다.
그런 마음 답답한 일들이 다 자기 때문에 생긴다는 죄책감이 들었나봅니다.
나는 참 여자 복은 없나봅니다. 세상에서 나를 지극히 사랑해주는 두 여인이 다 병원에서 힘들게 고통을 겪고 있고, 나는 해줄수 있는게 별로 없이 맥놓고 있다니 말입니다.

어떤 날은 한 번에 지독한 근심과 우울함이 몰려와 견디기 힘들기도 합니다.
차마 신앙을 가지고 버틴다고 말한 입장에 덥썩 죽을 수도 없어 그저 속으로 기분만 냅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자살을 합니다.
나 죽었다! 못참겠다! 그러면서...
그러다가 에휴! 맘대로 죽지도 못하네! 하며 툴툴거리며 다시 일어납니다.
이러다 정말로 어느 날은 정신을 못차리고 실습을 할까봐 몸서리가 쳐집니다.

저녁 나절에 막내아이 나눔이는 전화를 해서 또 기운이 빠졌습니다.
차타고 나가서 보충학습 받는게 너무 힘들어 방학동안에 하는 영어활동을 안하겠다고 했는데도 오늘 선생님이 기어코 불러서 오게 시켰다는 겁니다.
버스가 하루 4번 들어오는 구석 마을에서 방학 동안 학교를 다녀 오는게 너무 싫다는 겁니다.
하루가 다 깨져버리고. 그것 말고도 두 주나 자율학습이라고 출석하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활동까지 하면 거의 쉴 날이 없어서 속상한다는 겁니다.
복도에서 기어코 울었는데 친구 한두 명과 사회 선생님이 보았는데 그래도 하라고 했다면서 정말 싫다고 그럽니다.
그래서 내가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안하게 해주겠다고 하니 또 그건 안된다는겁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부모에게 일러서 안가는건 별로 내키지 않는다면서 하기는 하겠는데 감정이 복잡하다고... 나도 감당이 안되어 그럼 어쩌라고? 하면서 전화를 아내에게 떠 넘겼습니다.

그러고 두어시간 후 아무래도 마음이 걸려 다시 전화를 했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시무룩하게 대답을 합니다. 온갖 이야기로 조금 풀어져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다음에 만서 이야기하자 그럽니다. 그러니까 기말고사가 끝나는 12월15일, 약 한달 뒤입니다. 그렇게 한달에 하루밤, 열두번을 자면 일년이 지나갑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열두밤을 같이 보내면 일년이 지나가버리는 현대판 전설...

그런데 밖에 나가서 한시간 반을 앉아 있다가 들어왔답니다. 시골 마을에 불도 없는 작은 길에 쭈구리고 앉아서...
왜그랬냐고 물었더니 요즘 주위 사람들이 다 자기를 싫어하고 귀찮아 하는 것 같아서 슬프답니다. 엄마 아빠조차도 그런답니다.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 지금은 마음이 상하고 외로워서 그렇게 느껴져도 내일도 모레도, 365일 그렇지 않다는 건 너도 알지 않느냐? 하면서 달랬습니다.
나도 지금 두어시간은 걸으면서 마음을 좀 달래려고 병원 밖을 나와 있다고 말했더니 옷 잘입고 춥지 않게 다니라고 말합니다. 자기는 좀 추웠다면서!
...14살 짜리 중학교 1학년이 사는 게 왜 이리 어른처럼 힘들게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고는 아마 우리가 나중에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필요한 훈련을 받는 것 같다.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닌데 경험을 하는걸 보면,
그때까지 잘 견디어보자! 뭔 나도 잘 안 믿어지고 실천하기 힘든 어려운 말을...

사실을 고백하면 어떤 때는 아이가 우는 것을 감당하기 싫을 때도 있습니다.
달래도 듣지 않고 감정의 기복이 심해져서 말꼬리를 물고 원망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럼 사실 귀찮아지기도하고 속상해서 삐치기도 합니다.
오늘은 그러다 좀 미안해졌습니다. 그래도 내가 이 땅에서 사람중에서는 몇 손가락안에 들게 사랑하고 모든 걸 주어도 아깝지 않다고 늘 생각하는 딸에게도 귀찮고 실망을 느끼니 정말 그보다 덜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인들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겠냐 싶어서...

그러고보면 딸 아이 나눔이가 나의 시험지입니다. 나의 덧없는 주님 닮은 사랑을 하겠다는 허구를 깨뜨리는!
이제 나는 다시 훈련을 해야겠습니다. 마냥 사랑스럽다는 아이에게마저 변함없는 친절과 애정을 베풀지 못하면서 어떻게 훨씬 덜 가까운 사람들을 주님이 말하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겠습니까. 멀고도 먼 나의 연약한 성품이라니...

마음 같으면 새벽 동이 트는 시간까지 하염없이 밤을 새며 산길을 오르내리며 걷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내겐 그런 여유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두시간만 되면 아내의 생리적인 소변 받아낼일이 나를 초조하게 만드니 병원으로 빨리 들어가보아야 합니다.
이런 내가 무슨 배짱으로 밝고 가볍게 웃음을 줄 글들을 올리겠습니까.
맘이야 굴뚝 같고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하지만!

길고 긴 하루가 오늘을 마감합니다.
여지없이 오늘도 속으로만 자살을 몇 번은 한 것 같은 우울한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또 견디고 살아 남은 날들입니다.
부디 안 들은 듯 가볍게 들어주셨기를 염치없이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