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람과 점심을 먹고 좁은 침대에 마주 앉았다.
경직된 팔다리를 풀어주느라 자주 하는 일이다.
다리를 끌어 올리고 굽혔다 폈다 운동을 시켜주면 '아 시원하다!' 그런다.
"어느 날 몸의 지체들끼리 불평 섞인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있었대
팔은 온갖 일은 거의 자기를 이용해서 쉴 새 없이 한다고, 너무 힘들다 하고
다리는 움직일 때는 꼭 자기가 가야하고 종일토록 서있는 날도 많다고 하면서 불평했대.
둘은 심장을 보고 ‘재는 맨 날 보호만 받고 우리가 힘든 일 할 때도 거들지도 않는다고 흉을 보았대.
심장이 가만 생각해보니 미안도 하고 쓸모없는 자기를 비관하면서 그냥 죽어버렸대.
어떻게되었냐고? ...당연히 그 잘난 팔 다리 다 따라 죽었지 뭐,"
그 이야기 뒤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합체한다면 당신은 심장해 난 팔다리 할께,
사실 지금 우리가 그렇게 분담해서 살잖아."
아내는 자기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산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려하는걸 난 안다
그래서 더욱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어쩌면 당신이 더 중요한지 몰라 사람이 팔다리는 없어도 살지만 심장없이는 못살잖아.
겉으로 보기도 난 당신의 팔다리 노릇을 하고있잖아. 당신은 내 심장이고,
당신은 나없어도 살 수 있어 하나님도 계시고 병원도 있고,
그러나 난 당신 없으면 뻥 둘려버린 심장 없는 사람처럼 되어 못살거야.“
그리고 덧붙였다.
“나중에 당신이 먼저 가면 난 인공심장이라도 있어야 살아갈수 있을거야.
내 손으로 따라 죽을 수도 없고, 미리 양해를 구하니 용서해줘. (^.^ ㅋㅋ)“라고,
팔다리만 가지고 살수는 없다는 궤변에 아내는 웃기만 한다.
'당신은 남의 도움 없으면 숨쉬는 것 빼고는 꼼짝도 못하니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어쩌면 더 불행한 사람도 있어.
단 한 번도 기뻐하거나 사랑받아보지 못한 채 발악하며 사는 사람도 많거든
사지 멀쩡한 채로...
누구를 사랑해보거나 도움 한번 준적도 없이 찌들리고 원망만 가득한 채 산다면
누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누가 더 불행한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겠어?
평생을 그렇게 사는 사람보다는 자주 감사하는 당신이 더 행복한지도 모르잖아!'“
눈에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팔다리가 다 달린 사람들이 더 건강해보일런지 몰라도
안 그런 사람, 안 그런 때가 종종 더 많은 걸 이 세상에서 본다.
정말 행복과 불행은 한 줄로 세워놓고 어디까지 가지면 행복하고 어디까지 없으면 불행이라고 단정 할 수는 없다.
몸은 망쳐도 영혼은 망치지 못하는 것에 두려워말라고 성경은 말했다.
몸 때문에 영혼도 망치면 우리는 사탄에 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디에 있냐 하고 사람들이 물으면 당신을 보여주며 봐라 여기 있다.
몸은 망쳐도 영혼은 망치지 못하도록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 보이지 않냐고!
그럴수 있도록 살자.
"...근데 난 어디서 이런 지혜로운 말이 잘 나오는거야?" 하며 말했더니
아내는 싱겁다는 듯 웃는다.
'그래 그렇게 한번 씨-익 웃으며 비웃어줘야 내가 안 민망하지.'
정색하고 죽자살자 따지면 사람 피곤하고 민망해지지. 했더니
한번 더 웃는다.
...어째 좀 묘한 기분이다. 이번에 웃는 건 무슨 뜻이야?????
사실 난 아내가 따지고 들면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총각 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느닷없이 새벽기도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다니던 교회가 보육원 안에 있었고 목사님이 아는 분이어서 그냥 그리 다녔다.
그런데 정말 설득력 없게도 무슨 신앙의 센티멘털이 몰려왔는지 이유 없이 새벽기도를 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나간 새벽기도회는 할머니들이 모두 였고 딱 한사람이 젊은 처자였다.
나중에 알고보니 목사님 가족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며칠을 나가는데 도데체 기도 할 제목이 없었다.
어디가 아픈 것도 무슨 시험을 앞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성공이나 욕심도 없었으니...
생각다 못해 얻은 기도 제목이 엉터리 같지만 ‘참한 배우자’였다.
‘어차피 결혼은 할거고 그러면 성격 좋고 신앙심 깊은 예쁜 동반자를 보내 달라고하자!’
그 뒤로 몇몇 사람들에게 말해 보았지만 별로 안 믿어주는 진짜 농담 같은 사실이다.
그렇게 시작된 기도가 택시를 타고 10분이 넘게 걸리는 만만치 않은 거리를 거의 100일 가까이 나갔다.
중간에 출장을 가거나 몸이 아플때 빼고는 거의 채운 것 같다.
(그 뒤로 아내가 처음 발병해서 사경을 해메기 시작하면서 생애 두 번째로 새벽기도를 100일도 넘게 하였다.)
얼마 후 다니던 직장에서 아내를 만났다.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총무경리과로 들어 온 아내를 처음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얼굴에 햐얀 분을 바르고 입술에 빨간 화장을 했다는 단하나의 이유로!
난 그때 그렇게 고지식하고 담백한 사람을 좋아했었다.
나중에 살면서보니 아내도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아내가 눈에 들어왔다.
1986년 4월1일 만우절
처음으로 아내에게 밖에서 한 번 만나자고 직장 동료들 몰래 말했다.
그리곤 기다렸는데 바람을 맞았다.
다음 날 내가 서운하다고 했더니 아내는 많이 당황해 하면서 사과했다.
만우절이라 당연히 농담인 줄 알았고 마침 저녁에 야근 지시가 내려 늦게까지 일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럼 오늘 다시 나와요 했더니 정말 나왔다.
그런데 처음 밖에서 둘이 만난 그날 첫 데이트에서 나는 결혼 신청을 해버렸다.
...당연히 펄쩍 뛰며 아내는 곤란해했다.
그래서 그러면 내일 부터는 그냥 직원으로만 지냅시다 하고 헤어졌다.
문제는 다음 날 일어났다.
아내는 내 사무실로 들어와서 문을 꽉 닫아버리고 몸으로 버티고 서서 따졌다.
‘세상에 처음 만난 자리에서 결혼해달라는데 생각할 시간도 없이 예! 하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하면서!
그러나 안양 스카이라운지 커피숖에서 두 번째 만난 날 아내는 나와 결혼해주기로 약속했다.
자기 입으로 정신 나간 사람이나 한다는 청혼 수락을!
그것도 21살 어린 사회초년생 아가씨가!
그렇게 시작된 우리 만남은 정말 긴 시간을 밤 늦도록까지 보내고 온갖 모임과 장차 시댁일 경주까지 미리 오가다가 88년 9월3일 종로 기독교100주년 기념관에서 결혼했다.
그렇게 시작된 아내의 결혼 생활은 그후 눈물과 외로움으로 무지 힘들기도 했다.
욕 한번 한 적도 없고 뺨 한번 때린 적도 없이 아내를 하나님이 보내주신 배필이라고 소문내며 사랑해주었지만 힘들게 하는 일이 많았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었지만 시댁 살림을 도맡기도 했고 종교가 달라 마음고생도 무지했다.
또 경상도 급한 성격의 나 때문에 애도 먹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냉정한 사고방식 때문에 울기도 했고 너무 원칙을 앞세우는 나와 아이들 사이에 방패가 되는라 맘 고생도 많았다.
기독교공동체를 하겠다고 온 관심을 쏟아 프랑스떼제로 독일 마리아자매회로 천안 디아코니아로 기웃거리고 돌아다니고, 마침내 기도와 생활쉼터를 하자고 산골을 찾아 돌아다니다 이사까지 했다.
그렇게 충주 농촌으로 와서 15년을 애쓰고 사는 동안 나는 생활고만 해결하느라 신앙의 게으름뱅이가 되었고 아내는 시골에 맞는 봉사와 교회섬기기 농사 짖기에 온 힘을 쏟았다.
자식 신앙훈련 농사까지...
그러다 덜컥 얻은 희귀난치병!
심한 스트레스와 마음고생으로 온 것이라 나는 자책한다.
하나님이 보내주셨고 맺어주셨다고 너무 든든하게만 방치한 사이 아내는 그렇게 몹쓸 병을 몸 속에 뿌리내릴 체력이 되고 만 것이다.
내 탓이다.
내가 너무 하나님께 떼를 쓰고 이쁠 짓을 해가며 반려자를 요구했기 때문에
세가지 조건, ‘심성 착하고 몸 건강하고 무엇이든 받아들이는 믿음의 동반자’로 아내를 보내줄 수 밖에 없었다.
아내는 그렇게 세가지를 다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할 일은 20년을 내게 베풀어 준 아내의 헌신을 갚아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따른 아내처럼 나도 하나님이 시키시는데로!
그러나 미안하다.
하나님께 떼를 쓰지 말던지 내 속사람이 좀 변하던지 했어야 하는데...
수도 없이 속으로 구하는 용서는 하나다.
“당신 사랑해서 미안해!”
'아내 투병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보다 더 아내 앞에서 우는 친구! (0) | 2009.12.24 |
---|---|
입원465일 ... 끝없이방문하는 날개 없는 천사들!!! (0) | 2009.12.10 |
24시간이 이렇게 길수도 있다니... (0) | 2009.12.04 |
서성이는 파랑새가 되어... (0) | 2009.12.03 |
지금은 새벽 2시55분... (0) | 2009.1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