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 뜨면서부터 바쁘기 시작하고 바쁜 만큼 고단함도 더해진다.
간밤에도 전과 다름없이 체위변경하느라 두세번, 호스를 넣어서 소변 받아내느라 세번,
그렇게 일어나는 사이로 잠자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예민한 잠 버릇때문에 더욱...
세수하고 손 닦이고 밥 먹이고 양치질 시키고 옷갈아 입히고 체중 재고 채혈하고...
그렇게 바쁘게 처리하고 9시30분 까지 3층 성분 혈액실로 침대채로 가야한다.
혈장교체시술 9번을 끝내고 혈액중 림프구 세포 교체시술이 벌써 5번째 들어간다.
한시간만 더 쉬었다 오면 좀 생생할수 있을텐데...
잠시 쉬느라 1층 로비에 앉았는데 반갑게 초롱박님이 녹차 한잔을 들고 오셨다.
벌써 세번째 오셨다 항암주사를 맞으러 오실때마다 먹을 것을 들고 병실로 오시더니
오늘은 점심먹으로 같이 가자신다.
내가 사려고 했는데 기어이 사신단다.
난 무슨 복이 이렇게 많은지...
이야기도 고프고 고단하던 참에 이것저것 들어주시느라 혼나셨다.
12시 30분에 외래식당에서 만나기로하고 다시 3층 성분혈액실로 갓더니 아직 시작도 안했다.
한가지가 빠졌다고 피를 추가로 또 빼고 거의 두시간이나 기다리는 중이란다.
야단났다. 3시간에서 4시간 사이마다호스로 소변을 빼야하는데
이러면 최소한 5시간에서 6시간은 버텨야한다. 견딜 수 있을까??
간신히 피검사에서 승인이 되었다고 시작하는걸 보고 식당으로 갔다.
12시 30분, 외래식당 문앞에서 초롱박님을 만났다.
손수 식권을 구입하셔서 주신다.
진한 된장찌개를 너무도 먹고 싶었던 참에 정말 맛있게 먹었다.
이곳 국립암센터에 병원생활한지 한달반이 넘었는데 오늘 처음 들어와봤다.
가깝고도 먼 곳, 같이 밥 먹어줄 사람 없어서 생긴 일이다.
헤어지고 돌아온 성분혈액실, 간호사님이 잠못잔 나를 배려해
구석 헌혈용 빈침대에 기어이 눞게하신다.
다른 때라면 거의 죽기살기로 사양할 일인데 정말 힘들어서 누워버렸다.
이런 때도 다있다니 잠버릇 예민한 나도 고단함이 몰려오면 어쩔수없나보다.
배달된 점심밥도 못먹이고 침대에 싣고9층으로 돌아오니 벌서 4시가가까워온다.
가장 급한건 역시 생리문제, 소변부터 바로 받아내기 작업 시작,
연이어 기다렸다는듯 부랴부랴 채혈 항생제주사 점심 약 먹이기...
다 식어버린 잡채밥을 레인지에 데워 먹이는 중에 또 들이닥친 소독 재활치료사의 운동,
밥을 먹었는지 장애물달리기 시합을 했는지...
아프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같이 손잡고 들었을 일산여자합창단의 공연,
지쳐 떨어진 아내를 대신해 혼자 가서 핸드폰으로 몇개 찍어올라왔다.
같이 동행하며 누리던 많은 즐거움들이 멀어진것을 실감하면서...
더 힘들게 한 일들이 기다리는 줄은 몰랐다.
초저녁 과정들은 잘 마치고 사고는 밤 12시에 일어났다.
너무 늦은 시간 조명을 다 켜기 미안해 어둑한 병실에서 소변을 받아내던중 소변통이 넘어져버렸다.
얼른 세웠지만 다 젖어버린 침대시트와 환자복...
낑낑매며 누운채로 뒤집어가며 침대시트를 교환하고 몸을 닦고 옷을 갈아입히고 나니 새벽 1시반,
배도 고프고 속도 쓰려 지하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과 두유 하나로 떼우고 와서 간신히 누웠다.
정작 참지 못할 일은 그때 생겼다.
잠을 깨우는 소리에 눈을 뜨니 새벽 3시50분,
배가 아프다는 아내를 급히 가림막을 치고 덜깬 잠으로 소변을 받아내는데
'...이상하게 바닥이 축축해온다?'
아뿔싸 호스를 타고 옆으로 새버린 소변이 아까보다 더 넓게 매트리스 위를 철벅하게 적시고 있었다.
신음인지 하품인지 모를 소리를 끙끙거리며 똑같은 일을 반복하고나니 벌써 새벽 5시가 넘었다.
옆 침대분들이 도데체 무슨 일이길레 그리 힘들어하는냐고 묻는데 난 묵묵부답...
아침밥상도 미뤄놓고 자다가 간신히 밥을 먹이는데 둘이 부딪히고만다.
미안해하는 아내는다른 트집으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는 그런 아내를 왜 날카롭냐고, 그러면 내가 모를줄 아는냐고 따지다 숟가락을 놓고 나가버렸다.
'...나는 속상하면 이렇게 휙 나가서 풀고 올수 있지만 거동도 못하는 아내는???'
더 있을수 없어 병실로 돌아오니 다른 간병사가 아내를 달래고 있고 울고 있다.
우는 아내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어깨를 감싸고 나도 울어버렸다.
'미안하다. 내 생각만하고 나갔다와서, 당신은 스스로 나가지도 못하는데...'
회진오신 선생님께 우리가 좀 울었다고 당당하게(?) 말했더니 그럴수도 있다신다.
크리스마스때까지 집에 갈수 있으면 좋겠다고얼마전 말씀 드린 것이 부담되셨는지
아마 힘들것 같고 좀 더 오래 걸릴수 밖에 없다고 길게 마음 먹으라신다.
나도 속으로 이미 각오하고 있는데 부담드린게 죄송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염려마시라했다.
대충 치우고 막막한 심정을 달래려 병원 뒷산을 올랐다.
물론 잘 허락을 받고,
좋은 오솔길을 걷는 것은 정말 뛰어난 치료 방법인것 같다.
한편 더 아프기도 하게 하지만 얽히고 쌓인 감정의 찌꺼기를 울고 풀고나니 상쾌하다.
아내에게 보내는 영상편지도 한편 찍고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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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떠오른 마음을 적어보니...)
슬픔 베인 솜 인형 하나
꼭 쥐면 염분 섞인 물이 손가락 사이로 뚝뚝 떨어져내린다
징징거리지마라
세상 끝난 것도 아닌데
운다고 세상 끝이 물러나지도 않는데...
만만한 날들만 앞길에 있어야 한다 우길 수도 있다만
어디 그게 너나 나만 누릴 독점물이더냐.
그저 오는데로 가는데로 섞였다 나왔다 갈 뿐인 길에서...
내려오는 오솔길 앞에 가는 아주머니
등산화 뒤축이 양쪽으로 심하게 닳았다.
인생은 저렇게 사는거다.
신발 뒤축 모서리가 닳아 떨어지도록 앞으로 걷고 또 걸으면서
오는 돌뿌리들을 뒤로 뒤로 물리며가는거다.
이제껏 살아온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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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돌아보니 겨우 24시간 안에 일어난 일들이다.
이렇게 하루가 길다니...
400일과 쉰날을 더한 지나온 날도 그랬던가?
앞으로 올날도 또한 길기만 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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