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곳 국립암센터로 온지도 34일째, 병원 첫 입원 후로 446일째...
순탄한듯 진행되던 치료가 브레이크가 걸리고말았다.
9번의 혈장교체를 근 3주에 걸쳐 예상보다 부작용 없이 잘 해넘기고
교수님도 참 다행이고 반응도 있어보인다고 의욕을 보이셨다.
그러나 거기까지인가?
면역 글로브린주사 리브감마 5일중 3일을 맞고 두통과 열이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결국은 하루 쉬고 다시 하루를 억지로 맞아보았지만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이틀을 지켜본 결론은 8번째 재발...
다시 스테로이드 주사부터 돌아갔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보았다는 교수님의 어두운 얼굴,
"안정숙씨 혈액 속의 염증이 아주 심한 악성으로 보이네요..."
다시 찍은 mri 사진에 넓게 퍼져버린 염증들,
다른때보다 긴 일주일의 스테로이드 주사와 좀 오래 먹어야겠다는 12알부터의 알약
'어쩔수없지요, 기운빠지게 해드려서 괜히 죄;송하네요.'라고 선생님을 위로해드리고
뒤이어 밀려드는 난감하고 지치는 말없음, 침묵의 시간...
다시 축 늘어져버린 팔다리와 강제로 꼬부라드는 팔굼치를 수시로 곧게 펴면서
아내도 나도 산다는것의 새로운 각오가 필요했다.
강행 치료과정으로 도다시 들어간 혈액교체시술
이번에는 좀더 강도도 높고 힘든 림프구 세포 교체를 해보자고하신다.
한주에 두번 밖에 할수 없다는 고난이도를 한번하고 아내는 퍼져버렸다.
척수액 채취 후유증인지 열과 땀으로 범벅이 되고 헛것이보여 밤새 소리를 지른다.
혈관들이 팽창해서 터지는것 같고,
어떤 사람이 꿈에도 깨어서도 보이고 가라고해도 가지않는다는데...
삼일을 아무것도 않고 스테로이드 알약만 먹고 쉬는데 조금 가라앉는것 같다.
여전히 남의 팔다리가 되어버린 무감각하고 늘어진 신체는 가려운곳도 긁지 못한다.
새벽 세시에 깨우기에 일어났더니 눈 위에 가려워 견딜수 없다고,
한시간째 씰룩거리며 버티어봐도 없어지지않아 미안하지만 깨웠다고...
옆 침대에 새로오신 아내 비슷한또래의 환자분
폐암 말기라고 하신다.
2년 전에 수술하고 제주도로 장성 편백나무숲으로 강원도로 좋다는 곳은 다가서 요양을 했는데
다시 재발해서 머리까지 퍼지고 말았단다.
식사때마다 스테로이드 효과로 밥을 먹는 아내를 부러워한다.
아내는 제발로 움직이는 그 사람을 부러워하고,
림프구 세포를 걸러내는 혈액교체시술 시간에 병실로 돌아와 쉬는데
그분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셨다.
집의 그릇과 옷들을 다 정리하셨다고
남편에게는 꼭 재혼을 하라고 했는데 단 10년은 지나서 해달라고 했단다.
고등학교때부터 만나 10년을 연애하다가 결혼해서 많은 추억이 있다면서
남편이 밉단다. 안아픈 사람은 자기 심정을 모른다고...
하긴 나도 아내의 고통과 두려움을 다 모른다.
만나는 의사마다 꼭 물어본단다. 자기가 얼마를 살수 있는지,
다 정리하고 가고싶다고...
그러나 그걸 안다고 무슨 소용이 있을까
6개월을 산다고 하면 정말 6개월은 무슨일이 있어도 안 죽는다고 보장할수있느냐
성하던 사람이 별안간 죽는 숫자가 아프다가 죽는 사람보다 많은 세상에
날마다 오늘이 마지막이고 가족이 헤어질때마다 지금이 마지막일수도 있다고,
우리집은 그런 마음으로 화해도하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산다고 말했다.
사실 그렇게 살려고 많이 노력하고 가족들에게 말하며 살아왔다.
죽는건 누구나 하는거고(암이든 난치병이든 사고로든수명다해서든...)
문제는 죽음보다 견딜수 없는 지속적인 통증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아닐까?
죽음은 각오했고 지금 죽어도 좋은데 견딜수 없는 통증은 자신 없다.
오늘은 아내와 주일 예배를 드리고 나와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데체 모르겠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아픈 사람들이 다 기적같이 반드시 살아나야하나?
난 정말 기도하고싶은건 지금 불러주셔서 영원한 세상으로 데려가달라는 건데"
진심이다. 지금 열심히 살고있고 죽은 다음의 세상에 더 기대를 하는데
이 슬프고 무거운 짐들이 끝없고,
고통이 돌밭처럼 앞에 늘려진 이세상에 더 살기위해 기적까지 펼치며 굳이 살려달라고 하고싶지않다.
전에는 자식들과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일 들 때문에 죽는 이별이 싫었지만
이제는 그런 미련도 별로 없다.
남은 사람들의 삶은 남은 사람들의 몫이고 정말 창조자가 있다면 그분이 돌봐주실테니...
없다면? 그럼 굳이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이러나저러나 살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인데 뭘 걱정하나.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더 살게하실 계획이 있다면 열심히 살 작정이다.
우린 염세주의자도 아니고, 되는데로 사는건 더 못한다.
무엇인가 우리가 바르게 본이 되게 살아야할 계획이 있어서 힘들지만 이세상에 둘텐데
적어도 자식들에게 믿는 것과 사는 것이 다른 부모로 보이며 살고싶지는 않다.
그것이 병에서 회복이 되든 안되든, 통증과 망가진 형편으로 비참해질망정 버티는 이유다.
감사할려고 애쓰면서...
폐암 4기이신 그 여자분과도 그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공감을 했다.
우리가 극복해야할 문제는 지독한 통증과 죽음으로 인한 이별의 두려움이라고,
말도 쉽고 정리도 그런데로 되지만 정작 숙제는 지속적인 감정의 변화다.
순간마다 닥치는 감정과 환경, 오래된 습관으로 인한 적응 안되는 순간들이 힘들다.
죽는 것도 사는 것도 쉽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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