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병원생활일지 - 암센터 휴게실에서

희망으로 2009. 10. 29. 12:42

여기저기 진료 순서를 기다리는 분들이 대기 의자를 채우고 계신다.

...이렇게 많은 자리가 이렇게 아침부터 만원이 될정도로 아프신 분들이 많구나.

그런데 눈에 띄게 여러 분들이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좀 특이하다.

그것도 나이 드신 아주머니들이 더 많이,

 

'올해는 모자 쓰는게 유행인가?'

 

이내 뒷통수를 한대 맞은 듯 번뜩 생각이 스친다.

아! 여기가 국립암센터이고 저분들은 암환자이신 분들인가보다.

지금 있는 9층 병실이 소아암과 특수암 병동이라 머리를 삭발한 사람들이 흔하다.

당연히 그러려니 했는데 외래접수와 일반인들이 거의 다니는 1층은 그렇지않아서 몰랐다.

그런데 휴게실에서 한참을 앉아 있다보니 그냥 지나치던 모습이 자세히 들어온다.

옆자리에는 몇분이 힘들어하며 길게 누워 계신분도 있다.

수척해진 모습으로 숨차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안쓰럽다.

할머니에 가까워보이시는 가족이 역시 고단하신 모습으로 옆자리를 지킨신다.

 

병원을 여러 곳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이 있다.

투병도 형편따라 더 힘들기도 하고 덜 힘들기도 하는구나 하는 것이다.

형편이 좀 넉넉한 가족들을 보면 치료도 온갖 종류를 다 받아보고

먹는 것 지내는 것 간병인의 도움을 받는 것 등 고생도 등급있게 다르다.

물론 큰 병에 죽고 사는 것은 예외가 없지만...

 

가난한 이들의 투병은 더 힘들고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 마음 고생과 그에 못지 않은 몸의 고단함...

정녕 사람은 아프기위해 세상을 왔다가는걸까?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은걸까?...등등,

 

정말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일까?

때때로 질문이 하늘로 향해 불쑥 나오기도한다.

     

어저께부터 무료 간병인이 와주신다.

이곳 고양시와 협의가 되어있어 신청했더니 허락이되었다.

딱 3주를 낮에만 와주시는거다.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가던 참에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밤낮을 매달리는 생활을 하다가 낮에잠깐씩은 쉴수가 있게되었다. 3주만!

 

그러나 아내는 좀 불편한걸까? 별로 썩 내켜하는 느낌이 아니다.

사소한 일로 짜증도 좀 내고 나도 너그럽지 못하고  맞장구를 치다보니 긴장이 생긴다.

늘 좋을수만은 없다는걸 각오하지만 역시 불편하다.

내가 생각보다 많이 지치고 에너지가 바닥이 난것일까?

병원 밖 어딘가로 훌쩍 떠나서 헤매는 상념이 떠오르는게 잦아진다.

늘 가고싶던 산티아고 순례길의 어디쯤을 걷는 이미지가 머리속에 펴지기도하고

카오산로드의 어디를 걷고있거나 시장 한구석에서 국수를 먹고싶은 충동이 자꾸 올라온다.

 

아내와 티걱거리고 나면 모든 것이 싫어진다.

병도 싫고 희망의 내용도 희망의 감정조차 싫어진다.

다 구차하고 누군가에게 속고있는 누더기 같은 기분이 들기도한다.

이래서 죽고싶다는 충동들이 힘든 환우나 가족들에게 불쑥 쳐들어오나보다.

 

...내 속에 또 다른 내가 작동하기 시작하는걸까?

가시나무새 가사마냥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쉴 곳 없네...'가 되어버린걸까?

 

병실 창 밖에는 온통 얕은 산이 둘러있고 나무마다 가을 물이 들어 아름답다.

보는 내 맘에 따라 화려하기도하고 쓸쓸하기도하고 변덕스럽게 느껴져서 문제지만...

 

아무래도 정신과 예약을 해서 상담을 좀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잦아진다.

처음에는 농담처럼 떠올랐는데 자꾸하다보니 웃지도 못하겠고 진지하게 다가온다.

곧 예약접수 창구로 걸어갈것만 같다.

정신과 진료 경력이 큰 문제는 아니라는 위안을 자신에게 다독거리며!

 

(이 맘을 정리하면서 끝에 떠오르는 분들이 힘든 투병중인 환우들이었습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움이 수도 없이 오셨을 분들께 그때마다 무슨 말로 활짝 펴지게 해드릴수 있겟어요.

그러나 실행은 하지않는게 좋겠다 다짐했습니다.

다만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아가면서라도 고비는 넘기면 사라질수 있다는 각오가 들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아프지 않아도 누구나 죽는다는 진실 앞에서 다를게 없지요.

단지 통증과 고통과 구질하고 불편하고 악이 받치고... 다 고비가 아닐까싶어요.

전 너무 힘들면 제발로 정신과 창구로 걸어갈 작정입니다.

치료받고 심하면 격리되는 과정을 거칠망정... 그건 단지 병의 일종이니까요.

인간의 영혼과 생명을 자의로 파괴시킬 값어치는 없는거라 독하게 마음먹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