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람’
나에게는 생각만해도 힘이 나는 고마운 분이 있다.
그녀는 결혼하고 얼마되지않아 배우자를 사별했다.
그는 십년도 안되어 어린 두 자녀만 남기고 먼길을 떠났다.
서른즈음에 닥친 기막힌 현실을 열심히 살기도 벅찬데
다시 십년도 안되어 이번에는 자녀에게 불행이 닥쳤다.
출근길에 온 소식은 하나뿐인 아들이 큰 사고를 당한 것
스무살을 앞두고 열심히 살던 아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급 유턴을 하는 자동차와 충돌해 생명만 빼고 다 잃었다.
잘생기고 건장했던 아들이 반응도 못하고 몸에 갇혀버린
큰 아기가 되었고 그녀는 다시 돌보는 엄마가 되었다.
그녀는 어떻게 그렇게 두 번이나 계속된 큰 불행을 견디고
무너지지 않으면서 가정을 추스려 살아나가는 걸까?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몸서리 치는 기억이 있다
아내에게 척수종양이라는 진단을 내린 대학병원 신경과장이
워낙 위험한 목 수술이라 절반의 성공밖에 기대를 못하고
그나마 성공해도 몸의 절반은 신경마비로 중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할거라고 나를 불러 설명을 했다.
그 진단을 나에게 해준 날은 태풍이 몰려오는 전날이고
아이를 데리러 간 학교 빈운동장에서 두시간은 울었다.
시커먼 하늘과 천둥소리 세찬 바람을 맞으며 하염없이 걸었다.
그 뒤 경제적 형편도 안되고 오랜 투병에 지친 나는
그냥 죽기로 작정하고 아내를 집에 데리고 와서 포기해버렸다.
다행히 형제들이 등 떠밀어준 덕에 병원으로 갔지만…
그녀가 아들의 사고 소식을 들은 때와 사경을 헤매며 수술받는 동안
그 큰 충격과 슬픔을 감당했을 심정을 짐작하면 눈물이 난다.
나도 당해보았지만 그녀에게는 더 치명적이고 더 큰 일이었으니.
그럼에도 그녀는 일어서고 엄마의 자리를 지켜나갔다.
어느날 나에게 먼저 연락을 해온 것도 그녀였다.
그리고 병원살이에 힘겨워하는 나를 오히려 응원해주었다.
겨울에는 김치를 담갔다고 보내주고 임대아파트를 얻어
사라진 주거지를 다시 회복했을 때는 생활가전까지 사보내왔다.
몇 번인가는 병원에서 맞이한 명절과 생일때는 돈도 보내왔다
맛있는 거 먹으면서 축하하고 기운내어 병원생활하라고.
간혹 아내가 심해진 증상으로 힘든 고비를 맞아
내가 못견딜 때는 잘 이겨내라고 응원을 해주었다.
씩씩하고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목소리와 일상 소식은
그렇게 나에게 힘을 내는 동기가 되고 도전이 되었다.
나이도 내가 더 많고 상태도 내 아내가 그녀의 아들보다 나은데
내가 더 약하고 자주 힘들어하는 게 가끔 민망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상기하면서 다시 마음을 추스린다.
그녀가 주저앉지 않고 아들을 잘 돌보며 잘 지내주는 동안은
나도 힘내서 아내를 돕고 내 일상을 감당해 가야겠다 다짐한다
그녀는 정말 꽃보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사람이다.
그녀가 잘 견디고 좋은 날이 오기를 소리없이 기도한다
건강한 삶의 영향력을 나에게 주는 고마움을 인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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