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이제야 알게 된 이유…

희망으로 2023. 1. 12. 20:29

’이제야 알게 되는 이유 하나‘

오랫동안 아픈 아내와 나를 지켜보며 응원해주는
신앙의 동지, 친구가 왔다 갔습니다.
과일을 종류별로 담은 박스를 들고 와서
지난 날에 늘 그랬던 것처럼 어제 힘들게 다녀온
장거리 병원 검사와 진료의 고단함을 물어봐주었습니다
정말 바로 전날의 피로로 공기마사지 기계를 다리에 찬
아내는 누운 채 문병을 와준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지난 과정을 누구보다 많이 아는 친구인데도
발병 초기와 이후의 속속들이 과정을 설명해주다
기적에 가까운 회복을 말해준 담당의사선생님과의
인연도 상세히 말해주게 되었습니다
전혀 입원을 받아줄 상태가 아닌 너무 악화된 때에
조르며 간청하는 나의 호소를 못이겨 치료를 시작한 이야기
그리고 5년, 10년이 지나면서 처음 입원을 허락할 때
기대하던 20% 안팎의 회복 수준을 많이 뛰어 넘어
무지 놀라며 학회 다른 의사들에게도 사례로 발표했다는
그 감동의 진실을 듣기도 했었던 과정을.

그 친구가 다녀가고 나서 여러 생각을 하다가 알았습니다
이전에 이유는 모르고 막연히 결심하던 그 감정을.
너무 오래 투병을 하는 동안 지금은 많이들 거리가 멀어진
형제와 친척, 심지어 교회 동료 친구들 중에서도 그랬습니다
‘이제 회복 가능성 없는 아내는 포기하고 병원에 맡기고
다시 일도 하면서 아이들 챙기며 생활전선에 복귀하라고…‘
그때 나는 할말을 찾지 못하고 그냥 침묵으로 그 권유들을
밀어내며 버텼습니다. 아이들 걱정과 미안함을 삼키며.
그럴 수는 없다는 막연한 감정으로 그냥 억지 부리듯…

그런데 오늘 그때 과정을 설명하면서 깨달았습니다
왜 내가 그때 가능성없고 집을 말아먹으며
내 건강과 가정의 몰락, 나의 미래마저 송두리째 무너질지도
모르는 그 고집을 부리며 버텨왔는지를!
당연히 회복 가능성도 장담못하고 회복한들 뻔한 앞날에도
나는 그 길을 살아온 것은 단지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었습니다.
나은들 다시 죽지 않는 생명이 어디 있다고…

내가 정말 그럴 수 없었던 것은 ’버려지는 슬픔‘ 때문이었습니다
아픈 채로 희망이 없어 요양원으로 혼자 버려지는 슬픔을
아내에게 안겨 주기 싫었습니다.
누구라도 그 처지가 되면 견딜 수 없는 괴로움에 빠질겁니다
죽는 건 괜찮아도 그 심경의 슬픔은 못 견딜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모두가 망할지 몰라도 아내 곁을 지키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혹시 입장이 바뀌어 내가 아프고 아내가 나를 떠나는 상황을
상상만해도 눈물이 쏟아지고 가슴이 저렸습니다
그 힘으로 몇번이나 고비를 넘겼습니다.
주변에서 그만하면 되었다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 선택을 응원이라도 하듯 지금까지 우리를 돕고 응원해준
몇몇 사람들 중 한명인 귀한 친구입니다.
외면도 말리지도 않고 길고 지루한 세월을 온갖 도움을 주면서!
그들이 곁에 없었다면 중간 어디뜸에서 나도 포기했을지 모릅니다
’나도 이제 할만큼 했잖아? 그만하자‘ 그러며.
무엇보다 아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지독한 쓰린 추억,
마치 깨진 유리조각을 삼킨 것 같이 아픈 버려진 기억은 없이
사랑받은 따뜻한 고마움을 안고 떠날 수 있게 된 것이
너무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라 여겨집니다.
당사자는 선택의 기회도 힘도 없이 다른 사람에 의해
버려진 슬픔까지 더 짊어진 채 생명을 마치는 것은
정말 불행한 마지막일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