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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기도 3 - 마음만… 하다가 슬피 울리라

희망으로 2022. 6. 17. 01:06

그저 기도 3 - 마음만… 하다가 슬피 울리라

‘아빠! 나 용돈 좀…’
‘얼마 필요해?’
‘나 사랑하는 만큼~’

난 절대 여우과가 아니다. 경상도 남자, 그것도 오래된 연식이니. 아이 엄마도 여우는 아니다. 삵괭이에 가까울망정 여우는 좀… 그런데 어디서 이런 여우가 나왔을까? 결국 처음 예정했던 돈보다 조금 더 나가고 말았다. 그놈의 마음 크기때문에.

어떤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려면 돈 가는 곳을 보라는 말이 있다. 마음 가는 곳에 돈도 간다는 상식을 모두가 인정하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성경에서는 재물있는 곳에 마음도 있다고 그랬다. 세상에 마음 있는 사람은 세상에 재물을 쌓고 하늘나라에 마음 있는 사람은 천국에 재물을 쌓는다면서.

그런데 이상하게도 돈만 가고 마음은 안가는 경우도 있다. 부자청년은 예수앞에 와서 자기는 율법의 제사나 예물도 빠짐없이 드렸고 자선도 베풀었다며 영생, 곧 하늘나라를 갈 수 있는지 물었다. 거듭날 수 있는지 물은 부자도 있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말했다.

[마가복음 10:21 -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전 재산을 다 가난한자들에게 주라고 하니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한다. 부자청년이 구한 것은 적당한 구제와 율법지키기를 하고 영생을 얻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적당히가 아니라 모두를 주라고 했고 그것보다 더 중요한 다음 말은 나를 따르라! 였다. 전재산을 내어준다고해도 영생이나 하늘나라를 못간다는 말이다.

따르는 것은 마음이 가야 가능한 것이다. 이전에도 그렇게 살지 않았음을 지적한 것이고 나중에도 그게 중요하다는 말이었다. 부자와 청년은 둘 다 돌아갔다. 그만큼 마음이 가는 게 재물보다 힘든 일이다. 그건 전 생애가 다 가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신앙인들이 그 분류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교회에서 요구하는 헌금 봉사 주일성수 등은 모두 잘 지켰으니 천국티켓은 당연히 예약이 되었다고 장담한다. 남들에게도 떳떳하다며 온갖 방식으로 과시를 한다.

그러나 일생의 방향과 목적이 예수의 마음과 같지 않다면 부자청년과 무엇이 다를까? 전 재산을 다 주어도 생명을 포함해 마음으로 일생을 따르지 않으면 소용없다고 단정을 하는데…

그러면 마음을 다해 예수를 따르는지 무엇으로 짐작을 할 수 있을까? 남들은 모른다. 오직 본인과 하늘만 아실거다. 그 부자청년처럼 남들도 인정하고 자기도 인정하지만 나를 따르라! 말에는 난색을 표하며 돌아선 순간처럼 무언가 자기속에 다른 것이 있을 거다.

인생의 성공과 재미와 능력이 모두 자기로부터 나온다고 은근히 자부하는 사람은 일단 마음을 안 준 사람들이다. 또 실패와 고난과 상실의 불안이 몰려오면 세상 수단에서 해결책을 찾고 그래도 안되면 망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모두 마음이 하늘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분류에 속한다. 그가 겉으로는 교회와 남들에게 뭐라고 했던간에 말이다. 말이나 설교, 설사 행동까지 포함하더라도.

이런 사람들은 가진 모든 것, 시간과 마음을 다 내주고 죽음이 기다리는 걸 알면서도 그 길로 걸어 들어간 예수를 따르기는 불가능하다. 바울과 베드로처럼 최악의 경우 목숨을 내놓는 길도 가기가 쉽지 않다. 세상의 인맥과 수단에서 해결책과 피할길을 찾아내는 기술이 능숙한 사람들이라 그 죽음의 직전까지도 그렇게 방법을 찾는다. 나는 죽어도 그런 종류가 아니라면 다행인 신자들이다!

그런데 또다른 이상한 사람들도 있다. 마음만 가고 돈은 안가는 경우다. 재물만 가고 마음은 안가는 사람들과 겉은 달라보이지만 속성은 어떤점에서 비슷한 고약한 경우다. ‘마음만!’ 이나 혹은 ‘내 마음 알지?’ 그렇게 말로 다 떼우면서 마음은 보낸다면서 돈은 한푼도 안 가는 경우다. 정말 고약하다. 돈 안드는 ‘기도할게!’ 라고 기도를 자기 현금대신 사용한다. 가장 처음 분류인 마음 가는 곳에 돈 가는 속물보다 오히려 더 위선적이고 교활한 죄인들이다. 치사한 악당이기도하고…

만약에 이웃의 경조사에 마음만 보내고 몸은 그 집 밥상앞에 앉으면 주인이 어찌할까? 아마도 밥공기에 밥은 한톨도 안담고 마음만 담은 빈공기를 대접할지 모른다. 오지랍 착한 사람이라면 불쌍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이나 먹을 것을 내어놓을지 모른다. 하지만 정의롭고 공정한 주인이라면 본인이 깨닫고 고쳐 살라고 아무 것도없는 빈 상을 줄거다.

이 분류의 사람 이야기를 하면서 많이 찔린다. 늘 마음만 보내고 행동을 못하고 산 나에게 자책하는 무거움이 따라온다. 마치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기 싫어 노인이나 짐든 사람, 임산부를 외면하느라 눈 감은 채 몸은 편하고 마음은 괴로운 경우처럼…

나중에 내가 이 세상을 떠나 천국 문앞에 갔는데 문은 열리지 않고 이런 대답만 들리면 어쩌지? 모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면서도 늘 마음만 보내고 재물은 나의 욕심과 세상의 재미를 위해 몽땅 사용한 나에게 주님이 ’나도 마음만 받을게! 너는  몸과 영혼을 데리고 지옥으로 가!‘ 하는 천둥 벼락 같은 소리가 울리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