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희망으로 2021. 12. 19. 22:14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싫어!”

“왜?”

“기억도 하고 싶지 않은 그 때가 떠올라서...”

 

마약중독이 되었다가 간신히 끊고 나온 치료자가 있었다.

중단 1주년을 축하하면서 주는 기념메달을 안 받겠다고 그랬다.

치료모임에서 주는 축하의미는 알겠지만 악몽을 연상시켜서 거절한다고...

 

“받고 안 받고 결정은 분명 너의 권한이 맞아. 

그 영광도 기쁨도 너의 것이고,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 수상이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 알아?

중독치료를 힘겹게 불안하게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 기념메달은 희망이고 위로야!

1년을 다시 빠져들지 않고 잘 견뎌낼 수 있겠다는, 

자기들도 타야겠다는 희망...“

 

그랬다. 

동반자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아와준 치료선생의 말은 

그렇게 다른 의미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 상을 받아주고 한마디 이야기도 해달라고…

 

- ‘엘레멘트리’ 라는 드라마 속에서 나오는 대사다.

 

백범 김구선생님은 옛 시를 인용해서 그렇게 말했다.

 

‘눈 덮힌 들판을 걸어갈 때 모름지기 함부로 걷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이양연은 시 야설(野雪)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 눈 길 뚫고 들길 가도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 모름지기 어지러이 가지 말라.

         今朝我行跡(금조아행적) : 오늘 아침 내 발자국이

         遂爲後人程(수위후인정) :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될 것이니.

 

누군가의 앞에서 먼저 간다는 것은 

그렇게 나중에 오는 사람과 관계가 있다.

산다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노력하여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만이 아니라

실패하여 고통을 당하면서 세상의 기준으로 망해가면서도

어떻게 견뎌내는가를 보여주는 경우도 그렇다.

 

성서에 나오는 많은 사람의 삶이 그렇다.

어떤 이는 욕망과 반역의 길을 걷다가 무언가를 말해주고

또 어떤 이는 순종과 고난의 길을 가면서 무언가를 남긴다

비록 성서에 기록되지 않은 더 많은 그때의 사람들과

그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지금도 살아가는 무명의 사람들도

별 다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나같은 별볼일 없는 평범한 사람의 삶은 아무도 모르겠지? 

별 영향도 남기지 못하고 그냥 사라지는거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맥빠져 살기도하고 좌절하거나 무시한다.

반대로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감사하며 삶을 마치기도 한다

사실 자녀나 주변의 누군가의 시선에 앞선 발자국이 되는데도…

 

그렇게 누군가의 걷는 자국은 반드시 누군가의 앞길이 된다

서로 세상속에서, 또는 혈육 신앙의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그래서 큰 죄를 지은 경우도 회개를 하고 용서를 받아야 한다.

때로는 마땅한 벌을 치르고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작은 수고와 희생, 사랑의 나눔도 동시에 기억되어야 한다

그 한 사람에게 필요하냐? 바로 소득이 있냐 따질 일이 아니다.

다음에 같은 일을 만날 사람들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고

때로는 멀리 상관없이 사는 듯 보이던 사람이 큰 위로를 받아

다시 일어나 살아갈지 모르기 때문에 열심히 바로 걸어야 한다.

형편이 어떠하든지, 결과가 어떻게 되던지를 떠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