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다 상실하고 나서야 얻는 것도 있다

희망으로 2021. 11. 1. 12:49

‘다 상실하고서야 얻는 것이 있다’

 

걷기를 할때 늘 동행하는 것이 있다

오늘 그 동반자를 상실했다

이어폰 한쪽이 아예 인식이 안된다

고장이 나버린 거 같다

병원생활하는 동안 하루에 20시간 안팎을

내내 귀에서 떠나지 않았다

유선은 움직임을 방해하고 수시로 걸려 불편했다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뒤척여 밤에도 늘 들었다

그래서 가격은 좀 비쌌지만 큰마음먹고 샀다

귀에 넣으면 자동 작동이 되고 빼면 바로 정지를 했다

병원생활중 유일한 낙인 노래듣기와 영화 감상도 그랬고

날마다 한시간 이상씩 걷는 동안 음질도 너무 좋았다

그렇게 3년을 넘게 혹사를 했으니… 갈만도 하다

오늘은 … 그저 한쪽이 먹통에 멍멍하니 답답하다

고장난 한쪽은 그냥 소음 차단 귀마개용이 되었다

다시 살 형편도 안되어 좀 견뎌봐야겠다

 

 

 

“뭐해?”

“잡으려고 하는데… 거리를 못 맞추겠네 ㅠ”

아내는 그렇게 허공에서 헛 집게를 지었다

한쪽 눈을 실명한 아내는 종종 그랬다

내가 집어주고 손을 끌어 물건에 대주기도 했다

언젠가 난 눈이 아프다는 핑계로 안대를 했다

한쪽 눈이 안보이는 아내의 심정을 알아보려고…

정말 불편했다. 땅은 일렁이고 촛점은 안맞고

때론 속이 울렁거려두통과 멀미도 생겼다

‘이랬구나… 이렇게 사는구나…ㅠ’

애꿎은 졸음 핑계를 대며 세면장으로 가서

세수를 몇번이나 했다. 눈물이 찔끔났다.

 

나의 엄마는 생의 마지막 5년을 시립병원에서 보냈다

결핵에 파킨슨, 위암까지 걸렸던 엄마는

심한 당뇨로 두 눈을 다 실명하고 아예 안보였다

겨우 목소리로 자식들을 구분했던 것도 다행이었다

가장 오래까지 기능을 잃지 않는게 청각이라고 했다

코마상태로 식물인간이 된 사람들이 가장 괴로운게

자기를 두고 하는 말들이었다는 놀라운 증언도 있었다

그래서 가족을 보낼 때 귀에 대고 말하라는 임종사도 있다

나는 그 마지막 말 한마디도 엄마 귀에 대고 못해주었다

세상을 암흑속에 가둬버린 채 자식들과 떨어져 

살다가신 엄마가 자꾸 안쓰럽고 종종 기억나 맘 아팠다

난 아내를 돌보느라 마지막 5년동안 뵙지도 못하고

임종 연락이 왔을 때도 못가봤다.

일산과 울산, 발음은 비슷한데 거리가 너무 멀었다

지금은 편히 지내실까? 저 하늘 너머 어디선가?

 

어린왕자는 말했다.

“내 별로 돌아가기에는 내 몸이 너무 뭐거워…

그러니 니가 나를 좀 도와줘!”

그렇게 뱀에게 도움을 받아 몸을 두고 어린왕자는 떠났다

우리는 어느 날에는 모두를 두고 그렇게 간다

무거운 옷과 소유와 많은 생각과 몸까지…

모두를 상실하고서야 얻는 것들이 있다

다 놓고 가야만 갈 수 있는 곳이 있다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을 해야만 만나는 분이 있다

그래서 건강도 재산도 눈도 귀도 하나씩 상실해간다

이쪽에서 보면 슬픈 일이고 저쪽에서 보면 감사할 일이지만

늘 적응이 늦게 된다. 생각과 감정은 머리와 따로다

 

 

 

나는 왜 글을 쓸까? 그것도 주로 가볍지 않은 글을…

아마 첫째는 내 무게를 퍼내기 위해서일거다

침수처럼 잠기는 우울한 감정과 질식감을 덜어내려고

그리고 두번째는 누군가를 응원하고 다독거리고 싶어서다

전쟁에서 진 패잔병도 말은 해야 한다

죽기전까지는 어딘가로 움직이고 무엇이라도해야 한다

그것이 생명에 대한 도리다

예수님도 그랬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없다고!

이미 승리하고 넉넉하고 건강한 사람들에게는 난 쓸모없다

내 삶도 해결못한 채 사는 주제에 누구에게 무슨 할말이 있나

그러나 질곡과 슬픔, 해결책이 없어도 하루를 살아야하고

아직 남은 가족과 자기 생명을 돌봐야 할 사람에게는

무슨 말이라도 해주고 싶다. 

그래서 글을 쓴다. 내가 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다. 늘 막막하고 우중충한 상황이지만 살자고…

 

“주님, 하나 둘씩 상실해가는 날을 보냅니다

그래도 당신에게로 더 가까이 가고 있다는 믿음 주세요!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