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큰 고통보다 작은 지겨움이 더 힘들어

희망으로 2021. 7. 25. 16:38

 

<큰 고통보다 작은 지겨움이 더 힘들어...>

 

‘아... 지겹다 ㅠㅠ 나도 안 아픈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

물론... 속으로 혼자한 말이다. 

이게 밖으로 나오면 치를 홍역이 뻔하기에.

 

하루 건너 치르는 화장실 배변 씨름을 하고 지친 내게 아내는 

몸 컨디션이 자꾸 가라앉는 불안에 이것 저것 운동치료를 바꿔보려고 말을 걸었다.

나도 모르게 짜증이 났다. 끝없는 숙제같아서. 아내가 그걸 눈치챘다.

대답이 시큰둥했다고 아내가 삐쳐서 한마디 한다.

‘알았어! 냅둬....’

 

참 이상하다.

쿵! 철렁... 조마조마 ㅠ

그렇게 심각한 상황이 이어질 때는 아무 생각도 안났다.

죽거나 살거나 그 두가지 외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돈이고 시간이고, 물건이나 취미 대상, 세상 관심사도 다 멀어 진다.

긴장이 가져오는 감정은 피곤도 짜증도 낄 틈이 없다.

그저 이 고비를 잘 넘기고 안 죽고 살아만 났으면... 빈다.

실재 그랬다. 다 팔아 치우고 다 버리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그래도 하나도 아깝지도 않고 불평도 안생겼다.

오직 무사하기만을... 아내나 아이들이.

 

그런데 폭풍이 지나고 반복되는 일상의 상태로 들어가면

슬슬 지겨워진다. 남들 다 가는 나들이도 못가고

남들 다 하는 취미생활도 못하고 못 해먹는 음식도 속상한다.

공간 사정상 가질 수 없는 사소한 물건도 부럽고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반복만 하는 일상이 짜증도 난다.

극심한 가난은 허리띠 조르고 힘을 합해 살던 부부들이

먹고 살만하고 여유 생기면 싸우고 미워하다 갈라선다더니

비슷한 심정이 되고보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진짜 무섭고 힘들다. 큰 고비를 지날 때보다 잔잔한 일상이

어쩌면 나를 망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멀어지게 할지도 모른다.

 

성경에도 큰 일 앞에서는 납작 엎드려 빌고 따르다가

나아지면서 변심하고 하나님의 분노를 받아 망하는 경우가 많다.

광야길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표적으로 그랬고

죽음앞에 몰렸던 히스기야왕도 병이 낫고 그랬다.

질병으로 고생할 때 매달리던 열명중 아홉명은 뒤도 안보고 갔다.

마치 쇠에서 생긴 녹이 점차로 쇠를 잡아 먹어버리듯

흰개미를 방치하는 게으름이 기둥을 갉아먹고 집을 무너지게 만든다.

크게 얻어맞아야 정신차리고 작은 불만이 누룩처럼 번지게 두면

어느 날 망한 후 땅을 치고 통곡할지도 모른다.

큰 비는 아예 대비하고 피난하면서 우습게 보는 가랑비에 옷 젖는다.

큰 산을 넘고 작은 언덕에 주저 앉기도 한다더니...

 

슬슬 지겹고 사소한 불평 불만이 좀 먹는 이 괴로움

어떻게하면 날마다 사소한 일상에 안 지치고 살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 큰 슬픔들과 큰 고민들을 간신히 벗어나고 숨 돌리면

바로 다가오는 이 위험한 감정들, 사람의 습성들이 힘들다.

싫은데 끈질긴 거머리 붙은 느낌의 이 일상을 어찌하면 좋을까?

하루 세번씩이나 머리 조아리고 무릅끓고 손모으는 수도원의 기도

왜 그래야 오늘 감사와 기쁨이 유지되는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사람의 부조리, 사람의 연약함, 사람의 불쌍한 한계 앞에서...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이 주실 평안을 구합니다!’

 

2020.1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