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의 해처럼 밤의 달처럼! 때로는 기울어진 하루지만...>
밝은 얼굴이 하나 있습니다.
두 눈 중에 하나가 빛만 남기고 실명했는데도
누가 인사만 하면 입꼬리부터 올라가는 아내
소변이 터질정도로 차서 고무튜브로 빼야 사는 중에도
괜찮냐고 회진온 의사선생님께 좋다고 대답하는 아내
열두시간을 차에 실려 오가고 항암주사를 맞으면서도
돈 많이 써서 미안하다고 내 눈치보며 애교로 떼우는 아내
주말이나 명절이면 종일 침대에 누워 끙끙매면서도
아이들 전화 통화하면 말이 많아지며 환하게 웃는 아내
이렇게 밝은 얼굴을 가진 아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모르지만 아내의 반쪽이 그렇습니다.
낮의 해처럼...
어두운 얼굴도 있습니다.
3일마다 돌아오는 좌약으로 강제 장 청소 하는 일,
거의 초죽음이 반복되어 이제는 3일째 돌아오는 것조차
지레 홍역을 치르고 미리 죽고 싶다고 울먹이는 아내
삼일을 감기를 달고 살다가 하루 건너면 다시 삼일을 아픈
지겹고 무기력하게 만드는 만성 합병증에 진절머리 내는 아내
땀으로 범벅이 되어 부채 선풍기 동원하다가
갑자기 오한으로 돌아서면 이불 세겹을 덥고도 새파래지며
병마가 멱살잡히면 때려죽이고 싶다며 미워하는 아내
때론 아이들이 자기 예상과 다르게 뭔가 결정하면
엄마 자격이 없어서 말이 안먹히나보다 우울해지는 아내
이렇게 어두운 얼굴도 아내의 한 면입니다.
언제 이 얼굴이 사라질까 두 손모아 빌고빌어도 끈질긴
왼쪽인지 오른쪽인지 모르는 아내의 반쪽이 있습니다.
밤의 달처럼...
이 밤과 낮을 돌고 돌아 하루가 가고
하루 하루가 쌓여 일년, 그렇게 몇 번이 지나갑니다.
정녕 해와 달, 행복과 불행,
평안과 두려움, 기쁨과 슬픔들을 다 만드신 분이
이 둘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끌고다니는 훈련을 마치게 해주실까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모든 사람들이 밤낮을 보내고
모든 사람들이 두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가는데
아내에게는 유난히 밤이 길고 무겁습니다.
계절로 치면 겨울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중인가요?
겨울만 있는 지구 어디에 유배를 당한걸까요...
오늘 하루는 또 어느 쪽 얼굴을 더 많이 보면서 지날지
이제는 나도 궁금함을 넘어 두렵기도 합니다.
(사진은 며칠 전 생일축하 받은 병원의 행복한 아침과 죽을 맛 아픈 순간을 견디던 한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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