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으로 생각 63 - 살아야만 보여줄 수 있는 증거>
어둠이 길어지면 불안할 수도 있다.
밝은 새벽이 오지 않는건 아닐까? 갇힌 건 아닐까?
가난과 고단한 삶이 길어지면 지친다.
영원히 못 벗어나고 한 번도 웃으며 살 날이 안 올것 같다.
그 불안과 부족함, 절망을 메워주는 것이 희망이고 기다림이다.
좋은 날, 좋은 곳. 신자들에게는 다음 세상을 기다리는 이유다.
하나님과 천국이 없다면?
누가 이 질기고 긴 이별과 슬픔과 고통의 생명을 참고 살까?
아무리 좋은 처지에 사는 사람도 허무와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하물면 척박한 일상이 밤과 낮처럼 교대로 반복하는 사람들에게는.
믿음이 흔들리고 생명의 아름다움이 기운을 잃을 때면 유혹이 온다.
‘하나님이 어디있어? 천국은 무신...’
있다면 니가 그 꼬라지로 살겠냐? 세상이 이 모양이겠냐? 하면서.
처음은 반반이다가 실의에 빠진다. 유혹은 조롱으로 넘어가고.
그럼에도 손을 펴서 쥔 것을 내밀듯 보여줄 것이 없다.
‘여기 하나님!’ 혹은 ‘봐라! 천국 사진’ 하면서 들이밀 증거같은 거 없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정말 믿음은 안개속 이슬 같고 신기루일까?
하나님과 천국은 이야기꾼들이 밤새 지어낸 한낱 동화일까?
세상은 유리속 물건처럼 분명하게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보여준다.
순간마다 괴로움 슬픔은 처절하게 맛보고 견디고 느끼며 산다.
과학보다 분명하고 지갑속 돈보다 확실한 숫자로 실재 존재로.
그러나 바로 그 현장속에, 좌절과 고통속에 증거들이 있다.
날마다 몰아치는 어둠과 비극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 새로 시작하는 삶.
서로 다독이고 마음 고치고 하루를 또 성실히 살면서
저녁이면 하루에 생긴 일들을 감사로 마감하고 잠들 수 있다는 사실.
누구나 해내고 있고 그치지 않고 계속되는 믿는 이들의 생활이 있다.
‘너는 죽음으로 절망을 증거하라! 나는 삶으로 하나님과 천국을 증거한다!’
오늘도 살아내고 내일을 기다리는 우리가 곧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소망을 둔 천국을 증거하는 증인이 된다.
믿음은 원래 그런 것이다. 살아야 보여줄 수 있는 높은 수준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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