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억 인구 중에 만난 당신’
병실에서 생몸살을 앓다가 밥시간이 되어 작은 식판 하나를 받았습니다. 문득 이 밥이 얼마나 소중한지 목이 메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한솥밥 먹은 지 얼마나 되었지?' 뜬금없이 던지는 말에 아내는 말없이 생각에 잠깁니다. '생각해보니 당신과 한솥밥 먹은 지가 30년 넘었고, 이 지구상 70억 인구 중에 가장 많이 같이 밥 먹은 사람이 당신이네!'
아내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한솥밥을 30년 넘게 먹은 유일한 동반자! 부모도 자식도 형제도 그렇게 못하는 부부. 같은 날 태어나지도 못했고 같은 날 가지도 못하지만 세상을 함께 지나가면서 울고 웃으며 세월을 보냅니다. 늘 사랑스럽지는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그저 동반자라는 이유로 생사고락을 같이 했습니다.
어쩌면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저 소중하게 보내려고 각오합니다. 서로 최선을 다한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로 다짐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진짜 출발은 지금 부터인지도 모릅니다. 서로가 소중한 사람인 것을 알고, 어떻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오늘이 우리가 정말로 처음 사랑하는 날이거나 결혼기념일이 되어야하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은 왜 이런 식으로 깨닫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모도 살았을 때 소중한 줄 모르다가 마음 고쳐먹으면 안계시고, 건강도 있을 때는 막 굴리다가 꼭 아프면 아끼고 사리기 시작하는 어리석음처럼... 이게 100일간 느닷없이 시작했던 총각의 새벽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이 만든 일입니다. 그렇게 보내고 맺어주신 아내와 저의 운명입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제가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 틀림없는 사실이지요?
...그런데 왜 제 마음이 아프지요? 좀 더 미리 깨닫고 좀 더 따뜻하게 대해주는 날들이 길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이제 아내는 내가 그렇게 좋아하던 잔치국수도 만들어 주지 못하고, 호박과 두부 많이 들어간 된장찌개랑 고추장 양념 많이 바른 황태와 더덕구이도 못해줍니다. 그 음식을 만들어주며 흐뭇해하는 나를 바라보며 같이 먹던 즐거운 시간도 다시는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이런 날 올지는 꿈에도 모르고 무디고 차가우며 나빴던 한 남자로 살았던 지난 날이 많이 아깝습니다.
언제나 주어진 날에는 천년만년 넘치는 낭비처럼 까먹고 없어진 날에는 눈물로 보석같이 끌어안고 살려는 인생입니다. 지금 밥상차리고 앞에 마주앉아 밥 먹어줄 배우자가 있으면 감사히 누리면 좋겠습니다. 사랑이 시작되는 첫날처럼! 70억 중에 선택된 단 한 사람이라는 그 귀한 만남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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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0개
邦郞子 (2020.05.17 오전 7:16:44)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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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2020.05.17 오전 7:38:19)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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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내 손 말고... |
희망으로 (2020.05.17 오전 7:36:41)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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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1일은 부부의날이라네요. |
뷰티 (2020.05.17 오전 9:45:58) andro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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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히 누리겠습니다. |
희망으로 (2020.05.17 오후 12:40:33)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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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에는 그냥 행복하고 건강하게만 해주시기를! |
뷰티 (2020.05.17 오후 2:04:19) andro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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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ㅎ |
더불어 나무 (2020.05.17 오전 11:03:08) andro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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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된 주일입니다. 쓰러지신 아버지 병상생활이 시작되는 첫날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때 주의지팡이와 막대가가 나를 안위하신다는 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요? |
희망으로 (2020.05.17 오후 12:47:40)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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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고... 특별한 위로도 못드리니 ㅠ |
새벽이슬 (2020.05.17 오후 12:59:29) andro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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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살기도 아까운 시간들인데~~ |
희망으로 (2020.05.17 오후 3:47:53) iph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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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노력하지 않으면 |
nada1026 (2020.05.17 오후 1:39:20) andro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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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 찬양! 저도 유투브로 자주 듣는데 이분들의 정체가 참 궁금하데요? 교회성가대는 아리데... 하나같이 은혜롭네요. 개개인이 귀티가 나고!! |
희망으로 (2020.05.17 오후 3:48:24) iph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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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주시는 분도 귀합니다! ^^ |
닛시 (2020.05.17 오후 2:55:32) andro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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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한결같기가 얼마나 힘던데요. |
희망으로 (2020.05.17 오후 3:48:51) ipho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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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의 그날을 눈물나게 기다리는 중입니다 ㅠㅠㅎ |
민초 (2020.05.17 오후 3:57:59) andro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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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님~ |
희망으로 (2020.05.17 오후 8:55:34)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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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싸우러 나가는 길은 아니지만... |
brokenreed (2020.05.17 오후 10:51:55) androi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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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 연분이 따로 있겠습니까? |
희망으로 (2020.05.18 오전 5:56:47)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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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생연분... |
sea of glass (2020.05.18 오전 12:23:20)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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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동생때문에 빡치고 어제 만난 아버지께는 잔소리를 늘어 놓은 |
희망으로 (2020.05.18 오전 5:59:27) P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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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 축하 드려요! 드디어 배우자와 가장 많은 겸상기록하신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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