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돌아온 탕자가 내게 물었다

희망으로 2020. 6. 14. 10:43

 

 

<돌아온 탕자가 내게 물었다>

 

우리가 아는 돌아온 탕자는 문제아다. 

그런데 그가 나에게 물었다.

“너는 다를 수 있겠어?”

  

조금은 기분이 언짢았는데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이 없어졌다.

그는 분명히 사람들이 쉽게 비난할 거리는 제공했다.

자기 몫을 달라고 떼를 써서 기어이 손에 넣는 싸가지 없음도 그렇고 

한 재산 생긴 젊은 것이 우쭐하는 기분을 감당 못해 먼나라로 가서 

허랑방탕으로 그 귀한 재물을 다 낭비한 철없음을 봐도 그렇다. 

그렇게 거지가 되고 빈털털이가 되어서도 뻔뻔하게 돌아오고, 

다시 아버지의 품에 안겨 형도 못받아본 잔치상을 받는 심보들 봐도 그렇다. 

  

그러나 나는 그 내용들을 다 알면서도 한편 쉽게 비난하기는 미안하다. 

사람들은 싸가지 없고 철도 없고 뻔뻔하기도 한 그를

쉽게 손가락질하고 쉽게 단죄를 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찔리는 점은 어쩌면 나의 방탕함과 파산을 

그의 행적과 오버랩 시켜서 감상적으로 묘하게 스스로 위안하며 

슬그머니 감정적 면죄부를 주지는 않았나 싶어 미안하다. 

  

“그러니까... 너는 다르냐고?”

  

그가 또 재촉하듯 물었다. 

나는 한걸음 나도 모르게 더 뒤로 물러났다. 궁지에 몰리는 사람처럼...

세상의 많은 자식들이 부모가 재산이 많은데 그건 부모님꺼고!   

그렇게 올바로 정신이 들어박힌 사람이 얼마나 될까? 

재벌 그룹 가문에서 일어나는  왕자의 난이니 하는 거창한거를 빼고도 

명절때마다 방송되는 재산 다툼의 묘한 갈등을 다룬 특집드라마도 

보통사람들조차 돌아온 탕자와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이 점에서 돌아온 탕자인 둘째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아니, 나의 등 뒤에 숨긴 그늘진 성품이 더 어두운지 모른다.

이중적 포장으로 없는척 남의 눈을 속이면 더 나쁜 성품이 된다.

  

또 하나는 재산이 좀 많고 집안이 괜찮으면서도 

안 그런 집 자식처럼 소박한 생활을 하는 사람 별로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나도 별로 특별하게 다르다고 말할 자신 없다. 

앉으면 눕고싶고, 누우면 자고 싶고, 말타면 경마 잡히고 싶으니... 

일 안해도 먹고 사는데 일하고, 돈 널려도 사치않는 결심 아무나 못한다. 

이 점에서 탕자인 둘째와 내가 하늘과 땅처럼 다른 사람이라고 못하겠다. 

  

“넌 나에 대해 잘 알아?”

  

내가 잘 아나? 둘째아들에 대해서? 갑자기 낯선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재산을 나누어 받은 둘째는 먼나라로 가서 허랑방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그야말로 주어먹을 쓰레기도 만만찮을 정도로 구렁으로 떨어졌다. 

거기까지만알고 다 아는 것처럼 늘 멈추었다. 

그런데...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건 내게 충격이었다.

허랑방탕의 세월을 한 것의 잘잘못이나, 그 이유가 누구 탓이든, 

그 지경에서 안죽고 버티고 산 것은 분명 둘째의 각오였다. 

그 비참한 상황에서도 지킨 생명 존중이 참 귀하다. 

요즘 눈만 뜨고 나면 유명인사들의 자살을 수시로 뉴스에서 본다. 

인기 문제로, 사업문제로, 외로워서, 온갖 이유로.

그중에 배고픔을 못견뎌 자살한 사람은 거의 본 기억이 없다.

살려고 하는데도 병이나 악화된 처지로 굶어 죽은 사람은 있어도 

대부분의 자살자는 그렇게 굶어 죽을까봐 굶기 전 미리 죽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은 정말로 굶어 죽게 생겼는데도 자살하지 않았다.

  

나는 청년 때 한번 죽으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교회도 안다녔고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던 때였다. 

아버지의 욕심으로 학업 중간에 서울로 데려와서 파산해버린 상태였고 

나는 공부가 하고싶어 동대문 평화시장 주변에서 새벽 세시반부터 

350부라는 신문을 돌리는 직업배달부를 했다. 보급소에서 먹고자면서.

그리고 검정고시를 하려고 종로의 고려학원을 다니면서 공부를 하는데 

너무 고단해서 수업을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그러다 시험날짜를 놓쳤고, 그때 나이가 갓 스물이었다.

그렇게 계속 살아도 도저히 별로 달라질 가능성이 없어보여 

세상을 떠나려고 수면제를 30개나 먹었다. 

당시 을지로6가에 있던 국립의료원에 실려가서 사흘만에 깨어났다. 

너무 창피해서 못견뎌 밤중에 몰래 환자복 입은 채로 도망을 나왔다. 

나중에 병원에서 환자를 찾느라 전화가 오고 난리가 났다. 

당시 총무를 보던 분이 돈도 내고 그 뒤 보름을 자기 집에서 돌봐주셨다.

죽을 먹여주고 옷도 사주며 격려해줘서 새 출발을 하게되었다. 

그 뒤로 다시는 죽지 않겠다고 단단히 결심을 했고 거의 지키며 살았다. 

그때 굶는 것도 아니고, 얼어죽는 것도 아닌 슬픔만으로도 죽으려고 했다.

둘째아들이 처한 생존의 위험에 비하면 참 사치스럽고 여린 부끄러움이다.

 

그래서 둘째아들의 그 심정을 한편으로는 알것만 같다. 

그 벼랑의 끝에서도 죽지 않고 버틴 둘째 아들의 건강한 판단이 정말 부럽다. 

앞으론 안죽겠다고 결심을 했는데 다시 아내가 죽을 병이 들었고, 

견딜 수 없는 늪속으로 날마다 떨어지는 악몽을 버티는 중에

죽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몇번씩 충동질을 하지만 나는 뿌리쳤다.

난 이미 하나님을 알고 아이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여야할 예수쟁이였다.

내게 지금보다 혹시 더 어려운 상황이 온다면 더 묵상을 할것이다. 

썩은 음식을 주워 먹으면서도 자살하지 않은 탕자의 선택을 떠올리며 

그보다는 덜하지 않은가! 냉정하게 돌아볼 것이다. 

돌아온 탕자 둘째아들은 내게 또 물었다.

 

“너는 내 처지가 되면 어쩔건데?”

 

어떤 사람들은 그 처지가 되면 자존심이 상해서 안 돌아갈 것이다. 

물론 뻔뻔하게 다시 돈을 타내겠다고 잔머리를 갖고 갈 사람은 있겠지만 

그냥 우유부단하거나 자포자기로 복수를 자신에게로 돌려 죽기도 할거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머슴보다 못하게 대접을 받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돌아와 무릎을 꿇고 그렇게 아버지께 말했다. 

이미 망친 인생, 사기나 도둑, 때로는 강도질을 하면서 범죄자로 살수도 있는데 

둘째 아들은 그런 삶을 택한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명예도 자존심도 바닥에 떨어지고 수군거림을 받을게 뻔한대도, 

어쩌면 형이나 아버지에게 욕을 퍼먹고 따귀를 맞고 쫓겨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집으로 가겠다고 결심을 한 것이다. 

나라면 그럴수 있을까? 

짐작해보면 둘째 아들은 어쩌면 아버지를 믿었을지 모른다. 

용서를 해주시거나, 최소한 받아는 주실거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귀한 판단은 아버지의 집이 행복한 장소이며 

그렇게 가족이 모여 사는 모습이 진짜 천국임을 경험으로 확신을 한 것이다. 

그런 깊은 고백과 믿음이 없다면 굳이 불안한 집으로 갈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는 돌아온 탕자 둘째아들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기도를 올린다.

  

"내게도 아주 지독한 위험이나 서글픈 날이 온다면 

둘째 아들 같은 올바른 판단을 하게 해주시고 

아버지를 믿는 사랑의 확신을 주소서! 

한번 가출을 하더라도 영원히 천국을 등지는 일 없도록 해주시고, 

순간의 감정에 빠져 어리석은 결정을 하지 않도록 부디 지혜를 주소서! 

그리고 어떤 댓가도, 민망함도 참을수 있게 해주시고 

귀한 대접을 기대하지 않도록 겸손을 알게 해주소서!"

  

집을 떠나 갈수밖에 없는 탕자의 원죄를 가진 우리지만 

집으로 돌아오기로 결심하는 지혜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돌아온 탕자의 믿음을 다시 새겨본다. 

동화도 법정드라마도 아닌 나의 절실한 현실속 희망과 기도로...

 

(그림은 렘브란트의 '돌아온 탕자'다. 

헨리나우웬이 무지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묵상했다고 한다. 

아들을 기다리다 눈이 짖물러버려서 앞을 못보게 된 아버지의 

촛점없는 눈에서 따뜻함을 느낀다면서...

오래 전 쓴 글을 다시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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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 11개

 brokenreed (2020.05.11 오전 12:52:33)  PC

답변

흠...요즘 우리 교회 설교가 4달째 저 본문입니다.
어쨌거나...깊은 묵상거리가 있는 주제입니다.

그리고 저 그림은...레닌그라드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실물로 보긴 어렵습니다. 저는 봤지만요 ㅎㅎ

   희망으로 (2020.05.11 오전 6:45:59)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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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랬군요.
레닌그라드... 한번 가보기나 할지요.
직접 가셔서 실물을 보신 분을 안다는 것으로 대리만족이라도? ㅎㅎ

 새벽이슬 (2020.05.11 오전 5:05:36)  android

답변

집사님, 젊은 시절에 겪었던 힘듦이 오늘날 살아가는 밑거름이 되셨군요

   희망으로 (2020.05.11 오전 6:53:22)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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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걸까요? 하나님이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오늘 아침에 날기새 말씀에 부모와 하나님은 딱한 자녀를 더 사랑하신다고.
아내에게 다가가 미안하다고 했지요.
“하나님이 날 사랑하신대... 당신이 안니고 ㅠ”
“....”
“오늘 찬송을 부르는데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이라고...
널 사랑하심이라고 안하더라고, 너도 사랑해! 라던가 모두 사랑하심!
그래으면 좋은데, 안그랬어 미안해 ㅠ”
아내가 당황하더군요! ㅎㅎ
그래서 제가 단지 나는 감사할 때고 당신은 지금 부르짖을 때 라서 그렇지
나만 사랑하는건 아니니 다음엔 당신이 감사할 때가 온다니 힘내! 그랬죠.
에이, 참 나를 곤란하게 하시는 하나님... 우리 둘 사이가 얼마나 좋았는데...
새벽이슬님 말씀을 들으니 그 이유를 알것 같아서 말해봅니다.
아마 젊을 때 고생 많이 한것 때문에 제가 더 딱해서 널 사랑하심! 하시고
나는 감사할 때가 된것을~

 닛시 (2020.05.11 오전 7:30:08)  android

답변

맞아요
레닌그라드에 저런그림이 있다는 걸 알고 또 직접 본사람과 친분있는게 보통은 아니지요.
갈말이 업그레이드 된 느낌..ㅎㅎ

   희망으로 (2020.05.11 오전 7:41:02)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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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는 갈대님은 이런 구체적인 내용까지 알고 계십니다.
램브란트가 죽는 해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과
아버지의 왼손과 오른손이 좀 다른데 왼손은 아버지의 투박한 손을,
오른손은 어머니의 부드러운 손을 나타냈다는 점도 압니다.
램브란트 자신은 품에 안긴 아들이라고 생각했으며...
못마땅하게 바라보는 형을 비판하는 시선으로 그렸다는 속셈까지!
ㄷ ㄷ ㄷ...무서워요! ㅋ
전직 미술관 큐레이트 출신이 아닌지...
아님 세상 모든 일은 알고 있는 인공지능?
예나 어머니께서는 밤에 등짝을 잘 살펴보세요.
혹시 뚜껑이 있고 열면 스위치나 배선이 보일지~ ㅎㅎ
(갈대님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나는 어떻게 알까요?
저는 한때 미아리 돗자리....ㅋ)

   brokenreed (2020.05.11 오후 12:11:48)  PC

답변

ㅋㅋ
저는 저정도까지 잘 알지는 못하는뎁쇼... 잘 배웠습니다.
말씀하시다시피...그림에는 상징들이 있습니다.
탕자의 헤진 신발과 아버지의 장신구 들에도 숨은 의미가 있지요.

그는 말년에 이 그림을 그렸는데 이 것과 그가 훨씬 젊었을 때 그린 매음굴의 탕자와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 있습니다.

큐레이터는 당연히 능력이 안되고
그림은 좀 볼 줄 압니다. 집안 내력상 그런 것 같은데...

대신 큐레이터랑 사귄 적은 있다는...ㅍㅎㅎㅎ

 nada1026 (2020.05.11 오전 7:50:01)  PC

답변

아침부터 가슴이 뭉클해 집니다. 둘째아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혜안이 놀랍습니다.
둘째아들의 낡은 신발과 굳은살 박힌 발바닥이 인상적이네요. 화가의 세밀함이...

   희망으로 (2020.05.11 오전 7:53:50)  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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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님도 세세한 화가의 시선을 바로 보시는군요!
그림이 주는 전달방식은 가끔은 숨은 느낌찾기 같아요.
볼때마다 다른 생각, 감정도 주고...
볼 시기의 보는 사람 상태에 따라 그러겠지요?
하나님을 대하는 세상 모든 신자들도 아마 그 비슷한 관계가 생기는 이유기도 하고요.
저는 맏아들에 대한 불편하면서도 안쓰러운 생각들이 복잡하게 여럿 있어요.
언젠가 한번 쓰고 싶어요 ㅠ

 뷰티 (2020.05.11 오전 11:25:41)  PC

답변

얼마전에는 둘째아들이 저 였는데..
지금은 어느새 첫째아들처럼 행동하고 있는 제가 있습니다. ㅎㅎㅎ

 코오드리 (2020.05.11 오후 2:30:33)  android

답변

객관적인 해설없이 주관적인 느낌만 가지고 바라봐도 행복한게 그림인데 해석까지 곁들이면 그림 감상이 엄청 풍성해집니다.
예전에 세종문화재단에서 하는 미술 강의를 12주 들은적 있는데 그때 더욱 그림과 사랑에 빠졌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