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그때 그 말씀들 1, '모든 육체는 풀의 꽃과 같고...'

희망으로 2019. 3. 7. 16:10

지독한 어둠을 통과할 때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혼자뿐인 것 같고 원망이 더 빠르게 나온다그러나 고비를 넘기고 지나서보면 붙들고 위기를 넘겨온 동아줄이 있었다하나님이 말씀이 되어 밤낮 동행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그때 그 말씀들을 돌아본다오늘은 다시 그 어느 날의 과거가 될 테니. - 쓴 사람의 덧붙임


<그때 그 말씀들 1, '모든
 육체는 풀의 꽃과 같고...'>

 

"……."

 

2008 5 9막내 딸아이 12 생일날 아침, "이번 생일 선물은  해줘야 하지?" 묻는  말에 아내는 대답이 없었습니다아들만 둘이고 여자라고는 아내뿐이라 조금은 사납던 집에 와준 딸아이라 편애를 내놓고 하게 되었습니다 딸아이의 생일이라 들뜬 아내는 대답도 못할 만큼 혼자 아팠습니다입을 다문 ...

 

"저녁에 맛있는 외식을 시켜주는 걸로 할까피자나  그런~"

"… 목이 아프네."

"약국 가서   사먹어 키워서 애먹이지 말고~"

"……팔도 저리다."

"이따가 어떻게 할지 생각하면 전화해 !"

 

그렇게 아내와 따로국밥처럼 어긋나는 대화를 하고 집을 나와 일터로 갔습니다그러나... 아내는 종일 전화가 없었습니다퇴근  돌아온 아침보다  절절 매는 표정으로 목과 팔을 주무르고 끙끙거리는 아내를 보며 걱정보다는 짜증이 앞서서 나왔습니다.

 

"병원이라도 가보지 그러고 버텨…."

 

 목소리엔 약간의 짜증이 섞였습니다말도 없이 이부자리 깔고 돌아누워 있는 아내를 향해하루 종일 일하고 쌓인 피로가 그렇게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할 말을 날렸습니다그때는 정말 몰랐습니다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무엇이 모든 것을 무너뜨리는지 전혀 몰랐습니다아내의  통증이 장차 재산이고 집이고 모든 것을 날려버릴  몰랐고아이들의 장래마저 폭풍에 휘말려 세상을 떠돌게 하는 시작점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연애할  아내에게 세상의 남정네들이 흔하게 해대는 공수표를 예외 없이 날렸습니다. “매년 결혼기념일엔 여행을 데리고 가주겠어푸하하하~“ 그러나  약속은 결혼    번인가만 지켜지고 진짜 공수표가 되었습니다.

 


(1988 9 3 종로 기독교 100주년 기념관에서  결혼식  아내)

 

"우와~~ 누구세요?"

"탤런트 같다진짜 이쁘다!"

 

아내는 평소에 워낙 화장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 조금만 했는데도 너무 달라보였습니다뽀얀 짙은 눈썹빨간 입술초가을의 푸른 하늘과 너무도 어울리는 맑은 신부였습니다평소에 자주 보던 사람들도 달라진 느낌에 칭찬  놀림 반으로 탄성을 질렀습니다.

 

사실 나는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을 살고 싶었습니다그것은 무슨  철학이나 독신주의가 아니라  처지와  능력을 감안한 결심이었습니다죽자 살자 돈을 모으는 성격도 못되고 아무리 해도 버는 일에 의욕이 생기지 않고 다른데 정신이 팔리니 같은 사람이 남편이 되고 아빠가 되면  가족이 얼마나 위태로울까단지  불안한 이유로….

 

그러나 요리조리 피하던  말도  되는 이유로 도망치던  아내를 만나면서  결심이 깨졌습니다처음  둘이 만난 자리에서 3시간에 걸쳐 이야기를 나눈  무렵에 나는 아내에게 진지하게 말했습니다.

 

"나랑 결혼해줘!"

 

당연히 아내는 진담인지 농담인지  수가 없어 당황도하고 그렇다고 거절의 말도 못하며 주저하였습니다. "그럼  다시는 당신을  만날래내가 서른 가까운 나이에 스무살  넘은 사회 초년생 아가씨를 연애나 하자고 만나는   양심에 걸려서…."

 

그렇게 헤어진 다음 같은 직장 1층에 근무하던 아내는 2  사무실로 쳐들어왔고 마침 아무도 없는 상황이라 문을 닫고 내게 항의를 하였습니다. "세상에 어떤 여자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결혼해달란다고 기다렸다는  바로 하나요너무 하잖아요?"

 

그리고  번째 바깥에서 만난 자리에서 아내는 결혼을 승낙했습니다  번째 만남에서대신  결혼기념일에는 여행을 데려가겠다고 달콤한 약속을 했습니다.

 

그리고 20년이 지나고... 4개월 가까이 아내는 계속  병원  병원 다니면서 검사와 치료입원과  검사그러는 중이었습니다. '올해 결혼기념일은 아내와 여행이라도 다녀와야겠다속으로 다짐을 했습니다그동안 부려만 먹은  너무 미안해서 달째 통증과 싸우느라 온통 회색빛 우울증이 걸려버린 아내가 딱해서 위로를  .

 

 

(극심한 두통과 구토로 살이 15킬로 이상 빠져가던 ... 희귀난치병 진단 직전의 아내)

 

며칠 입원해서 MRI  검사다른 검사를  신경과 과장님이 가족을 부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가족을    데리고 오라고 하지?'  궁금했지만  으레 병원들이 하는 절차인가보다그렇게 생각하고 둘째 아들을 동행해서 의사 선생님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형광등이 비추는 벽면에 사진들을 걸어놓고컴퓨터모니터에는 머릿속을 보여주는 MRI 화면을 띄워놓고 선생님은 이런 저런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척수종양 같습니다악성인지 양성인지 우리 설비로는 구분을 못하겠네요. 4 종합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합니다수술을 해야 한다면  척수 속이라 그곳 밖에 못하기 때문에…."

 

멍해진 머리와 후들거리는  다리과장실을 나와 주저앉아 말이 없어진 내게 둘째 아이는 위로를 했습니다. "양성일 수도 있다잖아요기운을 내요 아버지!"

 

결혼 20주년 기념일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어사람들이 부여하니까 그렇게 느껴지는  ...’ 이라며떠날  없게  상황을 애써 달래보지만  안됩니다자꾸만 아내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초가을의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사진을 찍기 위해 정원을 걷던 20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짠해집니다.

 

나중에 아내는 희귀난치병으로 밝혀지고 진단서에는 발병일이 적혔습니다. 2008 5 9하늘의 선물이라고 기뻐했던 딸아이의 생일날이  자리에  박듯 새겨졌고 진단을 통보 받은 날은 아내와 결혼한 20주년 되는 날이었습니다마치 지금까지 계속 주기만  귀한 선물의 값을 하늘이 받아가기로 작정한 .

 

사람이 사는 일생은 그렇게 행운과 불행이 교대로 온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그것은 동전의 양면손의 안과 등처럼  몸으로 붙어 있음도 뼈저리게 느껴야 했습니다성경의 어느 구절들이 머릿속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마치 폐쇄된 어느 시골 역을 통과하는 비둘기호처럼 천천히….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 베드로전서 124~25]

 

아름다운 아내의 기억들이 풀의 꽃이었을까 꽃이 시들고 마르는데 내가 얼마나 원인이 되었을까그런 자책이 몰려왔습니다. 1988 9 3 결혼고생길을 걸어와서 도착한 2008 9 3결혼 20주년 기념일에 이런 결과를 아내에게 전해야하다니 미안해서 말문이 열리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