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을 버티고 만신창이가 되어 결국 치과를 다녀왔다. 예상대로 신경에 염증이 생겼고 불안하던대로 마취를 하고 신경치료를 하다가 포기하고 이를 빼야 했다. 이미 한번 떼우고 씌웠던 곳인데 더 깨다가 남아나지 않을 거라는 판단에 빼기로 했다.
더 큰 문제는 사진판독결과 그나마 입안에 겨우 남은 치아 4개 중에 2개도 충치로 상해 있어서 멀지 않아 하나는 빼고 하나는 치료 후 씌워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그렇게 되면 지금 사용하는 부분틀니가 맞지 않아 새로 만들어야하고 아래가 변하면 위의 것도 새로 맞추어야 해서 거의 300-400만원사이를 준비해야 한다는 진단이었다.
“휴...” 한숨만 쉬는 나에게 치과의사는 더 절망적인 조언을 했다. 지지를 해주는 이가 없어서 여지껏 사용하던 능력의 절반도 감당을 못할 것이고 그나마도 몇 년을 못가서 남은 치아 중에 하나라도 이상이 생기면 또 반복해서 비용이 들어갈 여지기 있다는 예상을 했다.
좀 오래가고 이상적인 방법은 아래쪽에 6개 정도의 임플란트를 기둥처럼 심고 서로를 묶어서 연결시키면 상당히 오래 사용할 수 있고 본래의 자기 치아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는데 비용이 거의 기둥뿌리를 뽑는 수준이었다. 800만원 안팎정도를 예상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우리 처지에는 불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냥 살아야하는데... 이번처럼 신경이 아프지나 말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녹초가 되어 가제솜을 뺀 치아부위에 꼭 물고 돌아왔다. 그동안 열흘 가까이 제대로 못먹고 지친데다 앞으로 2-3일을 더 못 먹을테니 좀 쉬기로 하고 딸에게 엄마를 맡기고 방으로 와서 쉬는데... 참 심란하고 처참한 기분이 몰려온다.
이 하소연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오늘 글을 쓰는 진짜 이유다. 지치고 잔뜩 풀이 죽어 누워 쉬다가 문득 새로 옮기면서 만난 병실 룸메이트 모녀가 생각이 났다. 나에게 몰려오는 압박감과 불투명한 미래로 불안한 상황보다 훨씬 더 전망이 없음에도 열심히 투병하고 재활운동을 하는 가족.
옮기기 전 병원에서도 7년 동안이나 자주 보았지만 서로 다른 층에서 지냈기에 구체적인 내용을 몰랐었다. 이제사 듣고 알게 된 무거운, 그러나 열심히 사는 가족들이다. 아침 6시부터 씻고 나가서 운동을 시작하면 밤 9시까지 식사시간 외에는 거의 병실에 머물지 않는다. 워커라는 걷는 보조기를 사용해서 복도를 몇바퀴나 돌고(거북이 걸음정도의 속도지만) 벽에 붙은 손잡이를 잡고 일어나고 앉고 버티거나 계단을 보호난간을 잡고 한발씩 오르는 운동을 7년 넘도록 하고 있다.
당사자로 환자인 그 아이가 교통사고로 시작된 불행은 10년을 넘어선다. 고등학생 졸업을 앞두고 유난히 대학을 가고 싶어 하며 열심히 공부하며 꿈에 부풀었던 그 둘째 딸. 학교 성적이 늘 앞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갔다며 아쉬워하는 그 엄마의 얼굴은 그 이야기를 꺼내면서 무거워졌다.
지금도 반듯하고 교과서처럼만 사는 그 아이는 치킨도 피자도 커피도 안 먹는다. 몸에 해롭다는 것은 어떤 것도 안 먹고 몸에 좋은 것만 고집스레 먹어서 엄마를 무지 불편하게 한다는 그 딸이 사고가 나던 날은 뭔가 이해가 안 된단다. 어느 날 친구가 무단횡단으로 도로를 건너는 뒤에 잠시 주춤하다 순간적으로 따라갔는데... 그 친구는 그 자리에 즉사하고 딸아이는 거의 죽음직전에서 중상으로 간신히 살아났다. 그런데 뇌를 다쳐 언어와 기억력이 심한 장애를 가져왔다. 온몸의 후유증은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자애가 더 치명적으로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한 달에 병원비 350만원 안팎, 그 비싼 금액을 보험적용 없이 전부 본인부담으로 7년째 병원 생활을 해오고 있다. 교통사고로 보험보상으로 받은 환자는 2중으로 건강보험 적용을 못 받는다. 더구나 무단횡단 중 난 사고라 큰 보상도 받지 못했을 거다. 그 이후로 아버지는 포크레인 중장비 일을 하면서 그 병원비와 생활비를 벌며 혼자 생활을 하고 엄마는 24시간 10년째 곁에서 손발이 되어 살고 있다.
그 수고와 기약없는 시간을 어떻게 감당해왔을까? 가끔 말이 통하지 않고 지친 순간이면 엄마 입에서 그냥 툭 던져지는 말에 처음에는 많이 놀랐었다. “그러려면 얼른 죽지, 뭐하러 사냐?” 스스럼없이 내뱉는 말에 듣는 내가 오히려 민망했지만 그런 말도 없는 아마도 지금까지 버티고 오지도 못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도 비슷한 충동이 들 때가 있었기에...
순간의 행동 하나가 본인은 물론이고 엄마와 아빠, 나머지 가족의 일생을 다 바꾸어버렸다. 어쩌면 죽는 날까지 계속 이어질거다. 버리거나 떠나지 않는 다음에야 부모가 자식보다 오래 살 수는 없는 법이니 그 걱정은 안하고 살 리가 없다. 부모 사이가 아닌 부부사이인 우리는 동급 세대인데도 아내를 두고 남편인 내가 먼저 세상을 떠날까봐 수시로 잠을 못 이루며 불안한데...
그러나 늘 새로 힘을 내며 운동과 병원생활에 적응하는 그 모녀를 바로 옆에서 보면서 참 못된 위로를 받는다. ‘나는 저 모녀보다는 훨씬 덜 불안한 조건이 아니냐’ 그런. 매주 토요일이면 같이 집으로 돌아가서 살림을 정리하고 가족의 밑반찬을 만들어 돌아온다. 덕분에 몇 번이나 만들어 오신 반찬을 우리도 덤으로 얻어먹었다. 비싼 서리태 콩자반이나 가지를 넣은 강된장두부 무침 등,
주일이면 빠짐없이 예배시간을 지켜 기도를 하시는 그 두 모녀의 생활을 지켜보며 나는 종종 너무 가라앉는 내 마음과 몸을 다시 일으켜 세우곤 한다. 내일을 모르고 답답하기는 저 모녀가 더할텐데도 열심히 사시는데 나도 힘내야겠다. 오늘 하루를 버티면 편하게 감사하며 잠에 들었던 예전 최악의 시기를 떠올려본다. 긴 세월에 누적된 고단함이 그때와 다른 점도 있지만 비슷하게 병원생활을 하면서도 보여주는 분들의 본보기는 정말 보고 배워야 한다. 멀리 가는 사람은 너무 가까이를 보며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새기며.
부디 이 침몰하는 낙심과 불안감을 부리치고 다시 웃음을 얼굴에 담고 싶다. 내 주위의 사람들, 또 아내와 아이들에게 요즘 너무 좌절의 말을 하며 사는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미안하다. 안 그래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아보지만 작은 문제하나만 닥쳐도 이제는 예전처럼 씩씩하게 못 넘긴다. 많이 약해진 것 또한 현실이니 인정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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