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한 부분이야!”... 이 말은 섭섭할까? 고마울까?>
나는 누구에게도 그의 전체가 되지못한다.
그 말은 다른 누군가도 나의 전체가 되지 못한다는 말과 같다.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사이 일지라도 그렇고,
피와 유전인자를 나눈 부모 자식일지라도...
그럼에도 우리는 상대방에게 “너는 나의 일부분이야” 라는 말을 들으면
어느 면에서는 좀 서운하기도 하다. 나름 난 너의 아주 많은 부분일거야 라거나,
어쩌면 나는 너의 전부야! 라는 감정을 가진 가까운 사이라면 더 그럴 것이다.
왜 나는 너를 그리 생각하는데 너는 나를 여러 부분중의 한 조각 정도로 보는지
아쉽고 서운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그러나... 아서라. 비록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마음을 가질지라도 그건 오버다.
착각이고 심지어는 잘못된 긴장상태로 들어서는 첫 걸음, 잘못 채워지는 첫 단추일지도.
나는 너의 전부니... 너도 나의 전부가 되어야 해! 라는 마음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리고 서로를 옭아매는 구속과 불편한 가시들이 되는지 인정해야 한다.
그런 부모에게 자식들은 숨이 막힐것이고 연인사이에는 집착과 부담을 부를 것이다.
돌아보자.
누구도 남의 고통을 더 이해할 수 있을까?
치통으로 밤잠을 뒤척일때 꼭 같은 통증의 공감으로, 똑같은 시간동안을 동행할 수 있을까?
갑자기 이유없이 몰려오는 외로움과 불안과 혹은 반대의 희열과 신바람이라해도
타이밍을 맞추고 오차없이 완벽한 공감의 상태로 보낼 수 있을까? 어쩌다말고 일생을.
겉으로 같은 날 따라 죽어줄수는 있어도 죽음에서 건져주지는 못하는 무기력함은 또...
그 모든 각자의 고유한 존재를 인정하고 우리는 모두 하나의 섬들이라고 치자.
그래도 우리가 서로에게 “난 너의 일부분이야!” 라거나 “넌 나의 한 조각이야!” 라는 사이는
정말 귀하고 복된 사이다. 완벽한 전체로 한덩어리가 아님에도 결코 불행한 사이가 아니고.
우리가 아는 전체는(그게 나의 몸이든 너의 정신이든) 일부분들이 모인 결과이기에.
한 부분, 한 조각씩을 빼고나면 전체라는 덩어리는 있을 수가 없다. 무너지고 없어진다.
그렇게 일부분은 전체의 한 속성을 가진 중요한 덩어리들이다.
일년에 하루가 없는 해가 있고 일생에 한 해가 빠진 채로 완성이 가능한가?
어쩌면 성경은 일찍 그 진리를 알고 이렇게 말했나 보다.
'이것저것 끄적 > 길을 가는 사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아한다는 것은 (0) | 2018.06.23 |
---|---|
도움말을 부탁합니다. 법원특별송달 (0) | 2018.06.23 |
계족산성을 그리워하며 (0) | 2018.06.18 |
머물 곳은 장소가 아니고 사람의품 (0) | 2018.06.18 |
당신은 어떤 틈을 가지셨나요? (0) | 2018.06.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