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수난, 남자의 콩깍지>
“좀 도와줘요! 집사람이 실신했어요! 제발 빨리 좀..."
화장실 벽에 달린 비상벨을 몇 번이나 눌러도 간호사가 오지 않아 소리를 질렀다. 잠근 문도 열어줘야 들어 올 수 있는데 아내는 눈이 흰자위만 보이고 몸은 쓰러져서 손을 놓을 수도 없고 낭패에 빠졌다.
무리를 한다 싶었는데... 기어이 사단이 났다. 조마조마하면 거의 어김없이 현실이 되는 무슨 법칙 같은 게 있는지 궁금할 정도로 따라오곤 했었다. 그래도 요근래는 한참을 잘 지낸다 싶어 잊을 만 했는데...
지난 번 목 안 성대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기관지 수술을 하고 이젠 끝! 그랬는데... 두 달 만에 또 신장염증으로 39.6도 고열로 응급실을 거쳐 수술을 했다. 거의 20여일을 잘 먹지도 못하고 고생한 뒤였지만 약도 떨어지고 미룰 수 없어 일산 국립암센터를 장거리로 또 다녀온 게 화근이었다.
며칠을 미룬 배변 때문에 배도 불편하고 몰골이 말이 아니라 머리도 감겨야 했다. 기운이 완전 바닥나서 한 번 일어났다가 눕는 것도 힘들어하더니 기어이 사고가 난 것이다. 더는 못 버티겠다고 일으켜 세우다가... 그냥 졸도를 해버렸다. 환자복 바지랑 속옷도 내린 채로... ㅠㅠ
급히 뛰어 온 간호사들과 함께 원장의사선생님도 뛰어오고 가까운 재활치료실의 남자선생님도 뛰어오고...ㅠ 아무래도 늘어져버린 사람이 무거워진 남자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간호사선생님들이 도움요청을 한 것이다.
나 혼자 수습이 안 되어 올리지도 못한 아랫도리가 벌거벗은 상태라 침대시트하나를 급히 사용해 간신히 덮고 세 남자가 아내의 어깨 다리 허리 부분을 나눠 들고 침대까지 옮야 했다. 축 늘어진 사람은 훨씬 더 무거워진다는 걸 실감하며 낑낑 매는 사이에 민망한 상황이 일어났다. 아래를 덮은 시트가 허리를 부축하는 손에 밀려나 벗겨져서 그만 아내의 치부가 드러나고 말았다. 에구... 다리쪽의 원장님이야 뭐 의사니, 하지만 머리쪽을 잡고 옮기는 남자선생과 복도에서 쳐다보는 사람들에게 다 노출된 것은 참 민망했다. 하지만 사람이 의식을 잃고 경황이 없는데 창피고 뭐고 어쩔 수 없었다. 불행중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아내는 정신을 잃은 상태라 몰랐고 나중에도 하나도 기억 못하고...
하기는 당황스럽고 빨리 깨우느라 계속 말을 걸고 뺨을 많이 때렸는데 그것도 기억 못했다. 산소마스크에 링거 달고 두어 시간 지나니 집사람은 정신이 맑아졌는데 긴장이 풀리면서 이번에는 내가 온몸에 기운이 다 빠져 서 있기도 힘들었다. 몇 번 겪은 일인데도 익숙해지지 않고 당할 때마다 힘들다.
아내는 이 일 말고도 참 민망한 요즘이다. 지난주도 방광스탠스 관 빼느라 수술했던 대학병원에 가서 남자 의사선생 앞에서 다리 벌리고 요도로 내시경 넣어 제거했다. 수술 때는 차라리 전신마취나 해서 몰랐지만 이번에는 마취도 없이 맨 정신에 의자에 시술용 의자에 앉아 눈앞에서 얼굴을 마주 보며했으니... 에구... 수난의 가을이다. 암센터 진료보며 머리 두통과 어지러움이 잦아져 정밀 검사를 위해 결국 MRI 검사를 예약하고 왔다. 따로 또 올라가기가 너무 고단해 다음 달 진료와 동시에 하려고 성탄절 다음날인 12월 26일~27일 이틀을 1박2일로.
요즘 여기저기 돌아가며 자꾸 탈이 나고 기력이 점점 곤두박질 쳐서 좀 불안하다. 면역력을 억제하는 약을 계속 쓰면서 부작용으로 수치가 너무 떨어져서 그런 걸까? 결핵균도 양성으로 나오고 백혈구 수치도 떨어지고, 간염 항체도 없다고 조심하라는 진단을 듣고 내려왔다. 그래서인지 온갖 병이 나고 체력도 나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 휴... ,
그럼에도 내 눈의 콩깍지는 안 떨어지나보다. 수액 링거를 달고 지쳐서 계속 잠에 빠져드는 아내를 머리맡에서 지켜보는데... 그래도 참 예쁘다, 오똑 솟은 콧날도, 작은 입술도, 앞뒤 짱구인 이마도. 거듭되는 주사와 검사와 수술에도 잘 견디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다. 아픈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따뜻한 몸이 느껴졌다. 사랑스러워 몇 번이나 이마에 손등에 입맞춤을 했다. ‘고맙다, 고맙다. 사랑해, 당신 참 예뻐!’ 하면서.
수난의 계절, 이 가을이 지나가는 중이다. 뚝 떨어진 창밖의 날씨와 서리 내린 곳과 지금 미시령에 눈이 10센티나 오고 있다는 티비의 뉴스가 멀었다 가까웠다 하며 들리는 병실 안에도 새 계절이 성큼 오고 있다. 겨울이. 그래도 떨어지지 않는 체온처럼 우리의 사랑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여자의 수난과 남자의 콩깍지가 동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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