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움에서 잔인함으로, 다시 도망가기...> # - 부러움 "나는 다음에 아픈 사람을 돌봐주는 간병봉사를 꼭 할거야!" 이 무슨 고상한 결심? 고난을 통한 인생변화? 그럼 얼마나 좋았을까만... 천만의 말씀, 만만의 가당치 않은 이유에서 나온 소원이었다. 그 동기는 창피할 정도로 엉뚱했다. 어느 노래가사처럼 '이유같지 않은 이유', 그것은 바로 부러움이었다. 가족 아닌 직업 간병인들을 보면서 생긴 소원이었다. 각종 돈걱정에 쪼달리지 않으면서 아픈 환자만 보면 되는 입장이 정말 부러웠다. 그이들은 도무지 병원비니 생활비니 속태우는 근심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자고 나니 유명해져 있더라'는 말이 있지만 나는 자고나면 병원비가 늘어나 있었다. 오죽하면 보험으로 돈 걱정이 없는 교통사고 환자가 다 부러웠다. 그래서 이런 몹쓸 말을 할 정도로. "당신도 차라리 교통사고로 이렇게 아팠으면 병원비 걱정이라도 안할텐데, 야속한 아내야..." 또 하나는 고통과 슬픔의 공유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운 처지가 부러웠다. 나는 아내의 상태가 나빠지면 잠을 못이루었고, 응급실 중환자실을 들어가기라도 하면 가슴이 쪼그라들었다. 그 간병인들은 몸이야 어느 정도 고단할 지라도 마음의 고단함은 나와 같지 않았다. 심지어 환자 상태가 심해지면 자기들끼리 다음 말(환자)로 갈아탈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빠보이는게 아니라 부러웠다. "아무래도 오래 못갈거같아, 다른 환자를 또 알아봐야지 뭐" 그래서 생긴 결심, 나도 다음에 저렇게 병원비 걱정도 않고, 최악의 경우 돌보던 환자가 세상을 떠나도 땅이 꺼지는 슬픔에 빠지지 않으면서 간병을 하는 안전지대에서 살아보리라 마음 먹었다. '무한 책임 아닌 관계, 무거운 고통 아닌 가벼운 동행...' 일종의 시샘, 더 심한 내 처지에 대한 보상심리 같은 이유에서 생긴 소원이었다. 못났지만 한편 처량한 소원... ## - 잔인함 "아, 정말 한대 쥐어박고 싶다. 저놈의 주둥아리 확 찢어 버릴까보다." 진짜 입에서 씩씩 소리가 나왔다. 왜 그렇게 얄미운지, 나도 모르게 뭐가 튀어 나올 것 같았다. 주먹 일지 쌍욕일지. 어떤이는 회복될 희망도 없이 통증을 안고 죽는 날을 기다리는 그 앞에서 서너달, 길어도 반년이면 정상생활로 돌아갈 사람들이 푸념을 늘어놓고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들다든지, 아파서 잠을 못잔 이야기며 들어간 치료비가 얼마라는 둥, 그야말로 기둥무너지는 집앞에서 울타리 망가진 신세를 더 크게 넉두리 하는 꼴이라니. 미운 것은 그런 말 들을 때만이 아니었다. 인지 기능이 떨어진 환자들이 해대는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과, 오랜 투병으로 망가진 심성의 사람들이 싸움닭이 되어 하는 멱살잡이 시비에 시달리면서 환자 자체가 싫어졌다. 심지어 환자복 입은 사람조차 보고 싶지 않아졌다. "어이구 지겨워! 꼴도 보기 싫어...이놈의 병원, 환자, 아픈 소리, 아픈 표정도 싫다! 정말..." 어느 날은 아내의 입에서 나오는 끙끙 앓는 소리가 열이 올라 뜨거워진 얼굴에 찬 수건을 갈아 주면서도 짜증이 났다.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러니 무슨 간병봉사? 자격이 안된다. 십년이라는 긴 시간을 옮기는 병원마다 문병 와주신 고마운 분이 있다. 이 지경이 되기 전 아내와 내가 다니던 시골교회 목사님과 사모님. 어느 날 문병왔을 때 내게 그러셨다. 나중에 아내가 회복되든지, 혹은 다른 경우라도 아픈 사람들을 만나 위로해주고 간병해주는 일을 좀 하면 잘하겠다고. 예전에 내 입으로 그렇게 말 한적도 있으니 그 분들은 지나친 죄 없다. "못해요. 아니, 하면 절대 안됩니다." 단호한 의외의 내 말에 두 분이 이해가 안되는 얼굴을 하셔서 위의 부작용을 설명해야만 했다. 부끄럽고 민망한 자기고백,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카톨릭신자의 마음처럼. 그리곤 "저는 열번을 생각해봐도 자격도 없고 잘 할 자신감도 없어요." 한 마디 더 붙였다. 쓰라린 체험, - 고통을 지나면서 사람들이 인내심이 늘어나고 다듬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잔인해지기도 한다는 경험을 했다. 자수성가를 한 사람중에 남을 돕는 이도 생기고 더 수전노처럼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오며 자기 경험을 악용하는 사람도 생기더라는 말이 이해된다. "그 정도는 힘든 것도 아녀! 내가 그 정도면 춤추겠다... 약해 빠지기는," 가끔 내 입에서도 툭 튀어 나오는 이 잔인한 말에 내가 더 놀라기도 한다" 화끈거리는 얼굴을 감추면서... ### - 도망가기 나는 이제 도망 간다. 아주 소심해지고 나 자신이 아주 못 믿을 소인배가 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어쩌면 남들에게 손가락질 비난을 받을지도 모른다. '받았으면 갚을 줄도 알아야하고, 더 이해심도 늘어야지 말이야! 그게 뭐하는 태도야?' 하는 비난. 마땅히 먹을 욕이다. 다행스런 하나의 소득이라면 이런 비난 받을 태도를 보이는 고난 후유증을 가진 분들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그것도 감사하다. 비록 그 태도가 좋은 것도 바람직한 것도 아니라고 나도 못 박으면서도. 같은 물을 먹고도 소는 우유를 만들고 뱀은 독을 만든다고 한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나는 불행을 먹고 더 다가가는 쪽이 아니고 도망가는 쪽이 된 걸까? 아쉽지만... 그래도 자꾸 그쪽이 신경쓰인다. 종종 몇십년을 치매나 병든 배우자, 장애 가족을 돌보다 비참하게 죽이고 버린 뉴스를 보면서 어른거린다. 오죽하면, 얼마나 시달렸으면 그럴까... 그 긴 시간의 후유증이 파고 들었을 상처를. 비난과 함께 이해도 하게 된 것이 내 고통스런 십여년 삶의 소득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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