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우리는 '갈릴리마을음악회'라는 천국을 다녀왔다

희망으로 2017. 6. 8. 09:27




<우리는 ‘갈릴리마을음악회’라는 천국을 다녀왔다>


1. 천국 가는 길, 그리움이 쌓이면 가게 된다?

“아무래도 힘들겠다... 그치?”

반가운 이들이 모이는 음악회도 참석하고 싶고, 산 허리춤에 터잡고 건너편 산봉우리가 예쁘게 보인다는 ‘힐링캠’ 나마스테 하우스도 보고 싶었다. 사진 속의 잔디마당이며 원두막에 앉아도 보고싶고... 

그런데 아무래도 무리였다. 한 달째 시름시름 기운이 바닥나서 하루건너 하루씩 재활 치료를 못 받고 빠지는 중인데다 닷새 전에는 일산 국립암센터 장거리 검사진료를 다녀와야했다. 그 와중에 아내 어금니가 부서져서 치아에 기둥세우고 덮어씌우는 치과진료가 하루 전날 또 잡혀 있고.

“음악회...가고 싶다.”

아내는 늘 나지막이 말하면 내 귀를 통해 내 안에서는 천둥처럼 크게 증폭되는 마술을 종종 부렸다.  음악회를 하루 앞둔 오후에 아내는 기어이 그 마술을 또 부렸다. ‘어쩌라고? ㅠㅠ’ 자꾸 내 속에서 커져가는 그놈의 목소리를 내버려두었다가는 깔려 죽을 지경이라... 내가 접었다. 다녀와서 자리 깔고 눕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두고두고 아쉬운 한숨을 듣는 고문보다!

“가자! 까짓 죽기야 하겠어? 음악회 가자!”

부산의 하얀새장로님도 전화로 물어보실 때 가기 힘들 것 같다고 대답했다. 캐미님도 댓글에서 '음악회 가겠네요?' 하는 말에 못갈 것 같다고 댓글로 말했다. 사실 그래야 할 상태였으니. 그런데 여러 못갈 상황보다 더 힘이 센 것이 있었다. 당하기 전에는 몰랐던 그것! 바로 ‘그리움’ 사무치는 마음이었다.

“아...어쩌지?. 비가 종일오고 내일까지 온대, 당신 휠체어 오르내려야하고 거긴 더구나 상가처럼 지하주차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 폐를 끼칠 것 같고 당신 건강도 걱정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가뭄으로 고생하는 중에 들리는 단비라 불평도 못하겠지만 내게는 속상한 일기예보였다. 겨우 마음먹었는데 또 장애물이 눈앞에 턱... ‘안되면 못 가는 거지 뭐,’ 아내는 심드렁하고. 

“그냥 가자! 비 많이 오면 돌아오지 뭐, 오가는 길 드라이브 한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출발했다. 그립고 사무치는 곳은 그렇게라도 가야 한다. 못 갈 상황과 두려움, 걱정이 바위처럼 길 한가운데 드러누워 막아도 가고 싶다는 더 큰 심정 하나로 그곳을 향해 가는 거다. ‘이 세상 험하고 나 비록 약하나...’ 찬양처럼 이 세상은 험하고 나는 비록 약해도 천국이 그리우면 모든 것을 넘어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갈릴리마을 음악회는 노래를 듣는 정도에서 더 귀한 천국이 되어갔다. (나중에 광주의 예닮 가족찬양단 엄마이신 참새맘님의 음악회참석기 글을 보고 알았다. 아, 우리만이 아니구나. 발목 잡는 이유를 뿌리치고 떠나 온 분들이...) 

  
2. 어느 곳에 어떤 처지로 있던지 곁에 계시는 분.

“어? 저 아이는 시리아에서 왔다던 그 아이?”

언젠가 섬나의집 사모님이 올리신 글에서 보았던 그 아이 같았다. 많은 다문화 아이들이 결혼이나 취업으로 한국에서 태어나지만, 그 아이들보다도 더 조금 다른 생김새는 바로 눈에 띄었다. 첫 번째 순서로 발표하는 섬나의집 아이들 공연이 어찌나 힘차고 밝은지 실내가 쩌렁쩌렁 울렸다. 섬나의집 사모님은 차에서 굴러 떨어져 깨어진 장구 하나가 전체 조화를 깰까봐 염려스럽다고 했지만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 아이들의 무리 속에 시리아 아이는 두 가지 감회를 동시에 주었다. ‘고마움과 안쓰러움’, 원치도 않는데 품과 같은 조국 시리아를 떠나 타국에서 생활하게 된 그 아이의 처지는 결코 신날 일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손길들이 그물을 촘촘하게 만들어 아이를 안전하게 다치지 않게 받아주고 있음이 분명했다. 밝은 웃음과 서러움을 떨쳐낸 자유로운 율동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어쩌면 다른 합창 단원 아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고 저마다 고개 숙이고 그늘 질 수도 있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잘도 이겨내며 꽃을 피우는 것 같아 대견했다. 애쓰는 섬나의집 사모님과 도움 봉사자들, 후원자들이 애쓴 결과같아 참
고맙게 느껴지고 아이들 뒷편에 어른거렸다. 아이들이 부르는 경쾌하고 맑은 천상의 목소리도 좋았지만, 열배 백배 더 아름다운 삶들이 저대로 쭉 천국까지 이어지면 진짜 큰 한 판의 음악회가 될 것도 같다. 하나님 한 분 앉혀놓고 공연하는 음악회!


3.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대여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아이를 중환자실에 누여놓고 차 기름값도 떨어져 잔돈 통장을 뜯어 버스타고 병원으로 가는 부부의 귀에 들려왔다는 노랫말, 그래서 아이를 회복시켜주면 작은 곳 어디라도 다니며 찬양으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전하겠다는 기도를 올렸다는 아빠, 결국 아이를 회복시켜주셔서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되었다는 광주 예닮이네 가족밴드의 간증은 그곳에 모인 이들에게 박수와 감동을 불러왔다. 

다소 작은 체구인 7살의 소망이는 목소리는 결코 작지 않았다. 또박 또박 불러내는 가사들은 어른 찬양단들이 줄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깊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래서 하나님은 아이들이 하는 기도, 찬양을 더 귀하다 하셨고 좋아라 하셨나보다. 여섯명의 아이들, 엄마 아빠와 할머니까지 총 9명의 작은 찬양선교단이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손을 끌어다 악수를 하듯 마주 잡게 해주는 귀한 사역을 하시기를 마음으로 기도했다. 

어느 가정, 어느 곳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많은 고난들, 불행들, 그럼에도 절대 외면하지도 버리지도 않으시는 분이 속삭이는 말을 들려주신다. “야, 내가 여기 있어! 걱정하지 마!” 우리도 참 많이 자주 들으며 오늘까지 올 수 있었던 속삭임을 저 가족들도 들으셨네! 빙그레 미소지으며 계속되는 찬양들을 들었다.


4. 찬양은 입보다 먼저 눈에서...

앞 차례에 하는 분들의 찬양순서에 앵콜이 이어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간이 많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직 찬양을 하지 못하고 기다리는 출연진에게는 마음이 좀 지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진행하시는 간사님이 바빠지고 아직도 남은 순서와 자꾸 흐르는 시간들. 

“....”

옆에 앉아 보고 계시던 다음 찬양순서자인 나경호 집사님. 자꾸만 눈물을 닦고 계셨다. 예닮님 가족의 사연과 노래에 흐르기 시작한 감동이 기어이 눈물로 이어지는 듯. 바로 가까이서 보는 내게는 그 모습은 소리 없는 찬양이었다. 전에도 한 번 갈릴리마을 음악회에서 나경호집사님의 찬양을 들었던 적 있다. 그리고 이번에는 입으로 부르는 찬양이 아닌 선한 마음과 함께 느끼는 자비의 찬양을 보게 되었다. ‘입이 아닌 눈으로 드리는 소리 없는 찬양’

그렇게 울며 공감하며 필시 속으로 드렸을 그분의 기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 준비된 찬양,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의 준비는 바로 그런 마음일 것이다. 발성과 악기와 호홉을 맞추는 것들과 함께, 어쩌면 더 먼저, 더 바닥에 꼭 필요한 준비로. 이충묵집사님의 곁에 앉는 바람에 나경호 찬양자의 그 준비과정을 보는 은혜를 누렸다. 어디 찬양만 그럴까? 모든 삶이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일진데 모든 삶의 출발점에, 하루하루에 동반해야할 준비과정이 무엇인지.


5. 작고 소박한 마음들이 쌓이는 추억

“풍금으로 반주를 하겠습니다”

‘풍금? 진짜 아직도 풍금이 있단 말일까?’ 그런데...진짜 있었다. 세상에! 어릴 때와 시골교회에 오래전에 있었던 풍금이 그 장소에 있었다. 그리고 김양규장로님은 그 풍금으로 반주를 하시기 시작했다. ‘저 멀리 뵈는 나의 시온성~’ 풍금 반주에 맞추어 독창을 시작하신 분은 하루전부터 오셔서 열심히 연습도 하셨는데 시간이 없어 못하시게 된 일명 ‘부산팀’ 소속의 여자분. 

마음들이 맞아 나이 들면 무주 힐링캠 같은 조용하고 멋진 자연 속에서 살고 싶다는 분들. 음악회와 좋은 사람들과 만남을 들뜬 마음으로 오셔서 합창도 하고 차도 마시며 보내셨다는데 참 부러운 모습이다. 저렇게 뜻과 마음이 합하여 하나 되어 움직이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엄청난 은총이다.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하셨음이 틀림없는 상금 같은! (기독교는 전생이 없으니 아마도 지금 보이지 않는 생활터전에서 구석마다 짬마다 하고 계실 거다. 김양규장로님의 행적은 이미 알고 있고!)       


6. 창밖의 빗줄기와 산기슭의 한기도 잊게 한 따뜻한 가족발표회

김경랑 간사님의 아들, 진휘군의 오카리나 연주는 트와이스의 노래에서 신을 나게하고 절정이었는데 조금 아쉬웠나보다. 연습 때 정말 잘했다는 이야기를 통해 보면 반도 실력발휘 못했고 그나마 짧게 시간이 조절되어버려서. 하지만 오카리나의 느린 듯 단순한 멜로디만 떠올린 내 선입견을 넓혀준 진휘의 오카리나 연주는 오래 기억에 남을 기쁨이었다.

오필록 목사님 교회를 중심으로 한 대규모 예술단! 나는 그렇게 생각되었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신 송경희 권사님의 가야금 연주와 사모님의 피아노에 따님의 바이올린 연주, 오목사님의 굵직한 목소리로 보태진 ‘배 띄우라’ 노래. 동행하신 분의 협주도 프로수준이시라니! 옥천교회 가족들만 모이셔도 음악회 한마당은 진행하고도 남을 것 같다. 

이번 음악회는 유난히 가족들이 함께 연주하고 부르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성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달랐어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 된 새로운 가족. 그래서 천국은 새로운 나라가 분명하다. 지금은 예고편이나 사전 연습같은 것일까? 이렇게 음악회라는 동기로 모여보는 시간들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천국을 향한 그리움을 가득 담고, 저마다의 굴곡진 길을 걸어와서 털어놓고 나누는 시간. 


7. 일상 속에서 작은 것들을 놓치지 않는 삶.

아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조금씩 힘들어하기 시작했다. 가래가 끓고 혈액순환이 안 되어 다리가 저려오기 시작했다. “차에 가서 좀 누워서 쉬지?” 내 권유에 더 있겠다고 거절한 아내.  의자를 당겨 다리를 올리고 주무르기 시작했다. 불똥이 튀었다. 곁에 앉으셨던 닛시장로민 사모님이 함께 거들기 시작하셨다. 

아, 수정해야겠다. 팔 아프시다고 그만 하시라는 말에도 계속 기꺼이 자청해서 한쪽 다리를 주물러주시는 사모님의 마음은 진심이셨다. 그리고 부담스럽지 않은 따뜻하고 미소를 담은 배려로 하셨다. 그러니 ‘불똥’이 아니라 ‘불꽃’으로! 자기의 수고를 통해 다른 사람의 유익을 얻게 하시는 평소의 모습이리라 생각되었다. 처음으로 하는 거는 다들 서투르다.
그래서 남들이 느낄 수 있는 법인데 아니셨다. 그런 일상으로 하는 친절이, 앞 무대에서는 찬양이 이어지고 구석 자리에서는 사랑의 나눔이 진행되는 천국을 만들고 있었다. 

신나는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약해져도 보이지 않는 손길과 고마움들은 시간이 갈수록 더 커지는 법이다. ‘닛시장로님! 양해도 없이 사모님 고생시켜서 죄송합니다. 사모님 고맙습니다!’ 

대전에서 온 복음이님은 생업을 접고 오셨다. ‘식당 문 닫고 왔다구요? 정말? 흐흐’ 그렇게 성경의 말씀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땅에 묻힌 보화를 발견한 사람이 자기 전 재산을 팔아 그 땅을 사지 않겠냐!’ 던 그 말씀이~ 무엇을 더 소중한 마음으로 바라보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생활로 하는 것들이다. 단지 사람마다 그 보석의 종류가 다를 뿐. 복음이님의 일상이 어떤지, 무엇을 보석으로 여기는지 어렴풋이 느껴졌다.

배병한님 가족께서는 이전의 큰 휠체어를 타고 더 심해보이던 시절의 아내를 기억해주셨다. 그때보다 많이 좋아보여서 기뻐하시는 모습까지. 나는 받은 사랑들을 간신히 기억하는데 여기저기 소리 없이 오래도록 후원과 위로, 기도를 해주시는 너무도 많은 분들이 오버랩되어 가슴이 뭉클했다. 아무래도 나와 아내는 살아서는 이 빚을 다 못 갚을 것 같다. 고마운 분들...

음악회 틈틈이 좋은 말과 생각들, 예전 기억을 들려주신 이종철선교사님, 일상 속에서 작은 것들에 평범하게 감사하며 누리며 지내는 은총을 바라게 되신다는 그 마음이 깊이 공감되어 나를 흔들었다. 잊고 지내고 누르고 지내는 ‘신앙 공동체’의 꿈들이 다시 그리워서. 다 못한 이야기, 안 해도 공감되고 짐작되는 여러 이야기들이 내 속을 흘러가고 있다. 

커피와 맛난 먹을거리를 주신 김인경사모님, 비가 뿌리는데 우산을 받쳐주시며 차까지 따라와 주셔서 하신 말씀이 귀가길 내내 귀에 들려왔습니다. ‘언제 조용한 날에 와서 쉬어가세요’ 왔다가 아쉬움을 보따리로 담고 가는 숨긴 마음을 들켰다. 눈치 채신 걸까? 힘들게 왔던 천국을 두고 돌아서서 다시 세상으로 일상으로 가는 그 마음을...  

물론 안다. 비가 뿌리는 날에 많은 준비물과 설치, 안내와 뒷정리까지 참 많은 손길을 내주셨을 여러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천국나들이가 되었을 것이다. 누군가 수고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천국 가는 길에 도로가 끊어지고 이정표가 없어서 헤매일 것이고 지쳐 쓰러져도 부축도 못 받을 것을. 이번만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늘 애쓰고 누군가를 위해 돕는 누군가 분들에게 깊이 감사를 드린다. 그 중심에, 또 앞에 뒤에서 함께 가고 계시는 최간사님을 비롯해서!

추신 : 오가는 길, 다녀온 후에도 잘 참고, 걱정 많아 자주 주춤거리는 나를 움직이게 하는 아내에게도 고마움을! 병원으로 돌아온 후 띵똥! 연달아 카톡이 울렸다. 귀한 추억이 담긴 사진을 느티나무목사님 이충묵집사님 닛시장로님이 연달아 보내주셨다. ‘아이구, 이 자상하신 형님들의 사랑을 우찌 다 갚을꼬! ^^  



(하나 훔쳐가고 싶다고 했더니 돈 준대도 안팔았다는데 사모님이 하나 줄 수 있다고 하신다.
하지만 사양했다. '주셔도 둘 집도 없는 걸요..., 그리고 여기 있어야 될 자리인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