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에게 하나님이나 저주하라며... 비난하고 떠나는 욥의 아내) <간병일기 3308일 - ‘잔인한 4월? 더 잔인한 5월...’> 엄마를 보러왔다가 하루만에 다시 학교로 내려가는 딸아이. 차로 태워가서 배웅하는 역에서 기차에 올라타기 전 나에게 한마디를 던졌다. “아빠, 요즘 아빠 말이 대부분 이별을 앞둔 사람처럼 하는 거 알아? 세상의 끝을 말하거나 어떤 것도 의미가 별로 없다거나 염세적으로...“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나...” 곰곰 돌아보니 정말 그랬다. 딸아이에게 아무 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거나,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가고 싶어도 못가니 이제는 아예 생각도 안한다는 식으로.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걱정을 준 것은 아마도 이런 말이었을 거다. “나중에 엄마 아빠가 세상을 떠나고 없어도 넌 씩씩하게 살아야 한다.” “지금까지 너는 정말 잘해왔고 덕분에 엄마아빠는 많이 행복했어! 고마워.” 그러면 딸아이는 무슨 일 있냐고, 내게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그러면 나는 아니라고 했다. ‘사람은 누구나 다 가는 것이니까 그냥 그렇다고.’ 왜 이렇게 변했을까? 더듬어 짐작해보니, 잡히는 게 있다. 일 년 중 가장 따뜻하다는 가정의 달 5월이 내겐 참 힘들었다. 어느 시인이 말한 잔인한 4월이 지났는데 더 잔인한 5월이 기다리고 있었다. “5월 4일 모두 사전투표하고 삼겹살 먹으러 가자! 가족이 모여서 같이 고기 먹어본지 일 년은 되었지? 그게 뭐 그리 어려운 거라고... 알았지!” 그렇게 한 달도 전에 미리 약속을 잡아놓았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 엄마는 시름시름 기운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갈수록 병원 침대를 짊어지고 꼼짝 못하는 날이 많아지더니, 기어이 약속한 5월4일 아침에는 일어나다가 어지러워 도로 누워버렸다. “애들아, 미안하다. 엄마가 도저히 나갈 상태가 안 되는구나. 니들끼리 투표하고 와라 먹는 약속은 다음에 하자!” 그렇게 1차 불운한 날이 지났다. 2차로 잡은 5월6일 온 식구가 모여 드디어 식당까지 갔다. 불판에는 일 년 만에 가족 앞에 놓인 삼겹살이 지지직 익어가고 있었고. 그러나... 5월의 잔인함은 또다시 닥쳐왔다. 온 식구가 젓가락을 들고 첫 고기를 집어 맛을 보기도 전, 둘째아들이 쓰러져버렸다. ‘속이 울렁거려...’ 하더니 눈이 풀리고 흰자위만 보였다. 의자에서 그대로 스르르 주저앉는 바람에 식당바닥에 누였다. 의식이 없어서 119를 부르고 식당 안이 비상이 걸렸다. 아이들 엄마는 놀라고 슬퍼서 오열을 하고... 그렇게 가족식사는 사라지고 응급실로 가서 머리사진 CT를 찍고 피검사를 하고 링거를 맞고 일어났다. 병원 진단명은 처음 들어보는 ‘혈관미주신경성실신’이라는데... 그런 병도 있었나? 간신히 기운을 차려 병원에서 외출을 나갔던 아내는 그날 이후로 완전히 배터리가 나가버린 사람처럼 여기저기 몸살에 감기에 여러 증상들을 앓기 시작했다. 꼼짝 못하고 침대만 지고 누워있으려면 굳이 재활병원에 입원해 있을 의미가 없다. 운동치료도 작업치료도 계속 빠지고 못 받으며 20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내는 목소리도 안 나올 정도로 쉬고 기침 가래에 열은 수시로 오르내리고. 아이들이 병실로 와도 휠체어를 타고 아래층 식당에 밥 먹으러 갈 기운도 없어 포기했다. “이가 아파...뭔가 부서진 것 같은데?”
속에서 받지 않아 잘 먹지도 못하는 밥을 그나마 씹을 수가 없다고 호소하는 아내. 치과를 갔더니 사진을 찍더니 어금니가 부서져 나갔다고 한다. 그것도 반쪽이 넘게 부서져서 갈아내고 기둥을 세우고 덮어야한다며 큰 공사가 되고 말았다. 목돈을 까먹게 된 아내는 신경치료 후유증으로 양쪽 잇몸이 부어 죽으로 이틀을 때웠다. 그 불편보다 목돈 나가게 된 게 더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인다. 나는 밥 못 먹고 기운 못 차리는 것이 더 속상한데...
정말 오래 잘 버텼다. 워낙 강골이신 북한출신 장인어른의 유전인자를 받은 덕일까? 올해 아흔이신 장인어른은 아직도 이 하나도 상하지 않으셔서 부분 틀니도 없는 자기 이를 가지고 사신다. 얼마나 단단한 것을 좋아하시는지 때론 조마조마 할 정도로. 그래서 아내도 십여년 병원생활에 사경을 몇번이나 넘기고 온갖 약으로 배를 채우고 살면서도 치아는 단 한개도 안 망가지고 멀쩡하게 유지했으니. 누워서 지낸 사람치고는 최상의 상태였는데 이제 망가지는 신호가 오나보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 지나간 것이 아니었다. 막내딸이 학교를 1년 휴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전부터 여러 번 이야기도 있었고 예상도 했지만 정작 눈앞에 닥치니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이는 알바로 벌어보겠다고 했지만 생활비와 뭔가를 배울 비용까지 여러 가지 불안과 걱정들이 아내와 나를 짓눌렀다. 그냥 평탄하게 좀 살아주지 야속하게...그런 생각이 몰려왔다. 이런 저런 궂은일들이 나를 점점 수렁에 깊이 밀어 넣었다. 자꾸만 우울해졌다. 몸은 지치고 마음은 벌판에 발목 묶여 바람 부는 대로 넘어가야하는 갈대처럼 고단하게 느껴졌다. “우리 세상 떠나는 약 준비했다가 한 사람 먼저 떠나면 남은 사람이 먹고 따라갈까?” 나 없이 아내 혼자 사는 것은 설명도 필요 없을 만큼 끔찍한 일이다. 대소변 문제로 아이들 시중을 받는 것도 생각도 못할 일이고, 반대로 아내 떠나고 나 혼자 남는 것도 참 허전하고 못 견딜 것 같다. 그 빈자리의 외로움이며 근근 목숨연명하면서 사는 게 뭔 재미있을까? 온통 아픈 아내 돌보는 이유로 버티고 살다가 텅 빌 가슴이 얼마나 추울까? 한 달 내내 이런 기분에 잠겨서 허우적거린 것 같다. 그러니 입만 열면 마무리하는 말이고, 생의 의욕보다는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예민한 딸이 못 느낄 리가 없었으리라. 그러나 감추고 살기에는 내 심정은 너무 어둡고 쓸쓸하며 많이 고단했다. 어떻게 딴 영혼이 들어앉은 사람처럼 행복을, 평안을 마냥 꾸며 말할 수 있겠나.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 예수의 조상으로 기록한 다윗, 그 다윗을 낳은 가문의 조상 나오미도 괴로움에 못 견뎌 비참한 쓰라림을 가차 없이 털어놓았었다. 현실의 순간들은 그렇게 신심보다 강했다. 불행한 현실은 날카로운 창처럼 찌르고 묵직한 망치처럼 내리치는 고통을 안겨준다. 남편과 두 아들을 다 잃고, 당시 풍습으로는 살아갈 수 있는 생존권조차도 다 잃은 과부 나오미는 절규한다. [나오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를 나오미라 칭하지 말고 마라라 칭하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니라” - 룻 1:20] 얼마나 비통했을까? 얼마나 막막했을까? 고향을 떠날 때는 넉넉하던 재산과 든든했던 가장과 자식을 다 잃고 빈손으로 며느리만 데리고 돌아오는 나오미의 심정이, ‘전능자가 나를 괴롭혔다!’ 라고 하나님인들 원망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괴로워 나오미가 그랬다. 나는 마실 수도 없는 ‘쓴 물’이고 ‘쓰라린 뿌리’라고. 욥은 더했다. 하루아침에 열 자식과 모든 재산을 날린 그가, 오히려 자기를 비난하며 떠난 아내와, 온몸을 파고드는 욕창에 견디지 못하고 기와장으로 몸을 피가 나도록 긁으면서, 조언한답시고 몰려와서 숨은 죄를 묻는 세 친구를 민망히 대하며 부르짖었다.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내 어머니가 해산할 때에 내가 숨지지 아니하였던가 어찌하여 무릎이 나를 받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젖을 빨았던가 그렇지 아니하였던들 이제는 내가 평안히 누워서 자고 쉬었을 것이니 - 욥기 3장11-13] 또 하늘을 향해 빌고 빈다. 빨리 죽게 해달라고, 부디 죽게 해달라고... [나는 음식 앞에서도 탄식이 나며 내가 앓는 소리는 물이 쏟아지는 소리 같구나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내가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불안만이 있구나 - 욥기 3장 26] 살기보다 죽기를 더 빌면서 하나님을 향해 원망도 숨기지 않았던 그들이 현실과 믿음의 두 세계를 보여주었다. 잔인한 4월이 어디 4월에만 있을까? 4월가면 정말 모든 날이 즐겁기만 할까? 어쩌면 5월도 잔인하고 6월도 잔인할지 모른다. 아니면 4월이 끝나면 또 4월이 오고 또 4월이 오고, 그렇게 1년 12달을 계속 4월의 잔인함으로 온 땅을 가득 채울지도 모른다. 5월이 거의 끝나간다. 부디 비명도 슬픔도 끝나고 나오미와 욥의 결말 같은 해피엔딩이 오면 얼마나 좋을까... 아마 그렇게 안될 거다. 세상은 언제나 세상일 뿐이다. 이 땅에는 잔인한 삶이 계속되고, 그럼에도 멀리 물러서지도, 가까이로 다가오지도 않는 야속한 하나님의 거취가 병행해서 흘러갈 것이다. ‘지금의 형편은... 나는 마라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삶이다. 그럼에도 아직 생명은 끝나지 않았다. 좀 더 의욕을 담은 응원의 말을 듣기를 기다리는 딸에게 반성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더 살아야겠다!’ (2008.5.9. - 2017.5.30. 맑은 고을 병실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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