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3254일 - ‘기적은 한 방 로또가 아니고...’>
“와! 정말 좋아졌네요! 이건 기적이네요!”
아내가 처음 발병하고 심한 상태일 때 보고 오랜만에 치료받는 아내의 상태를 보면서 문병 온 지인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그렇게 놀랄만한 일인가? 내 눈에는 별 달라진 것 없이 비슷해 보이는데?’ 속으로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아하!...’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희귀난치병으로 목도 가누지 못하는 전신마비 상태가 된 아내는 병이 진행되는 데는 불과 반년밖에 안 걸렸는데 다시 일어나는 데는 십년이 되어도 끝이 안보일 정도로 오래 걸리고 있다. 하루 이틀에 벌떡 일어나지도 못하고 한 달 일 년이 지나도 표도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3년, 5년, 10년이 가깝도록 날마다 낌새도 없는 재활치료를 미련한 사람처럼 받는다. 때론 기대를 품고 때로는 기대를 접은 채로...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알았다. 누워서도 목을 베개로 고여 주어야 하고, 2시간마다 등을 돌려줘야하던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더라는 놀라운 사실을, 누워만 있던 사람이 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다는 것을 (비록 침대등받이로 받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기적이었다. 식물인간처럼 미동도 못하고 숨 쉬는 것도 지치던 사람의 기준에서는 영영 안 올 것 같던 기대치였고 꿈같은 기적이었다. 그렇게 삶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기적들은 로또 당첨처럼 한 주 만에 오는 것이 아니고 오래 걸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이 자라듯 나무가 자라듯 그날에는 보이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알게 되는 기적이라는 것을!
문제는 단지 우리들이 그것을 알기까지 오랜 날을 변함없이 견딜 수 있고 살아낼 수 있냐는 것이다. 정말 아무 일도 안 일어날지 모른다는 상상이 짓누름에도, 정말 그럴지라도 후회하지 않을 각오를 가지고...
사람들이 흔히 양을 돌보던 소년 다윗이 골리앗이라는 거구의 병사를 쓰러뜨린 것을 단지 하나님이 초능력으로 단번에 대신 일으킨 기적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모르는 게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다윗이 골리앗을 만나기 그 이전에 숱하게 여러 날 낮과 밤을 사막이나 광야에서 양을 맹수로부터 지켜낸 기간이 있었다는 것. 목동으로써 자기를 울타리처럼 믿고 따라다니는 양의 생명을 정말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지켜내면서 쌓은 훈련의 기간, 그건 우연도 요행도 아닌 정말 고되고 거친 훈련이었다. 마치 올림픽 출전선수들의 태릉훈련장 합숙훈련기간처럼.
[사울이 대답했습니다. "너는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울 수 없다. 너는 아직 어린아이일 뿐이지만, 골리앗은 젊었을 때부터 싸움을 많이 해 온 뛰어난 군인이다." 그러나 다윗이 사울에게 말했습니다. "왕의 종인 저는 내 아버지의 양 떼를 지키던 사람입니다. 사자나 곰이 나타나서 양을 물어 가면, 저는 그놈을 공격하여 그 입에서 양을 구해 냈습니다. 그놈이 저를 공격하면, 저는 그놈의 턱을 잡고 때려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왕의 종인 저는 사자와 곰도 죽였습니다. - (삼상17:33-35, 쉬운성경)]
또 하나는 하나님과 그 하나님을 따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욕하는 우상숭배 이방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인의 자존심이었다. 설사 목숨이 위험해진다 할지라도 결코 그냥 숨거나 피할 수 없는 분노였고 용기였다. 그것이 곧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도리이자 사랑에 보답하는 삶이라는 고백.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인 골리앗도 제가 죽인 사자나 곰과 같은 꼴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골리앗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군대를 욕했기 때문에 죽어야 합니다. (중간 생략) 골리앗이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이리 오너라. 내가 네 몸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에게 먹이로 줄 것이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나에게 칼과 큰 창과 작은 창을 가지고 나아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너에게 간다. 여호와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이시다. 너는 여호와께 욕을 했다. 오늘 여호와께서는 너를 나에게 주실 것이다. 나는 너를 죽여 너의 머리를 벨 것이며, 블레셋 군인들의 몸을 공중의 새와 들짐승들에게 먹이로 줄 것이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온 세상이 알게 할 것이다. - (삼상17:44-46, 쉬운성경)]
그 두 가지 사실이 없었다면 그건 단지 하나의 행운이거나 마법에 불과한 이야기가 될 뿐이다. 양을 수호하면서 쌓은 과감한 전투력과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용기가 없이 주저했다면 다윗은 분명 골리앗의 큰 주먹이나 내리치는 칼에 맞아 수치스러운 죽음을 맞는 실패로 끝났을지도 모른다.
모든 기적처럼 보이는 뒷면에는 그렇게 마땅한 이유들이 있는 경우가 우연한 경우보다는 훨씬 더 많다.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 하나의 끝 장면만 눈에 보이기 때문에 기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놀랄 수도 있지만.
그리고 사실은 더 놀라울 숨은 비밀이 하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적은 늘 승리고 성공이고 건강이고 그런 종류로 알고 있지만 정작 더 큰 기적은 그렇게 눈에 보이는 결과를 넘어선 어떤 것들이라는 점. 하나님이 진정 우리의 부모고 피할 산성이시고 변치 않는 사랑이시라고해서 늘 승리하고 성공하고 건강하고 오래살고 뭐 그런 것만 해야 한다는 것은 어딘가 이상하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보다 깊고 멀리 보며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고 하신 분인데.
만약 사람의 눈, 그런 기준으로만 본다면 로마군에게 잡혀서 고난을 당하고 모욕 속에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은 분명 기적이 없는 사람의 처지였다. 부활하시기전까지는 그랬다. 예수님은 부활했으니까 기적이라고 말한다면 아직 확인하지 못한 사도 바울을 비롯한 제자들의 순교와 뒤를 이어 어려운 길을 살다간 숱한 신앙인들은 어떻게 말해야 하나? 믿음을 잃지 않고도 사람들 기준에는 패배와 실패와 병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죽어간 것으로 보이는 환자들은? 또 억울한 전쟁의 희생자가 된 아이들 여자들, 그 모두를 우리는 뭐라고 불러야할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자기들의 상금을 이 땅에서 아직 받지 않은 더 귀한 이들’이라고 분명 말하셨다. 그러면 이들은 더 큰 기적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그래서 짐작하기에는... 우리는 모두 자기만의 길을 부여받은 배우들이고, 그 모습이 성공한 역할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이 마칠 때까지 간다면 모두 기적의 주인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스토리를 배당받은 단독 주연들이다. 그러니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 어떤 처지이던지 계속 가야 한다.
'보라! 나는 나에게 주어진 스토리를 다 마무리했다. 중간에 실패로 끝나거나, 혹은, 고난에 허덕이다가 화려한 반전의 해피엔딩도 없는 스토리일지라도 그 길을 끝까지 살았으니 나는 마땅히 기적의 주인공이다!' 라고 말할 수 있도록...
혹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아도 하나님과 예수님께는 분명 인정받을 것이다. 그리고 뒤에 비슷한 길을 걷게 되는 또 다른 어떤 신앙인들에게는 분명 우리의 삶이 산 그대로 등불이 될 것이다. 길 잃지 않고 외롭지 말라고 주님이 주는 은총의 도구로...
그래서 오늘도 아이들의 키가 자라듯, 나무가 자라듯 하루의 길을 간다. 눈에 보이는 기적이 있든지 없던지, 이 삶은 아내와 나에게 내려준 스토리이고 배역이기 때문에. 나중에 비슷한 삶을 살지도 모를 또 다른 누구에게 하나님이 주실 위로나 등불의 도구로 쓰일지도 몰라서.
(2008.5.9. - 2017.4.6. 맑은고을 병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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