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길을 가는 사람...

내 사랑은 공정하지 않다. 편파적이다.

희망으로 2015. 5. 22. 00:56

<내 사랑은 공정하지 않고 편파적이다.>


시계 유리가 깨져서 수리 맡겼는데...좀 찾아줘!”

 

그래서 점심을 먹자마자 짬 시간에 후다닥 다녀왔다.

물론 수리비까지 내가 내주고.

 

10.

야간자율학습 중 10분 쉬는 시간에 문자가 우루루 들어왔다.

 

아빠...”

고추 바사삭 치킨이 너무 너무 먹고 시퍼...”

사주면 맛있겠지?...”

 

그리곤 다시 전화 불통.

뭐라고 의논이 안 된다. 일방통행은 도로에만 있는 것이 아닌가보다.

바다의 해삼, 산의 산삼, 밭의 인삼에 이어 도시에 있다는 고삼도 그랬다.

 

어쩐다지?’

 

일찍 저녁 먹고 밤 10.

식성이 한 참 왕성한 십대 말기 학생들이 왜 배가 안고플까.

허기진 배와 씨름할 딸이 눈에 어른거린다.

결국 부랴부랴 치킨 집 들러 턱을 받치고 재촉해서 포장했다.

 

11. 아이들이 몰려나오고 그중에 딸도 나왔다.

 

! , 오늘 좀 심했어, 콜택시 기사는 기본이고,

시계수리 인수하고 밤에는 치킨 배달까지라니...”

 

! 하면서 탄성을 지르느라 내 말은 귀에 안 들어오는 딸.

연신 입으론 감동했다, 고맙다, 진짜 사올 줄은 몰랐다! 등등 하지만

이미 마음은 콩밭 너머 치킨 박스에 간 걸 난 안다. 서글퍼도 사실이다.

 

“너 오늘은 무슨 날인지 알아?”
“몰라, 뭔 날인데?”
“오늘이 5월 가정의 달, 그중에서도 21일, 둘이 하나가 된다는 부부의 날이야! 
엄마에게는 꽃 한 송이도 못 사줬는데 너만 호강이다.”
“왜 그랬어? 뭐 좀 사주지.”
“내가 그랬거든, 왜 부부의날이나 결혼기념일에는 주로 남편이 아내에게 뭘 사줘? 
그랬더니 엄마가 아무 것도 사지 말래. 그래서 그냥 넘어갔지 뭐,”
“에그..쯧쯧, 그렇게 말하면 당연히 안사달래지. 엄마가 휠체어타고 나가서 사올 수도 없으니”
“내가 잘못한 거야?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 건데... 사람들이 그러는 게 이상해서.”
“난 그렇게 안 살 거야! 같이 서로 선물 주고 그럴 거야!”
“그래, 니 생각이 맞아! 그럼 사랑받고 살겠다. 우리 딸 멋지네~”

 

멋지나 마나 나만 새 되었다. 이상하고 고약한 남편으로.

 

둘째 아들이 두산 야구팀 팬이다.

그 영향인지 막내딸도 두산을 열심히 응원하는 팬이 되었다.

며칠 전 두산이 삼성에게 25:6, 19점이나 차이나는 점수로 대패를 했나보더라.

딸이 서운해서 씩씩거렸다.

 

오늘 TV에서 두산과 삼성의 경기를 또 중계하는 걸 보았다.

나도 모르게 두산의 편이 되어 응원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픽 웃었다.

사실 예전 내가 총각일 때는 고교야구가 붐이었다.

그때는 프로야구도 없고 대학야구나 실업야구는 고교야구의 절반도 인기가 없었다.

향토색 짙은 애향심과 고교스타를 향한 응원이 하늘을 찌르고,

스포츠신문에 대서특필에 우승팀은 고향에서 현수막은 기본에 카퍼레이드도 했었다.

그때 나는 동대문운동장에 걸핏하면 가서 라디오를 귀에 꽂고 응원을 했다.

경주가 고향이라 대구상고, 경북고가 주로 내 응원의 대상이었다.

그 흐름이 나중에 자연스럽게 삼성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한 마디.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고교야구나 프로야구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내 오랜 응원팀도 아이들의 지지에 슬그머니 배신을 때리고 넘어가더라는.

참 이상하게도 내가 사랑하는 아이들이 바라보고 좋아하면 나도 그렇게 된다는 것.

사랑은 그렇게 변절과 배신을 하면서 지조도 버리고 바뀌게 한다.

공정하지 못하다. 논리적으로나 쌍방 매너로 보아도 당연히 싸가지가 없는 짓이다.

 

그러나 사랑의 속성이라는 게 본래 그런 걸 누가 어찌하랴!

사랑은 공평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법률처럼 시행되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성경에서도 많은 경우 그런 것을 본다. 공평 정대하지 못한 하나님의 경우를.

돌아온 탕자의 경우에서도 그렇다. 큰 아들은 얼마나 억울하다고 했는가.

상대적으로 둘째 아들은 얼마나 뻔뻔하고 염치없는가.

가인과 아벨은? 해 그림자를 10도나 뒤로 물리면서 수명을 15년이나 늘려준 히스기야왕은?

열심히 사냥해온 에서가 물먹고 분장으로 속인 야곱에게 축복을 준 경우는?

 

그 모두가 사랑과 지지는 수치나 경제논리 같은 거래가 아니고 편파적이라는 걸 보여준다.

이유가 없거나 이유보다 앞서, 높은 계획에 바탕해서, 혹은 여전히 이해 못할 근거로

우리는 로또보다 큰 묻지마 복도 받고, 반대로 죽을 만큼 힘든 억울한 시련도 때로 겪는다.

물론 나중에 언젠가는 설명이 가능하고 수긍도 될 것이다. 지금 당장에 그렇다는 것이다.

 

오늘 모의고사 시험 쳤어! 국어는 알고 맞추어서 점수가 올랐고, 영어는 조금 내려갔지만 수학은 찍었는데 무지 많이 정답이었어! 크크

 

내게 그 시험이나 점수 오르내림이 무슨 영향을 줄까만 그저 기쁘다.

낮이고 밤이고 무슨 심부름을 급작스럽게 시키거나 돈 나갈 일에도 불구하고.

경우 따지거나 엄마와 형편 맞추고, 조건을 걸어서 잘할 때와 잘못할 때 다르게 안 한다.

그야말로 기준도 엉망, 공정성과 공평함도 무시. 이게 사랑의 기준임을 어쩌나.

 

사랑에는 수학의 법칙도 경제논리의 거래 균형도 통하지 않는다.

사랑은 절대 공평 공정하지 않다. 하나님이 그렇게 몸소 친히 보여주시고

우리를 그 기준으로 언제나 용서하고 안아주시는 걸 어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