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새벽 1시가 넘어가는데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아내
오늘, 아니다. 벌써 어제가 된 날에 쓰러져 의식 없이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엄마 때문에...
왜 안 그럴까? 여러 미안하고 아쉬운 엄마에 대한 기억들이 떠올라서 그렇다.
“지금까지 믿어 온 우리 신앙에 따르면 절대 영혼은 손대지 못하는 죽음이지?”
욥의 경우에도 그랬고, 성경에도 여기저기서 말했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다고, 능히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악의 권세라고...
로베르트 베니니가 아카데미 상을 받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그랬다.
“이건 장난이야! 게임이라구~~”
숨어서 끌려가는 아빠를 보는 자식에게 두려움이나 악몽을 주지 않기 위해
로베르트 베니니는 익살스러운 표정과 웃음으로 연기를 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할만한 선물이었다.
만약 아빠가 살려달라고 죽기 싫다고 악을 쓰고 울부짖는 모습을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보였다면 그 아이는 평생 어떤 기억을 가지고 살아갔을까?
거의 두렵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헉헉대며 우울증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죄책감과 악몽에 시달리면서...
우리의 신앙이 평상시와 달리 자녀들에게 죽음 앞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 자녀들도 십중팔구 평생을 괴롭게 살 것이다.
‘신앙은 무슨...’ 혹은 ‘사기 치네, 영원은 개뿔...’ 하면서 말이다.
나도 천국이 저기 앞 100미터 전에 있는지, 혹은 십리쯤 밖에 있는지 솔직히는 모른다.
칸트가 천국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면 있다고 생각하며 살자는 ‘도박론’을 폈다던가?
나는 그것보다 더 와 닿는 이유가 있다.
‘적어도 아이들이 살아 있는 평생을 죽음으로 두려워하며 끌려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우리가 먼저 가 있을께! 다시 만나자 천국에서~”
그렇게 편하고 자신 있게 말하면서 이별을 한다면 분명 아이들도 평안할 것이다.
왜 아이들만이겠는가, 믿지 않았던 부모님들도 확신에 찬 자녀들의 표정을 본다면
능히 신앙의 세상으로 들어와서 편히 임종하시지 않을까?
아내에게 우울증 약 하나를 먹였다.
신경쇠약은 몸의 감기처럼 신체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이기 때문에 약의 도움도 필요하다.
그러나 약은 원천적인 평안은 가져오지 못한다.
그래서 이 이야기들을 조용조용 아내에게 했다.
사실은 내가 나에게 다짐하고 반복하는 말들이었다.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에서 견디고 다르게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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