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으로 읽는 ‘죽음과 종교‘ (2) - 제1부2장, ’인간은 사랑받는 존재다.‘>
저자는 인간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3가지를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20p
인간은 유한한 존재입니다. - 23p
인간은 가변적인 존재입니다. - 25p
‘피존적인 존재란 자신의 존재 근거를 자신 안에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를 의미합니다.’ (21p)라고 말하면서 컴퓨터를 예로 들었다. 컴퓨터는 자기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사람에 의해서 태어났기에 피존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걸 만든 인간도 부모에 의해서 태어난 피존적인 존재라서 같은 의미이며, 세상의 모든 것은 피존적인 존재라고 정의를 한다.
인간은 피존적인 존재라는 정의는 절반은 맞고 절반은 모자란다.
‘철학적인 표현을 사용하자면 인간은 필연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연적인 존재입니다. 필연적인 존재란 자신의 존재 근거를 자신 안에 가진 존재이며, 우연적인 존재란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자신 안에 가지고 있지 않은 존재입니다.’ - (21p)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 ‘우연적인 존재’에 대해 할 말이 있지만 뭐 철학적인 논리니까 생략한다. 그러나 다음 부분은 좀 다른 생각을 말하고 싶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듬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 이사야40:6-7 (23p)
이와 같은 의미가 베드로전서에도 나온다. 참 좋아하는 구절이다. 사랑하는 이를 보내고 슬플 때나, 무엇인가 벽에 부딪혀 의욕이 상실될 때 이 의미는 더 가까이 다가와서 위로를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풀과 꽃을 순전히 의지가 작동하지 못하는 피존적 존재, 컴퓨터와 같은 맥락으로 말하거나 이해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흔히 풀과 꽃을 시들어 죽는 무기력함과, 쓸모없는 욕심으로 사는 인생의 상징처럼 말하는 이들이 있지만 동의할 수 없다.
풀과 꽃은 하나님이 만드신 작품이다. 그것도 아름다움과 향기를 풍기는 좋은 의지의 작품. 하나님이 이렇게 말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물며 이 꽃보다, 이 새보다 너희를 더 아끼지 않으랴?” 라고 했다. 꽃과 새를 아끼지만 사람을 더 아끼고 더 먹이신다는 뜻으로,
사람은 피존적이고 자기가 의지로 태어난 것도 아니지만 엄연히 컴퓨터나 다른 피조물과는 다르다. 심지어 좋은 의미로 만들어진 풀과 꽃보다도 더 귀한 존재다. 그 이유는 사람은 하나님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피존적 존재와 피조물에도 없는 다른 존재다. ‘나는 스스로 존재한다’고 하셨던 하나님을 닮게 만들어진 존재, ‘닮게‘라는 말이 가지는 한계처럼 똑같은 능력과 무한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자유하고, 세상을 창조하고, 선택하며 살아라!‘고 권리도 주셨다. 비록 그 선택이 영원을 잃고 죽음을 부른 실패가 되었지만.
결정적으로는 태어나기는 자기의 의지와 이유로 하지 못했지만 죽음은 조금은 다르다. 우리에게 아직도 남아 있는 선택의 대상이자 권리다. 더 사는 선택과 능력은 박탈되었지만 적어도 일찍, 어느 순간 우리의 존재를 끝을 내는 선택의 권리는 아직도 우리에게 남겨주셨다. 아마도 그래야 살아있다는 사실이 자발적인 귀한 자유가 되고, 그 사실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자존심이 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스스로 죽지는 못한다. 컴퓨터도 죽을 수 있지만 그것은 단지 고장일 뿐이다. 사람을 제외한 세상 모든 것이 그렇다. 만약 사람에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없고, 그게 가능하지 않다면 우리는 자살을 죄라고 부르지 못한다.(개인적으로는 모든 자살을 죄라고 정의하는 것에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혹은 모든 기계의 고장과 동물 식물의 죽음에도 차별 없이 ‘죄’를 지었다고 표현해야 할 것인데 그게 얼마나 우스운 결론인가.
그러니 출발은 피존적이었고 살아가는 동안 의존적인 존재일 수 있지만 우리가 계속 생명 있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존적이고 이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인간은 의존적인 존재다’라는 단정에 절반은 맞고 절반은 모자란다고 제한적 동의를 하는 이유다.
그리고 풀과 꽃을 망하는 것들의 모습으로 우습게보지 말라. 개인적으로 나는 풀처럼 싱싱하게 살지 못하고, 꽃처럼 향기 나는 삶을 살지 못해서 가슴치고 민망하다. 하나님은 다만 인생의 고작 초라한 성공이나 영광을 우쭐하며 매달려 사는 것을 경고하기 위해 풀과 꽃을 인용하신 것뿐이다.
‘니들이 말하는 육체의 자랑이 기껏 풀만 하고, 그 영광이 고작 풀의 꽃 정도 아니냐?’ 하신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려 살라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다. 나는 그 풀에도 미치지 못하는 육체의 자랑과 풀의 꽃만큼도 향기내지 못하는 삶에 애가 탄다.
우리가 완전한 피존적 존재며 우리 속에 존재 이유가 없다면 그 책임도 없을 것이며 죄도 없고 애타는 민망함도 가질 이유가 없다. 스스로 존재하지도 못하고 의지도 없으면서 그런 마음을 먹거나 죄책감을 가진다면 오지랖 넓은 피존적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이해를 완전 수동적, 피동적 동사나 명사로 정의하면 안 된다고 본다.
인간은 유한적이고 가변적인 존재가 맞다. 단, 시간 개념과 생물학적 소견만으로 본다면,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간과 자원이 부여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오늘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내게 시간과 자원이 남아 있음을 뜻합니다. 내게 남겨진 시간이 사라지면 내 운명은 종말을 고하게 됩니다.’ - 24p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은 인간이 피존적인 존재이며 유한한 존재이고, 또 가변적 존재임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시간 안에서 누군가에 의해 탄생하였고, ㅠ한한 시간을 살아가다가, 시간안에서 쇠퇴하다가 소멸해 갈 것입니다.‘ - 28p
맞다. 기준을 시간이라는 개념아래에서, 생물학적 측면만을 들여다보면 분명 그렇다.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과 자원을 다 사용하면 내 운명이 종말을 고한다고 했지만 상당히 많은 경우가 남겨진 시간보다 빠르고 다른 이유로도 종말을 고한다.
남에 의해서, 혹은 전쟁과 기근, 질병에 의해서도 종말을 맞이하고, 예측 못한 사고로도 현대사회는 너무 많은 죽음을 맞이한다. 자살이라는 선택에 의한 경우도 시간과 자원이 남아 있지만 종말이다. 어쩌면 인류의 상당히 많은 경우가 시간과 자원을 다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죽음이라는 종말을 맞이하는지도 모른다.
그 외에도 하나님이 언젠가 창조 세계를 정리하실 때, 혹은 마지막 심판이라는 날에 쓸어버리실 때는 또 각자의 시간과 자원과 상관없이 몽땅 종말을 맞을 것이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세계에서 사람이 버틸 가능성이 없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공간과 시간도 창조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 ‘삶을 위한 신학’에서)
시간과 자원과 생물학적 입장에서 죽음이 가지는 서글픔이 사람의 전부일 수는 없다.
시간 개념과 생물학적 측면에서 의존적이고 유한하며 가변적인 존재인 사람은 죽음을 아무리 공부하고 미리 준비해도 아무 것도 변하게 할 수 없다. 시간개념과 생물학적 측면이 모두라고 보는 사람에게는 말이다. 오히려 종교적, 철학적 사고나 내면에는 변화를 가져오게 할 수는 있고, 두려움을 극복하고 평안을 가져오게 할 수는 있더라도,
강아지의 집과 먹이를 열심히 분석해서 강아지의 존재이유를 단정하기? 그건 좀 연결이 안된다.
2장 인간의 이해에서 대부분 시간과 자원, 생물학적 관점에서 정의를 내리고, 그 결론으로 적용하거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정작 시간과 자원, 생물학적 변화나 결론이 아니고 종교적 철학적, 내면의 세계 변화를 주장한다?
뭔가 아쉽다. 핀트가 안 맞는 고리같다. 마치 ‘너는 자동차도 없고 큰 집도 없고 멋진 여자도 없으니 너는 불행한 사람이다!‘ 라는 논리다. 불편할지는 몰라도 불행으로 연결하는 것은 무리한 비약이지 않은가? 딱 그 모양새가 된다.
(사실 2장까지 내용만으로는 이런 단정을 내릴 수 없다. 앞으로 전개하는 내용을 더 보고 말해야 한다는 걸 안다. 다만 여기까지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도 솔직한 느낌이다.)
'보고 듣고 읽고 > 또 보고싶은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묵상으로 읽는 ‘죽음과 종교‘ (4) - 제1부4장, ‘죽음의 시각으로 삶을 보면서’> (0) | 2014.10.12 |
---|---|
<묵상으로 읽는 ‘죽음과 종교‘ (3) - 제1부3장 -‘죽음에 대한 관찰’> (0) | 2014.10.12 |
묵상으로 읽는 '죽음과 종교' (1) - 제1부 1장 '죽음 생각은 삶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0) | 2014.10.09 |
본질이 이긴다에 남긴 서평 (0) | 2014.08.09 |
<참 염치없는 무료 독자...> -'내 친구 배형규' (0) | 2014.0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