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멀쩡하시네요!" ...그럼 우리 바꾸어볼까요? ㅠ.ㅠ

희망으로 2012. 11. 23. 07:21

<"멀쩡하시네요!" ...그럼 우리 바꾸어볼까요? ㅠ.ㅠ>


오랫동안 등을 침대에 붙이고 살던 아내가 몇 년의 재활치료로 조금씩 앉게 되었다.

요즘 아내는 치료선생님의 부축을 받아가며 조금씩 걷는 연습을 한다. 사람들은 그런 아내를 보고 놀라기도 하고, 이전 상황을 잘 모르던 사람들은 ‘많이 심하지 않은 사람 이었나보다’ 라고 한다. 


고맙고 또 고마운 회복이다. 아이들이 자라는 걸 모르는 것처럼, 혹은 날마다 달팽이가 옮긴 흔적만큼 조금씩이라 실감이 안 나서 그렇지 춤이라도 추고, 손뼉이라도 쳐야할 만큼의 진전이 틀림없다.


“이러다간 간병인 일자리 짤리고 해고되는거 아냐?”

누군가가 농담을 하기도 한다. 본인이 하는 게 아주 당연했던 생활일거리들, 자기 손으로 수저질 하기, (아직은 숟가락만 안정적이지 젓가락질은 불안하지만) 전화기 손에 들고 통화하기, 양치질 자기 손으로 하기... 뭐 그런 정도가 회복되었다. 


그것들이 얼마나 많이, 자주 남의 손을 필요로 하는지 해본 사람만 안다. 너무도 사소하여 생색도 낼 수 없는 작은 일들인데도 말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쳐간다. ‘정말 아내가 좋아지면 반대로 내가 아내덕에 병원에서 얹혀 더부살이로 먹고 자는 백수쯤으로 전락하는걸까?’ 라는 엉뚱한 상상들, 하지만 이내 손을 가로 젖는다. 택도 없고 몰라도 뭘 한참 모르는 진짜 상상수준의 말씀이다.


사람들은 모른다. 영영 회복 불가능한 보이지 않는 폐업기능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두 개의 산소 생산엔진 중 한쪽 폐가 멈춘 상태로 숨을 쉬고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드는 지, 단지 안 보이기만 하다고 멀쩡한 게 아닌데...


두 개의 눈으로 보던 세상을 한쪽 눈을 감고 생활해보라, 반에 가깝게 줄어드는 시야와 핀트가 맞지 않아지는 거리감들이 얼마나 불편한지, 두 눈 다 안 보이는 사람보다 낫지 않냐는 참 계산 잘하는 사람들의 말은 별로 도움이 안 된다. 한쪽 눈이 실명되고, 안구덩어리가 점점 말라 줄어들고 있는 쓰라림을 가진 아내에게는... 이것도 사람들 눈에는 별로 표 안 나는 외관이다.


등을 세우고 30분만 넘어서면 아득해지고 속이 메스꺼워지면서 식은 땀이 나는 심한 기립성저혈압, 다리가 뒤틀리는 통증과 답답함으로 몸이 꼬인다는 아내, 혈액순환까지 약해지면 다리를 높이 올려 주물러든지, 등을 눕혀야하는 저질 체력... 이걸로 치료를 위한 운동도, 행복한 나들이도 높은 산처럼 장애물이 되고 마는데 이것도 눈에 안보인다.


가장 심각한 보이지 않는 벽, 넘기 힘든 벽이 도 하나 있다. 누구나 상상 가능한 대상, 그럼에도 외관으로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 바로 ‘대사중증장애’라는 진단을 받은 대소변 마비...


한번 상상해보라, 소변과 대변이 막혀 나오지 못하는데 살기위해서는 먹기도 해야 하고 마시기도 해야 하는 상황을, 참기도하고 내보내기도 하는 대장과 방광이 두 곳 다 마비가 되어버렸다. 


혼자서는 죽을 수도 있는 말도 안 되는 사실, 길게도 아니고 하루나 이틀 쯤, 아니면 터지던지 새든지 하면서 버텨도 일주일을 넘기기 힘들 지도 모른다. 가장 결정적으로 남의 손을 빌려서 빼내고 수시로 처리해야하는 고역들이다. 안보 인다고 없는 게 아닌 고통들이다. 그것도 아무리 자식이라도 보이기가 쉽지 않고 불편한 생식기 치부들... 내가 없는 상황이란 끔찍해질 난제 부분...


나를 많이 사랑하지 않아도 두 시간 이상은 떼어놓기 불안한 이유, 내가 없으면 못사는 동화 같지 않은 이유... 


누군가 병원 복도를 스치면서 던지는 한마디.

“아이고! 이제 퇴원하셔도 되겠네요! 다 나으셨네요.”

“... 예!”


아님 뭐라고 말할까? 그것도 축하하는 마음으로 주시는 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