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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사람에게라도 쓸모있어 감사해요!

희망으로 2011. 11. 12. 10:41

단 한사람에게라도 쓸모있어 감사해요!


하늘이 쟂빛입니다.

온통 뿌옇고 아주 간간히 파란색이 비집고 보이는

그런 회색입니다.


바람은 으스스 차갑게 느껴지는

언뜻 가라앉기 좋은 날씨입니다.

그러나 나는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걸어갑니다.

죽을 사러 죽집으로 가는 중입니다.


어저께는 아이가 나흘만의 외박에서 돌아와

집에서 쉴줄 알았더니 또 나간다고 해서 안편했습니다.

친구와 다음날 학교친구들 나눠줄 빼빼로를 만든다나요?


그건 괜찮은데 몸이 탈날까봐,

혹시라도 또 걱정할일을 만들까봐 심하게 말했습니다.


'제발 부탁이다, 한번더 또 사고나면 당장 차에 짐 싣고

병원 근처 어디로 이사시킬거다. 너하고 의논도 안한다.

아님, 아빠 다시는 너 못볼곳으로 가버리던지,

아무 도움도 안되고 무능한 아빠가 되는 것 같아

견디기 힘들어질거야...'라고, 


그 말을 하고 좀 심했나? 싶었지만

그게 솔직한 그때 마음이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도 무슨 말뜻인지 이해를 해주는 것 같아

감정 상하지 않고 잘 넘어갔습니다.


가족에게 도움도 안되고, 무능한 가장으로 느껴질 땐

참 우울해지는게 무거워집니다.


어제밤에는 아내가 밤 12시 좀 못미쳐 소변을 보고

다른때면 아침 5시정도까지는 갈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나를 깨우는 소리에 잠이 깨서 시계를 보니 새벽 2시45분,

배를 움켜쥐고 설사와 복통을 호소합니다.


다들 잠든 시간에 부스럭거리는게 참 신경쓰입니다.

안그럴려고 시간조절에 엄청 애쓰는데...


뒷수습을 하고 갈아치우고 다시 누웠는데

도저히 배가 아파서 안되겠다고 진땀을 흘립니다.

결국 휠체어에 태우고 화장실로 가서 길게 눕혔습니다.

간호사실에서 두가지 약을 타서 먹이고 나니 새벽 3시30분,


또 들락거릴수 없어 복도끝 의자로 가서 대기하다가

좀 가라앉는듯 하여 다시 병실로 돌아오니 4시가 넘었습니다.


잠이 부족하여 아침을 먹는지 조는지 모르게

둘이 몇술갈 먹고 물리고나니 또 볼일...

좀 나아지는듯 하긴하는데 기저귀는 또 갈았습니다.


소변통을 버리고 손을 씻은 후,

기저귀를 담아두는 비상구밖 계단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느닷없이 이런 생각이 몰려옵니다.


'참 다행이다, 나라도 있어서 이렇게 처리를 해내니!

돈도 없는 아내가 혼자 이 상황이 닥치면 어떻게 하라고...'


그 생각이 들어 내가 대견스럽고 뿌듯해집니다.

세상에 태어나 단 한사람에게라도,

정말 고맙고 쓸모있는 사람으로 살다갈 수 있다면,

그게 얼마나 다행이고 기쁜 일입니까?

하루전의 무거웠던 심정이 반전됩니다.


- 나도 누군가에게 쓸모있는 사람이다!


소리라도 치고 싶은 감동이 몰려옵니다.

아침을 거의 못먹은 아내가 배가 고프다고 합니다.

탈나지 않을 먹을거리를 찾다가 죽을 사러갑니다.

따뜻하고 기름지지 않으며 날 것 아닌건 죽밖에 없어서,


그래서 쟂빛하는도, 을씨년한 찬 바람도 괜찮습니다.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죽집을 갑니다.

이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든든함이 오래 떠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