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끄적/그저 오늘 이야기...

너무 오래 걸린 사랑의 메아리

희망으로 2011. 7. 29. 04:54

사랑의 메아리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

아직 결혼 전이었지만 곧 결혼하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던

총각선생님

기억에조차 한조각도 남겨놓지 않으시고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그 비어버린 그리움이 온통 뒤섞여 마냥 바라보던 선생님

따뜻하고 자상하게 받아주시던 선생님이 너무 좋아서

수업내내 무슨 내용인지보다 얼굴과 목소리만 담다 보내기 일쑤였던

사랑보다 더한 큰 자리를 차지하신 선생님

 

마침내 결혼식장까지 쫒아가서 축하를 하면서도

남몰래 속으로 울다가 돌아와서 하늘만 알게 펑펑 오래 울게 했던

그만둘 수 없는 사랑의 수신자 선생님

자주 불쑥 들어가도 반겨주고

아주 드물게는 늦은 밤과 추운 날은 자고 가게도 해주셨던 선생님

사모님으로 시작해서 기어이는 세월과 함께 큰 언니쯤으로 바뀐

사랑하는 이를 독차지해서 미워하면 안 되는 데도 원망과 부러움을

늘 안겨주던 사모님...

 

신혼의 선생님은 아들을 낳았고

머리 색이며 콧날까지 너무 닮은 곳이 많은 새로운 식구를

가슴 설레며 안고 보고, 재우며 보고,

어쩌면 선생님께 하고 싶던 포옹을 대신하게 만들던 선생님의 아이

 

그렇게 중학생은 고등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은 여대생이 되고, 사회인이 되어갔다.

그 세월의 공간은 속으로만 담은 해바라기 사랑이 되어

오래묵은 포도주처럼 숙성만 되어 갔는데,

선생님을 닮았던 그 아이는 같이 자라고 있었다.

선생님을 처음 만나던 그 중학생시절의 내 나이가 되었고,

그러는 동안 그리움과 안으로 담고 있던 선생님에 대한 사랑이

온통 그 아이에게 대신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정말 꿈에도 예상 못했던 일이 생기는 줄은 모르고...

 

결혼을 늘 물어보던 선생님과 사모님의 말을 피하는 사이

조금씩 늦은 미혼의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고,

서른이 넘고 한 해가 더 가고 또 한해가 가고, 또 한해가 가고.....

선생님의 아이는 더 이상 아이가 아님을 느끼기 시작할 때

이미 표현하고 베푼 애정이 그 아이의 심장에 자리 잡은 감정이 되어

씨앗이 자라 나무가 되어가듯 당연한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아이는 자기도 이미 성인이라며

마음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감정을 조금씩 어렵지만 표현하기 시작하고

에이! 설마 하며 느끼는 순간들이 잦아지면서

십오년이나 담고 오던 선생님에 대한 숨은 사랑을 비추어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처음 사랑을 알던 그때 그 나이가 되어가는 선생님의 아이,

못 말린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더구나 그렇게 긴 세월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친절로 대해주었으니

그 아이인들 누구보다 깊이 새겨지고 말았을 당연할지 모를 사랑의 뿌리,

 

너무 오래 가슴에 숨기고, 좋은 순간 궂은 순간마다 울고 웃으며

그렇게 아파하는 사랑때문이었을까?

감정의 돌멩이는 무형에서 유형으로 바뀌어 암덩어리가 되었다..

이제는 병원 검사를 받는 동안 옷가지를 받아 줄 엄마도 안계시고

부모 복이 없는 사람은 형제복도 없다더니 가족도 없는데,

그 아이가 병원을 따라다녀주며 옷가지를 챙겨주었다..

 

세상 아무 것도 욕심 없어 무심하던 것이 습관이 되어

몸이 알려주는 신호들에게도 무심한 사이 많이 깊어 진 돌덩어리들...

그냥 고스란히 속에서 활개치게 버려두고 생명을 내어주기에는

너무 아까운 젊은 나이라고 선생님도 야단치고, 그 아이도 야단친다.

선생님은 그 돌덩이 담은 몸보다 더 아픈 시간들을 꾸역 꾸역 끌어 안고 살아 온

내 마음의 돌덩이는 여전히 모르시면서...

 

그냥 이제는 떠나가자, 하늘의 선물인가보다

그렇게 마음도 먹어보지만 한쪽 가슴은 진저리나게 울어댄다.

억울하다 속상하다 그러면서...

 

길게 고민할 시간도 가질 수 없이 예약하고 등 떠미는

선생님과 그 아이,

아무도 장담해주지 않는 생명 회복과 수술성공여부는 상관없다는 듯 외면한다.

하얀 시트의 침대에 누워 많은 검사들과 채혈로 지쳐 천장만 보는데

그 아이는 곁에 앉아 손을 꼭 쥐어 준다.

평생 사랑을 숨기고 되삼키며 살아 온 자기와는 다르게

수술이 잘 되고 회복하면 자기가 평생 곁에서 지켜주겠다고 한다.

아프지 않았으면 안했을지도 모른다며 사랑의 고백을 한다.

자기를 많이 좋아하는 느낌은 눈치를 채고 있었지만

이렇게 모든 시간과 남은 인생을 던져 사랑을 잡으려 고백할줄은 몰랐다.

몸속의 돌멩이를 발견하고 충격받았던 그 순간보다 더 전율이 느껴진다.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린다.

어린 중학생의 소녀때부터 사랑을 담고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못하며

주위를 맴돌며 주워 삼키고 보냈던 숱한 밤과 날들이 떠올라서...

그 사랑하는 선생님을 꼭 닮은 그 아이가 마치 보상이라도 하는 듯

지금 곁에서 안아준다.

 

따뜻하고 긴 입맞춤,

너무 오래 기다리던 사랑의 신음소리들이 메아리처럼

그 아이를 통하여 돌아 온다.

이 메아리를 비켜서서 그 오랜 세월을 외로워하며 춥게 보낸 고통을

똑같이 그 아이에게 겪게 하고 싶지는 않은데,

진정 그 아이를 사랑하고 좋아하지만 선생님을 대신해서 좋아하는건 아닌지

어느 날 그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이 더는 없다고 바닥나는 일은 없을지

생명이 오락가락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무게로 결심을 기다린다.

열다섯살이라는 나이차 만큼이나 무겁게....


 

살아나야만 소용있는 결정들,,

수술이 잘되고, 치료가 가능할 정도라고 진단이 되어야 쓸모있을 고민들...

지금은 오래 기다렸던 사랑의메아리를 자장가처럼 달콤하게 들으며

따뜻한 입맞춤의 기운이 온 몸에 스며드는걸 단지 느끼고 싶을 뿐이다.

창밖의 햇살이 유난히 화사하고 향기로운 봄날의 오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