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4월에 생각대로 살고 싶어요!’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그래도 살아야겠다.
남진우 시인이 말했습니다.
이 시는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무덤 끝 부분
‘바람이 분다. 어떻게든 살아야한다.’를 인용한 것 같습니다.
바람이 불던 바람이 불지 않던 살아야 하는 게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운명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유행가중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자고 나도 사막의 길 꿈속에서도 사막의 길
사막은 영원의 길 고달픈 나그네 길
자고 나도 병원, 꿈속에서도 깜짝 놀라며 꾸는 병원,
병원생활은 기약이 없고 고달픈 현실의 길입니다.
그래도 살아야 하는 한가지 밖에 없는 길입니다.
폴 발레리는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 그대가 용기를 내어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머지않아 그대는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리라.
생각은 늘 사는 것보다는 몇 발자국 앞서 있습니다.
더 착하거나 더 열정적이거나 혹은 더 유능하거나!
가끔은 눈물이 찔끔 나도록 하늘나라를 향한 그리움입니다.
반대로 사는 건 늘 생각보다 좀 작게 움추리고 있습니다.
덜 부지런하거나 덜 똑똑하거나 혹은 덜 정직한 채로...
자주 죄로 물들기도 합니다.
대상없는 실망 분노로 휘감겨 막 몸을 굴리며 앙탈하는 유치함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사는 대로 변명하고 갖가지 마약 같은 임시변통으로 통증을 달래고
그러다간 생각이 하늘에서 내려와 바닥에 굴러다닐지도 모릅니다.
사는 형편보다 가진 생각이 더 추하게 되어
모두들 빙빙 피해서 가는 혐오물이 되어버릴지도 모릅니다.
생각은 하늘을 향하고
사는 건 지옥을 헤매는 상황이 전에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불어도 안 불어도 생각대로 산 사람들이
4월은 잔인한 달입니다.
나라 안에서도 4.19때 많은 이들이 생각을 바르게 따라
총칼 앞에 붉은 피를 흘리며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 자리에 붉고 아린 진달래들이 지천으로 피어납니다.
독일의 잔인한 학살자 히틀러는 독일 모든 교회를 손에 쥐고
하늘을 향한 신앙보다 국가에 순종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많은 신학자들도 목회자들도 그 ‘사는 대로’를 변명했습니다.
하지만 본회퍼 목사님은 ‘생각대로’를 따라 고백교회를 섬기다
끝내 1943년 4월에 체포되어 갇히고, 1945년 4월에 처형되었습니다.
바울과 예수의 모든 제자들도 사는 대로인 로마 식민지 아래
유대교 제사장들의 협박과 위험을 무릅쓰고
‘생각대로’ 하나님에게 매달려 순교들을 감당했습니다.
정말 폴 발레리의 말처럼 그것은 ‘용기를 내어!’야 했습니다.
가장 큰 본은 이 4월에 고난을 겪고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신앙인들이 어디를 보고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모든 일에 바람이 불기도 했고, 때론 바람이 불지 않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대로’를 산다고 해도 즉시로 해피엔딩이 보장되지는 않습니다.
주위 상황은 여전히 위험과 협박이 난무하고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는 대로’의 권력들이 판을 치기도 합니다.
때로는 돈으로, 때로는 권력이나 명예의 탈을 쓰고,
또는 허울 좋은 공익의 이름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모두 그 길을 갔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다람쥐 쳇바퀴 같은 병원생활에 지치면
온갖 ‘사는 대로’ 생각을 해봅니다.
이렇게 모래 한 움큼처럼 사르르 빠져나가는 생명의 남은 날들에
무슨 희망이 있다고 날마다 나와 집사람과 아이들을 설득해야하나 하고,
아침 낮 밤이 오고 가는 것처럼 오르내리는 믿음의 표정을 감출 수 없습니다.
한 번의 회개나 뜨거운 경험으로 우리는 신앙의 맛을 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오래 가지 못하고 다시 되풀이 되는 절망과 생활을 봅니다.
그래서 늘 반복하면서 습관적인 믿음의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보다 원천적인 변화를 가져야 한다고 어느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땅에서 하늘로, 보는 방향도 바꾸고,
욕심을 버리고 생명에 대한 집착조차 비워야 ‘생각대로’ 사는 게 가능하답니다.
그러지 않고는 계속 ‘사는 대로’ 신앙고백조차 따라간다 했습니다.
일평생 잔인하지 않은 달이 어디 있습니까,
4월만 생각대로 산다고 해결 되지도 않는 인생입니다.
피맺힌 겟세마네 기도를 마치고 ‘사는 대로’ 주변은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평안을 회복하시고 결연하게 예루살렘으로 가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오늘 내일 무엇이 희망이라는 달콤한 속삭임을 가지고 제게로 오겠습니까?
언제나 그랬듯 아직 오지 않은 세상을 향해 가는 마당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마음으로 그리워하면서 보이는 사람처럼 살 수 있다면
이 막막하고 마른 먼지 풀썩이는 무덤 같은 세상살이가
살만한 약속의 땅으로 바뀔 수 있지도 않을까요?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 주신 것처럼,
주님이 가신 4월 부활의 달에 생각대로 살고 싶습니다.
욕심도 버리고 생명의 집착도 비우고
용기를 내어
바람이 불거나
바람이 불지 않아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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