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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야 보이는 것들- 서편제 김명곤님

희망으로 2010. 3. 13. 11:52

보아야 보이는것들


  93년 여름,「서편제」의 명배우 김명곤이  내가 머물고 있던 미국  중서부로 날아와 통일
기원굿,판소리,민요판굿 등이 아주 재미있는 공연을 보여준 알이  있습니다.

당시 현지 신문(랜싱 저널)은〈쇼우가 한국의 문화를 오늘의 언어로 번역한다(show translates the Korean
culture into today's language〉는 제목으로 이 공연에 주목하면서 미국인에게도 가서 보기를 권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한국위 굿판을 보편적인 이미지로  형상화하는 희망에 사로잡혀 있기도 했습니다. 

김명곤이 영화 「서편제」의  주연배우라니까, 그 신문이  우리「서편제」를,〈한국의 주라기 공원(Korean Jurassic Park)〉이라고 번역하더군요. 「주라기 공원」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모으고  있을때의 일입니다.

 

하여간에 김명곤은 극작가,  연출가, 배우, 소리꾼, 번역가 등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어느 한 분야에서 돋보이기도  쉬운 이리 아닌데,

그는 많은 분야에서 고루 ‘무던하게도 과묵한 성공(「서편제」를 일러 한 고은 시인의말)’을 거두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의 우리 소리와 가락을  듣고 난뒤, 미국에서 20년을  넘게 산 한 교포는 나에게 「그 썩을 놈이 내 가슴에 불을 지르고 갔다」고 하더군요. 모르기는 하겠지만 그 교포는 또 한동안 고향 생각에 시달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 김명곤과 우리 가족은 시카고에서 뉴욕까지, 이틀동안 자그만치  4천 리나 되는 길을 자동차로 여행했습니다.

비행기로 가면 간단할 것을, 중간에서 여관 잠까지 자가면서 그  무리한 자동차 여행을 강행한 것은 순전히 나의 욕심 탓입니다.

나는 상당히 토종적인 분위기를 가진 그의 체험에다 미국 중서부 대평원의 어쩐지 막막한 느낌, 

한 개인의 경험 속으로 쉽게 편입되지 않을 둣한 느낌 하나를 억지로 더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며칠 함께 지내보니 그에게는 참 좋은 버룻이 여러 가지 있더군요.

음식 투정하는 법이 없고, 음식 남기는 법 없는 버릇이 그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음식이든, 그는 고마워 하는 마음으로 남기지 않고 먹습디다.

그런 버릇이 몸에 붙게 된 사연이야, 그런  이야기가 하도 많이 나오는 요즈음이니,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 짐작할 수 있겠지요.

먼 길 가는 도중 스테이크 집에  들렀는데. 스테이크 크기가 꼭 짚신짝 만하더군요. 

야채도 수복이 담아다 주었고요. 김명곤은 그 스테이크 집을 대뜸 ‘장모집’으로  명명하하더군요.
그의 장모는 인심이 그런 모양입니다.

그는 영어를 하기는 해도 유창한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그는  한 시간도 채 안 되는 동안 50대의 웨이트리스를 친구 삼는 것은  물론, 배를 잡고 웃게 만들기까지 하는걸  보니,
연기라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싶더군요. 

언어 너머에 존재하는 의사소통이  원초적인 수단 같은 것을 깨치지 않는바에 그러기 쉬운것 아니지요.

그는 자동차 안에서 내 아들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  주더군요. 「

무대에서 절름발이 연기를 하자면 저는 사람을 잘 관찰하고, 절뚝절뚝 저는 시늉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저는  사람이 어디 흔하냐? 어느날 나는 저는 사람을 관찰할 생각으로 종로2가로 가서 기다렸다.

그런데 세상에... 저는 사람들이 어쩌면  그렇게 많으야?

종로 바닥이 저는  사람 천지로 보일 지경이더라. 큰수 하나 배웠다.

 

그런데, 저는 사람들로부터 배울 것이 없게 되고 보니, 종로에 나가도 저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마음에서 멀어지니까 눈에서도 멀어진 것이다. 나는 큰수를 또 하나 배웠다.

나는 연습 때마다 단원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 주고는 한다.

보아야 보인다고,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고……」

김명곤의 메시지는 명약관화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 깨어 있자는 것이겠지요. 깨어 있어야 보인다는 것이겠지요.
김명곤의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됩니다.
「…… 소리를 하든, 연기를 하든, 연출을 하든, 자기가 하는 일에 깨어 있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 아니다.

나는 직업상 많은  사람들 만나고 다니는데,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더라.

자기 하는 일에 깨어 있더라는 것이다. 저금하는 놈과 공부하는  놈에게는 못 당한다는 옛말이 있다.

깨어 있는 상태에서 조금씩 조금씩 쌓아가는 전문성, 그걸 뭔 수로 당하겄냐……」

깨어 있는 상태에서 쌓아가야 한다……

오하이오 주의 평원을 지나면서 그가 한 이 말이 그 뒤로도 우리 집에서 여러 차레 되풀이해서 울리게 됩니다. 

내 아들딸들에게 김명곤의 말은 한동안 화두 노릇을 너끈하게 하더라고요. 

 

이윤기님의 [어른의 학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