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함이라는 이름보다 토정(土亭)이란 호, 그리고 <토정비결>이란 책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신장이 보통 사람보다 크고 골격이 건강하였으며, 패랭이와 쇠갓을 쓰고 집신에 대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그의 쇠갓(쇠벙거지)은 다목적으로 이용되었다. 외출할 때는 갓으로 쓰고 밥을 지을 때는 솥으로 사용하고, 객사에 들 때는 요강으로 대신 했다.
토정은 쇠갓에 엉성한 베옷을 입고 짚신을 신고 팔도강산을 유람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걷다가 졸음이 오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해 자면서 걸었다. 밥을 먹을 때는 한 말 밥을 지어 먹고 보름 동안이나 밥을 먹지 않았으며 화식을 하지 않았다.
마포 나루터에 흙으로 정자를 만들고는 그곳에 기거하면서 백성들과 어울렸다. 글공부를 하면서 과거를 보는 주자학보다는 백성의 생활을 향상시키게하는 학문에 열성을 보였다. 그리고는 세속의 욕심과 부귀를 헌신짝으로 여기며 책읽기와 방랑으로 날을 보냈다.
이지함은 조선 중엽인 1517년 한산이씨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고려 말의 충신 목은 이색의 후손이며 그의 부친은 현령을 지낸 이치(李穉)이다. 토정이 과거길에 나서지 않고 이단 기행의 길을 걷게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젊었을 때의 친구인 안명세가 을사사화를 직필한 이유로 권신들의 미움을 사서 처형된 데 충격을 받고 벼슬과는 등지고 위서와 잡술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어느 날 율곡이 성리학을 권유하자 "나는 욕심이 많아서 성리학에만 전념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토정은 성리학이 유일한 출세길인데 이를 거부하고 백성을 위한 '잡술'에 심취한 이단자 였다. 주변의 권유로 과거에 몇 차례 나서기도 했다. 그러나 답안지를 쓰고 나서는 이를 찟거나 들고서 시험장을 빠져나오기를 거듭하였다.
과거를 거부한 선비에게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쇠갓에 죽장을 짚고 방랑길에 나섰다. 전국을 돌며 기품있는 선비를 만나거나 학승을 찾아서 토론을 벌였다. 서울에서는 율곡,정철,성흔과 사귀기도 했고, 지방에서는 지리산 밑에 은거한 남명 조식을 만나 몇 밤을 세우며 학문을 토론하기도 했다.
토정은 1573년, 56세가 되었을 때 선조로부터 6품 벼슬에 임명되어 포천 현감에 제수되었고 아산 현감도 지냈다. 그가 현감이 된 것은 탁행으로 추천이 된 까닭이다. 어쨋든 포천현감이 된 토정은 걸어서 임지에 부임하였다. 새 현감이 부임하자 온갖 음식이 가득한 잔칫상이 나왔다. 그런데 토정은 "먹을 것이 없다"며 이를 물렸다. 그리고는 쇠갓에 잡곡밥과 나물국을 가져오도록 지시하였다.
백성들은 제데로 끼니조차 잇지 못하고 있는터에 명색이 목민관이란 사람들이 호의호식해서야 될말이냐고 호통을 치며 몸소 검소한 모습을 보인 것이었다. 이런 벼슬 생활도 오래가지 못하였다. 이듬 해 포천 고을 백성들을 위한 상소를 하였다가 기각당하자 현감을 사직하고 훌훌히 떠나 야인으로 돌아 갔다.
이로부터 4년 후 그는 다시 아산 현감에 임명되었다. 관내는 흉년과 탐관오리들의 착취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 있었다. 굶주린 백성과걸인들이 특히 많았다. 토정은 서둘러 걸인청을 세우고 이들의 구호에 나섰다. 관아 이속들의 반대가 빗발쳤다. 착취의 대상으로 여길 뿐 보호의 대상이 아니었던 백성들에 대한 관리들의 타성 때문이었다.
토정은 짧은 벼슬 기간에 '일하는 양반'으로서 몸소 소금을 굽거나 농사일에 나섰다. 노약자들에게는 수공업을 가르치고 걸인들에게 짚신이라도 삼게하여 자급자족을 가르쳤다.
토정의 생애는 대부분이 마포 강가에 지은 흙집에서 보냈다. 밤이면 토굴과 같은 방에 들어가 자고 낮이면 그 위에 올라 한강을 바라보며 <주역>을 읽으며 지냈다. 그는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면서 백성들과 독같은 생활을 하였다.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것은 그의 기행 기담으로 미루어 후대 사람이 엮은 비결서에 토정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도 실천적인 학문에 뜻을 두고 양반 신분으로서 농부, 어부, 상인, 소금구이를하며 살아 간 '선비백성'이었다.
그의 죽음도 예언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아산 현감으로 있을 때 죄를 지은 늙은 아전을 꾸짖은 적이 있었다. 아전이 원한을 품고 지네의 즙을 짜내어 술에 섞은 것을 토정이 마신 것이었다. 기인다운 기이한 죽음일지 몰라도 <토정비결>과는 전혀 무관한 최후였다 하겠다.
넓은 하늘 아래 나는 걸었네 - 광기와 방랑의 자유인 33인의 이야기 중에서 '토정 이지함'부분을 요약함. 김삼웅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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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광기와 방랑의 자유인 33인의 이야기'라는 부제대로 인류 역사상 아웃사이더로 꼽히는 33인의 대략적인 생애와 행적, 그 인물이 남겼던 기록이나 일화들을 소개했다. '세상을 내려다 본 자유인'으로는 장자, 제논, 디오게네스 등이 꼽혔고, '시대를 앞서간 이단자'에는 비용, 김시습, 브루노 등이 포함됐다. '반항과 낭만의 보헤미안'에는 소로우, 하이네, 조르주 상드, 김병연, 포우 등이, '우리 시대의 아웃사이더'에는 반 고흐, 랭보, 버나드 쇼, 함석헌, 장 주네 등이 꼽혔다.
기행이적을 쌓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의 인물들은 "신념을 위해 생명을 초개처럼 여기고, 권력의 유혹에는 허유, 소부처럼 귀를 씼으며, 결코 재물이나 체면에 급급하지 않는다. 고루한 인습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예속의 끈을 잘라 버리며, 정해진 틀이나 규격에 끼워 넣으려고 하는 획일주의를 거부한다. 거부할 분만 아니라 틀을 바꾸고자" 했다. 남다른 꿈과 뛰어난 재능이 시대에 의해 이해되지 못한 이들의 일화를 읽은 후에 관심을 가졌다면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을 차례다.
지은이 소개
김삼웅(金三雄) -1943년 전남 완도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대학원과 하버드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평민신문 주간을 거쳐, 현재 대한매일 주필로 있다. 저서 :「한국 민주사상의 탐구」(일월서각)「곡필로 본 해방 50년」(한울)「사료로 보는 20세기 한국사」(가람기획)「친일정치 100년사」(한울)「해방후 양민 학살사」(가람기획)「통일론 수난사」(한겨레신문사)「한국현대사 뒷얘기」(가람기획)「겨레유산이야기」(삼인)「백범김구전집」(공저, 나남출판사)「왜곡과 진실의 역사」(동방미디어, 1999) 외 다수.
책표지 글
"권력보다 높은 가치가 있고, 출세보다 높은 지위가 있다. 돌에 차이더라도 당당한 걸음걸이가 있고, 거부당하더라도 떳떳한 명분이 있다. 이제 그들에게 진정한 삶을 배워라!"
알렉산더 대왕의 권력은 없어져도 디오게네스의 위력은 남아있고, 당태종의 권세는 사라져도 이백과 두보의 시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는다. 날고뛴다는 권세가들이 하루 아침에 사라지는 이 때에 홀연히 세상을 등진 천상병 시인의 삶이 더 가치있고 소중하게 비치는 것은 왜일까?
어쩌면 영웅호걸보다 기인, 이단자, 아웃사이더의 삶이 더 훌륭한지 모른다. 권력이 한 세대를, 재력이 한 세기를 지키기 어려운 반면에 그들은 능히 수천 년의 수명을 지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높은 뜻을 품은 학생, 젊은이들에게 고한다. 안일을 추구하되 안주하지는 마라. 껍질을 깨는 것을 두려워 말라. 진정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들에게 배워라.
차례 차례 닫기
책머리에
세상을 내려다 본 자유인
장자- 천산의 눈을 밟고 돌아다니다
제논-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따라잡지 못한다
디오게네스- 개 같은 인생, 혹은 욕망의 해방
플로티노스- 내 초상화는 절대로 그리지 말라
이백- 달을 붙들려 채석강에 몸을 던지다
두보- 궁핍한 시대의 궁핍한 시인
시대를 앞서간 이단자
비용- 이브의 딸들을 믿지 말라
김시습- 시대의 불의를 난도질하다
이지함- 흙담집 민중의 벗
이탁오- 도학에 침 뱉고 자살한 사나이
브루노- 내 영혼은 불꽃처럼 하늘 나라에 오를 것이다
이달- 이 땅에 서자로 태어나
허균- 선구자 또는 반역을 꾀한 역적
스피노자- 파문·추방·금서 그리고 진리
반항과 낭만의 보헤미안
소로- 숲속 오두막에서
하이네- 너는 한 떨기 꽃과 같이
셸리- 겨울이 온다면 봄이 어찌 멀었겠는가
조르주 상드- 연인인가 문호인가
김병연- 태양을 거부한 사나이
애드거 알렌 포우- 에너벨 리를 꿈꾸며
보들레르- 저주받은 시인
도스토예프스키- 그것은 삶이 아니고 죽음이었다
톨스토이-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 시대의 아웃사이더
반 고흐- 광기, 그리고 영혼의 절규
랭보- 다섯 날개의 천재 시인
버나드 쇼- 익살과 위트를 무기로
고리키- '쓰디쓴' 리얼리스트
릴케- 장미와 칼을 든 시인
이사도라 덩컨- 성의 예술 혹은 예술의 성
버지니아 울프- 시대의 우울
장 콕토- 내 귀는 하나의 소라 껍질
함석헌- 한국의 도깨비, 영원한 들 사람
장 주네- 악의 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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