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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셋] 고향을 그리며 쓴 '내남으로 가는 길'

희망으로 2008. 1. 19. 17:18
아직 경주에 계시는지요?

사실 그곳은 제가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다 보낸 고향입니다.
경주에서 불국사쪽으로 차로 약 10분정도 가면
'동방'이라는 작은 마을이 제 고향입니다.
'동방역'이라는 철도 역도 있고 남산 아래 마을의 모든 아이들이 같은 동방국민학교를 다녔지요.

어릴 때는 경주 큰 무덤들위에서 미끄럼을 타고 놀기도 하고, 온갖 유적들을 숨바꼭질 도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도 담을 치고 입장료도 받지 않았습니다.
안압지와 첨성대조차 들락거리며 만지며 놀았습니다.

유적보호 차원에서 문제점도 있었겠지만...

경주는 가을과 밤이 참 좋습니다.
서라벌의 기운이 그런지...

고향을 떠나 객지 생활할때 경주고향이 너무 그리워
비오는 날 시를 써보며 달래기도 했습니다.

뒤져보니 아직도 있네요.


'내남으로 가는 길' (남산뒷쪽으로 내려가면 내남을 지나 경주시로 들어갑니다)

내남으로 가는 길

 

 

이슬비가 촉촉이 내려

하늘과 땅 사이가 온통 습습합니다.

 

눈을 들어 저 앞을 보니

높은 산봉우리엔 구름이 어머니 품처럼 덮히어 있고

뽀얀 안개 같은 습기가 산에서 내려옵니다.

 

가슴 속에도 비에 젖어

그만 눈시울까지 젖어들고

문득 내 고향 남산이 저 앞에 나타납니다.

 

가운데 높은 곳에서

급경사를 타고 내려오는 골짜기 길은

옛날 국민학교 때 가재 잡으며 올라가던 길

 

그 반대쪽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가는 곳이

경주 내남으로 가는 길

그곳엔 폐허가 된 광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 그런데 왜 버스가 보이지 않을까?

 

눈을 씻고 보니

그만 남산은 간 데 없고

공장 굴뚝에 가리워진 도봉산만 들어옵니다.

 

이젠 비도 멎고

사랑도 구름처럼 흘러가 버렸나봅니다.

가만히 문을 열고 쉬러 들어옵니다.

 

작은 방 하나 가득

고향에 대한 향수의 여운이 머뭇거리는데

 

아주 작게

점점 틀림없는 방앗간 소리가 들려옵니다.

폭! 폭! 폭!

 

어릴 때 친구들은 그 소리가

줄~까! 말~까!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기는 도봉산 앞!

저 소리는 내 고향 방앗간은 아닐겁니다.

 

방앗간 소리에 문을 열면

병아리 노는 마당이 보이고

열려진 싸리문 밖으로 논과 도랑이 길게 펼쳐지던

내 고향은 아닐겁니다.

 

문득 손이 갔던 문을 힘없이 놓고

다시 앉아 생각해도

고향은 꿈처럼 나를 찾아 올 뿐입니다.

 

*** 서울 상계동에서 비 오는 어느 날 떠나온 고향 경주를 그리워하며...***

 


            *** 1980년 서울 상계동에서 비 오는 어느 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