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타고 당신의 향기가’
한 달 전 아내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오전 중에도 멀쩡하셨는데 오후에 갑자기...
슬픔을 감당하느라 아내는 많이 힘들었다.
장례를 마친 아내의 친정 형제들이 여수에서 1박2일 모임을 가졌다
2-30년 만의 처음 형제 모임이고 언제 다시 모일지 모른다.
꼭 오라고 했지만 그러나... 아내는 전전날 포기했다.
아내와 나의 일정은 늘 그랬다.
하루 전 몸의 상태와 증상이 어떤지에 따라 결정해야 했다.
어제 밤 아내는 새벽 2시에 나를 깨웠다.
갑작스런 배변 통증 때문에 참을 수 없다고.
휠체어로 화장실 데려가서 거의 1시간 씨름을 했다.
왜 밤중에는 몸이 낮보다 녹초가 되고 팔다리에 힘이 없을까?
이런 일은 셀 수가 없이 일어난다.
괜찮겠지? 시간을 계산하고 나간 걷기운동 중 호출이 온다.
급히 뛰어서 집으로 돌아와 소변을 처리해야 한다.
은행 주민센터 등을 갈 때는 아예 소변주머니를 채운다.
14년째 계속되는 아내위주의 일상을 감수하며 살다가도
어느 날은 포승줄 맨 내 처지가 화도 나고 슬프기도 하다.
아침에 아내는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당신 덕분에 어제 밤엔 살았어.
당신은 나 때문에 잠도 못잤지? 미안해...”
“괜찮아! 간병비만 많이 줘! 심야근무는 두 배니까~ 하하하!”
대부분 이런 경우에 나는 아내를 편하게 해주려 농담을 한다.
기분이 많이 가라앉는 위험한 때는 슬쩍 밖으로 피해 나가고...
아내가 처음 발병때, 이후 긴 시간을 보내며 허덕일 때
아는 분들이 곧잘 이런 말을 나에게 했다.
‘이제 할만큼 했잖아? 아이들 엄마는 요양원에 보내,
너 건강도 보살피고 사람들도 좀 만나고 그래,
살 사람은 살아야 하잖아?’
그 마음의 의도는 알지만 웃어넘기고 기억에서도 지웠다.
아내에 대한 사랑 때문이기도 하고 아픈 사람을 외면할 수 없어서다.
그리고 내 리듬대로 못살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다 접고 살아도
수시로 몰려오는 ‘내 인생은? 너무 힘들어...’ 회의감 앞에 서면
그 말들은 자꾸 나를 툭툭 치며 부채질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부부 사이에도 자신을 양보하며 약속을 지키기 힘든데
생판 본 적도 없고 백년 약속 같은 건 하지도 않은 주님은 왜?
왜 우리를 위해 끔찍한 고통과 기어이 생명까지 잃을 거 알면서
그 길을 가셨을까? 왜?’
자녀를 낳고 살 부대끼며 사는 단 한 사람에게도
내 시간 내 일상의 우선권을 양보하며 사는 건 참 어렵다.
그런데 심한 고통과 비난, 죽음까지 감수한다는 결심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왜 해야만 했을까?
40년 가까운 부활주일 성금요일을 맞이하면서 아는 척했다.
그 크신 사랑, 한없는 희생! 하면서 이해하는 것처럼.
그런데 아주 작은 부부가 마땅히 지기로 한 책임 한 조각도
이렇게 버거워하면서 심정적으로 다시 이해가 된다.
아니, 이제야 진짜로 그 아프면서 큰 결심의 숭고한 사랑을
백만분의 일, 억만분의 일, 정도 공감을 하게 된다.
“그동안 정말 몰랐습니다.
그 심정, 그 무거운 고통을 감수하면서
그 길을 죽기까지 가신 결심과 감당했을 마음을...
죄송합니다. 전부 아는 척했던 지난 엉터리 고백을”
할 수 있다면 예수님 무릎 아래 엎드려 사과라도 하고 싶다.
새롭게 맞이하는 오늘 성금요일에.
바람 한 점이 창을 넘어 들어온다.
신기루처럼 대했던 주님의 고난절이 새삼 실체가 되고
만든 조화에서 생화로 바뀐 주님의 향기가 담겨 흘러온다.
‘괜찮아! 힘내서 살아!’라고 타독이며 나를 돌아서 가는
그 바람 한 점 속에 미소 지으며 서 계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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