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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은 코로나처럼 옮겨다녀도…

희망으로 2021. 8. 29. 09:04

<미움은 코로나처럼 옮겨다녀도…나는 걷겠습니다>

 

오늘 오전에 우리 병실에 같이 지내던 환자가 퇴원합니다

짐을 정리하느라 어수선한 병실을 뒤로하고 옥상으로 올라갑니다

병원생활은 당연히 불편하고 늘 피난살이 같습니다

그런 중에 4인실이나 6인실이나 비슷한점은 만실일 때입니다

냉장고며 화장실 등 사람이 많을수록  불편해지는 것이 늘어납니다

기본적으로 그렇지만 그중에도 좀 더 불편한 사람도 있습니다. 

취향이라든가 성격상 사람사이가 편치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나가면 속으로 반갑기도 합니다.

그러나 금방 또 다른 환자가 빈 자리를 채우고 들어옵니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완벽하고 선하고 밝기만 한 사람일까요? 

제 경험으로 그런 법칙이나 행운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슷하거나 혹은 좀 나은 사람도 오지만 때론 최악도 만납니다.

그러면 나의 미움은 이 사람에게서 저사람에게로 옮겨 갑니다.

그것도 끝이 아니고 저 사람에게서 다시 또 누구인가로 계속됩니다 

돌아보면 미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사람만 그런 대상이 아닙니다

나의 걱정과 원망은 돈에서 건강으로, 또 다른 대상으로 떠돕니다.

 

세상에는 사방에서 미움을 받아도 당연한 사람은 없습니다

또 쉼없이 남을 미워해도 되는 자격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신기한 것은 미움을 받는 사람보다 미워하는 사람이

더 일그러지고 속이 망가져 병이 나며 오래 살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걸 알아도 사람을 옮겨가며 미워하고 대상을 바꿔가며 원망합니다

안하면 되지 않냐고요? 멈추고 사랑하면 되지 않느냐구요?

그렇지요. 늘 사랑하고 기뻐하고 감사만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진심으로… 그럼에도 참 안되는 게 내 마음이고 심보입니다.

생각을 하지만 실행은 어렵고, 늘 각오는 하지만 이어가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오호라! 난 곤고하고 슬픈 사람입니다

 

아내가 희귀난치병 초기에 사지마비가 되어 지낼 때입니다

침대에서 변을 보고 기저귀를 갈아야만 하던 난처한 시절에

우리를 많이 미워하던 아주머니 환자분이 같이 있었습니다 

“냄새나서 못살겠네! 이런 환자만 따로 모아서 방을 줘야지!”

그렇게 다 들리도록 투덜거리고 문을 쾅하고 닫고 나가기도 했습니다.

죽을 죄를 지은 사람처럼 나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선풍기를 세게 틀고 창문만 열었다 닫았다 했었습니다 

또 수술한 다리가 걷기에 아프고 불편하다고 종종 그분은 그랬습니다

“이렇게 사느니 콱 죽어버려야지! 무슨 재미로 살아…”

험한 불평을 병실 사람들이 다 들리도록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온몸이 사지마비되어 서고 걷는 건 고사하고 앉지도 못하는 사람앞에서…

그분은 지금은 좀 잘 살고 지내는지 가끔 궁금합니다. 

우리에게 그런 식으로 미움과 스트레스를 다 풀어놓으며 지냈으니

아무 응어리 없이 한줌 그늘도 없이 행복하게 지내실까요?

그 말을 들었던 나는 깊이 새겨진 상처가 십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고 그때 감정과 비참한 시절의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사는데… 

그래도 세월이 흐르는만큼 서운함도 흐려지고 가벼워지는데 

그렇게 미워한 사람은 부디 당한 저보다는 더 낫기를 바랍니다. 

아니면 그 미워하는 일이 얻을 소득이 뭘까요? 아무 것도 없다면

그런 삶을 반복하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쓸데없는 행동일까요?

 

습하고 찌는듯 뜨거운 뙤약볕이 걷는 나를 힘들게 하였는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몰려와 햇빛을 막고 그늘이 지더니 바람이 붑니다.

온몸이 이렇게 시원하고 짜릿할수가 없습니다! 신나고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옥상을 올라올 때부터 이랬으면 내가 이 기분을 못 느꼈을겁니다.

이 시원한 그늘과 불어주는 바람이 천금같았을까요? 당연할 뿐이겠지요.

우리 병원 옥상은 아주 조그만한 평수의 공간입니다. 

병원 사람들이 바깥 출입이 통제되면서 전부 이 옥상에 올라옵니다 

더구나 사람들의 심리나 선택이 비슷해서 한꺼번에 올라옵니다.

덜 더운 시간, 좋은 날씨의 타이밍에 몰립니다.

저는 좁은 옥상 면적에 열명정도까지는 참고 걷지만 

스무명 가까운 간병인과 환자가 올라오면 포기하고 돌아갑니다.

다른 분들은 마치 양떼나 참새무리같이 수다를 주고받으며 잘 걷지만 

난 성격때문인지 서먹하고 발에 치어서 가능하면 다른 시간을 이용합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걷는 시간은 대부분 덥고 햇볕이 뜨겁습니다.

아니면 비가 뿌리거나 밤 늦은 시간 연속극 드라마 하는 시간 입니다 

그래야 좀 한가하고 편히 자유롭게 걸으며 노래듣고 묵상하기가 좋습니다

마음을 위해 몸이 불편을 감수하고 기꺼이 수고하는 모양입니다.

몸이 입이 있다면 분명 ‘이런 불공평한…투덜투덜’ 욕 좀 먹겠지만… 

그래서 뜨겁다가 시원해지는 이 호사는 열배 스무곱절로 좋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 샘물을 마시는 사람의 심정이 이렇지 않을까요? 

나의 모든 삶을 스치고 때로는 때리고 지나가는 어려움 슬픔, 

상처가 되기도 한 괴롭웠던 말이 언젠가는 큰 감사의 바탕이 되기를바랍니다 

이 인생의 많은 거친 날들이 그러기를…

 

주님이 그러셨지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짐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또 “내 집은 거할 곳이 많다!” 라고도 하셨지요.

그날이 언제쯤인지 살짝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그리고 이 땅에서 할 일을 마치고 가야한다면 좀 기다려 주세요.  

가는 동안에 변덕부리고 생각대로 각오대로 못살아 곤고하고 슬픈 사람도 

무사히 마치고 들어갈 수 있도록 힘 좀 보태 도와주시고요.

미움과 원망의 마음이 코로나처럼 옮겨가며 나를 못나게 만들지라도

날마다 달음박질하는 사도바울처럼 푯대를 향하여 걷겠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내 집 쉼터’ 에 이를수 있다면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는 고린도전서 15장의 말씀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