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아비나 전토를 떠나...’ 가 쉽지 않더라는

희망으로 2019. 3. 25. 16:25



<‘아비나 전토를 떠나...’ 가 쉽지 않더라는>


“나 집 주인인데요. 방 좀 빼줘야겠어요!”

“갑자기 그러시면...”

“한달 쯤 시간을 주면 되겠지요?”


느닷없이 그 전화를 받은 날은 아내가 충북대학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누워있는 중이었다.

아직 피묻은 환자복을 갈아 입지도 못하고 통증에 끙끙 앓으며 신음을 하는 중이었고,

창밖은 심한 폭우와 더위로 캄캄한 7월 초 삼복더위의 하루였다.


선택의 권리가 없는 세입자인 나는 그 전화를 울적하게 끊고 긴 한숨을 쉬었다.

지나간 날들이 빠르게 돌리는 영상처럼 마음을 할퀴며 지나갔다.

아내가 아프면서 집도 팔고 가진 돈도 다 사라진 후,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닐 방도 없어졌던 그 때 갈릴리마을에서 방을 얻으라고 모금을 해주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둔 막내딸이 꼼짝없이 길거리를 떠돌아 다닐 지경이었는데 살았다 싶었다.

월세를 낼 수 없는 내 처지에 그 돈에 맞는 전세방을 구하느라 딸과 얼마나 돌아 다녔는지...


간신히 구한 그 작은 방에서 아이는 무사히 고등학교를 마쳤고 우리는 모든 살림살이를 보관했다.

그런데 그 주인이 갑자기 수입을 늘리겠다고 한달에 40만원을 내는 월세를 살든지,

아니면 한달 말미로 방을 빼라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직장도 수입도 없는 내 형편에 그 월세는 그냥 철거명령과 다름없는 날벼락이었다.

그것도 아내가 기관지 수술을 받고 목에서 피를 흘리는 그 상황에 받으니 서러움이 울컥했다.


두달만에 간신히 더 작은 방을 급히 구해 옮긴 전세방은 그야말로 창고처럼 짐을 구겨넣었다.

방 하나, 싱크대가 놓인 좁은 거실과 보일러와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에 온갖 살림을 쌓고 살았다.

어쩌다 명절이면 아이들이 와서 같이 잠을 잘 수도 없어 한 명은 자정전에 돌려보내야 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두려운 건 일년에 두 번, 실조사 후 혹시 내려질 갑작스런 병원 퇴출명령이었다.

장기입원환자라고 걸핏하면 집으로 가라는 협박처럼 찔러대는 시청의 예고에 늘 맘 졸였다.

그것이 두려워 국민임대아파트를 신청한지 떨어지기를 두 번 후 3년만에 예비번호를 받았다.

월 20만원이나 내야하는 임대료 부담에도 병원에서 쫓겨나도 갈 곳이 생겨 마음이 놓였다.


입주를 준비하라는 통보를 받은 날 반가우면서도 고민거리가 생겼다.

기존 있는 방을 빼지도 못한 타이밍에, 전세금을 받지도 못한 상태로 계약금과 보증금을 내야했다. 

은행을 쫓아다니며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해결하고 이사를 한 어저께, 병원 허락을 받고 가서 자보았다.

그런데... 새벽에 잠이 깨었고 나는 생각도 못한 낯선 적막함에 몰려 힘들어졌다.

아내는 고단해서 잠에 떨어져 있어 불도, 티비도 켤 수 없는 상태에 나는 가슴이 미어지는 혼자였다.

정말 사방벽이 조여드는 느낌의 질식할 것 같은 그 외로움, 막막함, 두려움이라니...


영화 ‘쇼생크탈출’의 한 사람이 떠올랐다.

30년이 넘는 교도소 생활에 익숙한 모범수 모건프리먼.

그는 가석방이 더 두렵고 적응을 할 수 없어 내보내기만 하면 사고를 쳐서 다시 교도소로 돌아왔다.

그제야 익숙하고 적응된 생활에 안도의 숨을 쉬었던 그 남자의 심정이 백번 공감이 왔다.

나도 10년이 훨씬 넘은 병원 생활동안 어수선한 사람들 틈속에 적응 되었고 쪽잠생활이 익숙해졌다.

갑자기 고요하며 아무도 없는 공간에 나 혼자 다 해결해야하는 그 상황이 더 난감하게 다가왔다.


‘내가 견딜 수 있을까? 식사준비며 아픈 응급 순간과 아무도 말을 나눌 수 없는 이 상태를?’


과연 내가 새로운 공간, 새로운 생활방식에 다시 적응하고 심적 평안을 회복할 수 있을까?

마치,매 맞으며 오래 산 사람이 갑자기 폭행을 안 당하면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룬다던 말이 생각났다.

차라리 얼른 맞고나면 잠에 빠질 수 있다는 길 들여진 그 서글픈 상태에 기가 막혔는데 그꼴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온 ‘너는 아비나 전토를 떠나 내가 정해주는 곳으로 가라!’ 는 하나님의 명령.

“예! 그리하겠습니다!” 아브라함이 잠시도 주저함이 없이 대답하고 보따리 들고 떠났다.

정말 미련 한 조각 없이 오직 믿음으로 그동안 살던 곳을 떠나 미지로 나갔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그가 자랑스럽고 나도, 모든 신앙인들도 그럴 수 있을거라고 당연한듯 말했었다.


하지만... 정말 그게 쉬웠을까? 아무 동요도 두려움도 없이? 이제 그리 간단하지 않았다.

내가 요 며칠 겪은 변화에 대한 경험은 이전에 몰랐던 심적 어려움을 생각하게 했다.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라고... 누구나 단번에 적응이 되는 간단한 일이라고 단정해?

이제 다시 평가해본다. 아브라함의 신앙의 깊이와 그럼에도 순종한 그 결단의 위대함을!

그 이후에 겪고 이겨내면서 그럼에도 그 막막함을 하나씩 헤쳐가며 산 세월들을!


다시 병원으로 돌아왔는데... 이제는 여기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인다. 실패한 아브라함이 될려나? 갈대아 우르에서 뭉개고 살아야하나? 쇼생크탈출의 모건도 나중에는 교도소를 떠나 넓은 세상에서 미소로 새삶을 시작했는데... ㅠㅠ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위로와 평강의 마음을 제게도 허락해주세요!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