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투병일기

니 꿈은 내가 꾼다?

희망으로 2018. 2. 22. 09:45

<‘니 꿈은 내가 꾼다?>

 

나 꿈 꿨어요!”

무슨 꿈?”

일어나서 두 다리로 막 걸어 다니는 꿈!”

 

아프기 시작한 처음에 몇 번 그런 꿈꾸고 이후로 오랫동안 통 그런 꿈 없었습니다.

생기가 나며 좋은 기분으로 꿈 이야기를 하는 아내를 보니 나도 좋습니다.

 

내 꿈 꿔! 니 꿈은 내가 꾼다! 하하하!“

 

간혹 멜로 드라마에 연인들이 헤어질 때 날리는 손 오그라드는 멘트입니다.

그런데... 나는 참 무정한 남편이다. 자기 꿈은 자기가 꾸라고 냅뒀습니다.

누워서 십년 째 걷지도 못하는 아내는 지친 걸까요?

무심한 남편이 좋은 꿈 꿔주기를 기다리다 자기가 꿈꾸었습니다.

 

일어나고 숲길 산새 소리 들으며 걷기도하고

파도가 발에 와 닿아 간질이는 백사장 길을 걷기도하는 꿈

한 번 쯤 파란 하늘아래 초록 들판을 뛰어가는 꿈

부지런히 오가며 식구들 밥하는 꿈...

 

남편이라면 그런 아내를 꿈에 봤다고 호들갑 떨며.

그러니 힘내라고 할만도 한데,

안 꾸어집니다. 아니면 못하는 건지 포기한 건지...

난 참 무심하고 무정한 남편입니다.

 

아름다운 꿈은 꿈도 못 꾸고 대신 걱정 하나를 무겁게 하기 시작했습니다.

 

멀리 외국에 계시다가도 두 번이나 아내를 문병을 와주었던 선교사님.

며칠 전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원주민들에게 우물을 파주던 선교사님은 든든하고 자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생활의 팍팍함 중에도 돈을 모아 우물 두 개를 헌금했습니다.

딸 아이 이름으로 표지판을 세웠다고 사진까지 찍어 보여주셨던 기억에 목이 메입니다.

 

몸속의 암세포를 발견하신지 일 년도 안 된 빠른 시간에 떠나신 것이 충격이었을까요?

하루, 이틀이 지나도록 헤어짐,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떠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결국 무덤 속 쳇바퀴에 갇힌 다람쥐의 심정이 되고 말았습니다.

 

- ‘만약에... 혹시라도 내가 먼저 가면 아내를 누가 돌보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따라올 일들을 떠올리니 감당이 안 되기 시작합니다.

아내는 방광과 대장 신경마비로 24시간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합니다.

아내의 소변을 빼고 날마다 배변을 보기 위해 애써야 하는데 누가 그 일을 하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집단으로 돌보는 요양원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마도 계속 소변주머니를 채우고(질병 특성상 방광염 때문에 못하는데)

이미 내성 때문인지 듣지 않는 배변좌약만 넣거나 관장을 수시로 하겠지요.

망가져서 숨을 거둘 때까지 그냥 방치하는 방법 외에 요양원은 할 길이 없지요.

 

수시로 피검사와 항암주사를 맞으러 병원을 오가는 일은 또 누가?

결국 유급 간병인을 둬야 하는데 월 300만원씩, (공동간병실이라도 월150만원 이상)

항암주사와 병원비용 등을 평생 감당하려면 아마도 아이들 목에 바위가 걸릴 겁니다.

한 사람이 생업과 가정을 포기하고 매달린다면... 그 또한 감당할 비극이 보입니다.

결국은 내가 먼저 떠날 사정이면 아내를 데려가는 것이 가장 좋아 보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그래도 될지가 무겁습니다.

그러다 가슴이 벽에 막힌 듯 답답해집니다.

? 사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고 죽음조차 편하게 맞이하지 못하게 하는 걸까?’

원망이 아니라 궁금합니다. 그렇게까지 해서 무슨 유익이 있는 걸까? 하는...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합니다. 국가도 지금 복지수준으로도 해결 안 되는 현실.

중증 질병과 큰 장애를 가진 가족을 둔 사람들이 다 마주친 이 문제가.

틀림없는 막막함을 그냥 감당하며 버티다가 동반하거나 버리거나 미치거나...

홀로 죽음을 맞이하고 (아무 뒷걱정 없이) 세상을 떠나는 것도 참 복이라는,

부러움마저 생기는 이 상황이 난감해집니다.

 

그런데...잠깐만, 멈춤!

문득 내 속에서 제동을 겁니다.

이대로 생각의 늪에 빠지면 이건 선한 영이 주는 것이 결코 아닐 거라는 느낌이 듭니다.

어찌 그런 일이 오는지 원인도 모르고 대답도 모르면서(분명 뜻이 있음에도 모른다 봅니다)

아직 오지 않은 내일, 혹 다음 날 일로 오늘 삶을 살 의욕조차 망가지다니요?

 

이건 아닙니다. 오늘 아직 생기지도 않은 일로 내일을 포기하는 것도 그렇고,

아직 오지 않은 내일과 다음 날 양식까지 챙기려다 썩은 메추리 무덤을 만드는 것도 그렇고.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끝없는 질문에 꼬리를 물고 돌면 평생 답 없는 방황만 옵니다.

 

스톱!

생각을 멈추고 현실을 봅니다.

멀리 보지 말고 여기 바로 곁의 사람과 내일이 아니라 지금 오늘 할 일을 봅니다.

꿈으로 하지 못하는 산책을 현실로 하기 위해 휠체어와 겉옷을 준비합니다.

가능하면 하루라도 환자인 아내보다 더 살기 위해 내 건강을 챙기며 운동합니다.

원망의 소재 열 가지를 헤치고 숨은 한 가지 감사를 놓치지 않도록 선한 눈을 뜹니다.

 

사탄과 나쁜 영이 현실을 빙자하여 몰고 오는 근심의 먹구름 위에 빛날

하나님의 깊은 자비와 변치 않았던 지난날의 사랑을 이 악물고 기억합니다.

암만요! 고마운 일이 어디 한두 가지였나요!

 

니 꿈은 내가 이루어준다! 아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