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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피할 수 없는 캐스팅! - '왜 나는 이 배역인가요?'

희망으로 2014. 3. 14. 09:11

<아무도 피할 수 없는 캐스팅! - ‘왜 나는 이 배역인가요?’>

아침 일찍부터 준비하고 다녀온 일산 국립암센터 검사와 약 수령,
고단해서만은 아닌 또 다른 이유로 잠이 잘 오지 않아 새벽까지 설쳤다.

지난주 온 한통의 전화, 
담당의사 선생님께 날아 온 12억이 넘는 요양급여비 환수 통지서!
어쩌면 아내치료를 해주시는 선생님이 그만둘지도 모른다는 소식이었다.

이 병이 걸린 스승과의 인연으로 다른 의사들이 피하는 희귀난치병 연구의 길을 스스로 선택하신 분,
자비를 들여가며 5년이나 외국유학도 다녀와서 예상했던 서울대병원에 복직을 못하셨다.
하여 1년 공백동안 원장으로 계셨던 병원이 설립자의 무자격판정에 휘말렸다.
그렇다고 원장직을 맡았다는 이유로 선생님 개인에게 돈을 토해내란다. 
7년전의 일을, 그것도 12억 넘는 돈을...

내가 아는 선생님의 성품이나 5년 동안 치료받으며 경험한 선생님의 삶을 탄원서로 썼다.
불법으로라도 돈 벌려는 분이면 지금 하시는 난치병 치료를 맡지도 않았을 것이고,
성공만 추구하는 분이라면 다른 종합병원 의사들이 외면하는 부담스런 주사제 치료도 않을거라고!
그 살아있는 증인이 아내이고, 300명이 넘는 몰려온 환자와 천명도 넘을 그 가족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치료가 늦어지게 하는 이런 억울한 일을 빨리 조사해서 취소해달라고...

연초에 내가 쓴 책을 보내드렸더니 선생님이 좀처럼 노출하지 않으시는 개인 전화번호로 장문의 문자를 보내오셨다. 

“새해부터 아주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습니다. 
어제 처음 책을 손에 잡고는 놓을 수가 없었어요. 
사실은 제가 요즘 너무 속상하고 어깨가 무거워 다 내려놓을 까 하는 약한 생각을 했었거던요. 
근데 제게 큰 용기를 주셨어요. 깊은 곳의 울림은 두 말할 필요도 없구요~~ 
제가 고맙고 또 고맙습니다 ooo 드림”
  


그 날은 왜 그렇게까지 고마워하는지 이해가 안 되고 당황했었다. 자세한 내용은 말씀안하셨기에, 
아내와 나는 추측을 해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건강하시지, 큰 병원의 교수님이시고, 한 분야의 존경받는 전문가시지, 
뭐가 부족한 부분이 없는데, 우리 사연이 힘이 다 된다고 하시지?’ 하면서,

뒤에 사연을 알고 나니 그제야 왜 그렇게 우리의 삶이 선생님께 힘이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바로 그 며칠 전 건강보험공단의 요양급여 환수명령서를 받으셨나보다.
의사를 그만두려고까지 실의에 차서 고민 중이었는데 내 책이 도착했단다.
그 책을 일요일 단숨에 읽으시면서 다시 용기를 내셨다고,

그 날 이후로 혼자 애쓰시며 증인들과 증거를 모아 건강보험공단에 제출하고 취소를 요청했는데 또 거절,
하여 부득이 행정소송을 해야만 할 상황이 되셨다. 
병원에서 같이 계시는 전 환우회 간사님이 내게 탄원서를 좀 부탁했다. 
돕다니, 그걸 말이라고? 돕는 차원이 아니라 당연한 일이다.
잘못 되면 평생 치료와 관리를 해야 될 아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데...

성경의 구절을 써서 법원 판사님께 호소했다.
‘좋은 나무에서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에서는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한다!’
또 일반인들도 인정하는 구절도 인용했다.
‘잠깐 동안 몇명은 속일 수 있어도, 오래 동안 많은 사람을 속일 수는 없다!’
부디 수백명의 환자와 천명도 넘을 그 가족들을 불안하지 않게 해달라,
하루가 급한 난치병 환자들을 사지로 몰아갈지 모를 이 착오와 억울함을 빨리 바로잡아달라고!

처음 만남부터 몇년동안 선생님께 여러 번 도움과 따뜻한 대접을 받았다. 
지난날을 떠올리니 눈시울이 뜨겁고 마음이 미어졌다.
왜 자신의 성공을 좀 포기하면서까지 다른 아픈 이들을 위해 살아가겠다는데 이런 일이 생기는지, 
돈만 아는 병원에서, 안정적인 성공의 길만 가겠다고 막막한 벽에 부딪힌 환자도 외면하는 의사를 보았었다. 
아내 발병 초창기에 그런 모습을 참 많이 보아온 내게 그것은 하늘을 향해 따지고 싶은 속상함이 되었다.

내려오는 길에 두어 해를 소식도 끊어져 못보던 갈말 식구와 연락이 닿아서 만났다.
만남은 처음인 아내와 내게 그 분은 참 많은 위로를 주셨다.
다른 이들이 우리의 고난을 견디는 삶을 보고 힘을 얻고 있다면서!

나는 그 위로가 고마워 솔직한 내 심정도 털어 놓았다.
사실 종종 하늘이 원망스러울 때도 있다고, 
긴 세월을 남들의 도움만 받으며 사는 우리 모습이 스스로 부담되고,
혹 누가 조금만 지겹다는 의미의 찌르는 말을 하면 깊이 상처를 받는다고,
그래서 자주 하나님께 이렇게 물었다고,

“왜 내게 이런 배역을 주시나요? 
좀 부자가 되게 해주셔도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지 않는다고요.
얼마든지 나누면서 살 자신 있다고요! 
그러면 폼도 나고 기쁘기만 하고 얼마나 좋으냐구요...“  

그러다 문득 탄원서를 주면서 ‘힘내세요!’ 말을 드렸던 선생님이 떠올랐다.
왜 하나님은 그 의사 선생님께 그런 배역을 주셨을까? 
성공과 명예, 재물을 상으로 주셔도 당연할텐데 오히려 수모와 오해를 받도록 하시다니...

하나님의 캐스팅 기준은 도대체 무엇일까?  
성경속에서도 보이고, 삶의 현실에서도 숱하게 보게되는 이해 안 되는 캐스팅들이 있다.
누군가는 숨긴 죄가 있어서 받는 벌이라거나, 더 정성을 다해 빌지 않아서 그렇다고 단정도 한다.
정말 그런 걸까? 
아니면 우리가 차마 이해는 못하지만 그 캐스팅이 하나님이 최선을 다하신 결과는 아닐까?
나 자신이나 남에게 모두 유익한 길이라는 하나님의 종합적인 판단...

살아보지 않으면, 지나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지 못하는 일들도 있다.
지나가는 순간에는 늘 불투명하고 납득이 되지도 않더라는 세상의 여정,
내 감정, 내 육체조차 내가 원하는 대로 단 하루도 운전해가지 못하는 연약함을 인정한다.
그러니 어떻게 긴 날들의 끝과 깊이와 복잡한 관계의 조절을 스스로 해낼까,
차라리 하나님께 넘기자, 캐스팅의 머리 아픈 임무를...

‘하나님, 기도합니다! 대신 주신 배역을 따라 오늘 하루를 잘 수행할 지혜와 힘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