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남는 것은?>
빼꼼 연 창문 틈으로 눈발이 휘익 날려 방으로 들어온다. 아직 2월이니 눈 오는 게 당연하련만 하도 겨울 같지 않게 길게 따뜻했던 날씨가 눈 오는 걸 낮설게 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2월이 지나고 3월이 오면...
참을 수 없이 좋았던 일도 지나가고 참을 수 없이 힘들었던 일도 지나가고, 그 시간의 자리에 무언가를 남겼다. 행복의 추억이거나 슬픔의 흉터를, 어떤 것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벗어나지 못한다. 아쉽거나 다행일 법칙이다. 남겨진 것들만 수북이 안고 살아가게 되지만...
다윗이 기쁠 때도 도움이 되고, 절망에 빠질 때도 용기를 줄 글귀를 반지에 새겨달라고 했다. 그 글귀를 구하는 세공인에게 솔로몬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글귀를 추천했다. 세상의 어떤 경우에도 힘이 되고 오래 남을 구절이라고,
그렇게 선택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정말 많은 경우에 도움이 된다. 너무 행복한 사람에게도 지나치지 않도록 해주고, 너무 절망적 사람에게도 견디어낼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모든 것을 기억상실증이나 태풍 뒤의 벌판 같은 백지상태로 만들어준다는 것은 아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삶으로 자신이 추천한 글귀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일천번제를 드리는 뜨거운 신앙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열정과 간절한 기도를 드릴 줄 알았던 솔로몬이었지만 후일 1000명의 여자를 거느리면서 육체의 쾌락을 탐하는 삶을 살았고, 이방신에게 일천마리의 제물을 바치는 큰 제사를 드리기도 했다. - ‘솔로몬의 마음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떠났다’(왕상 11:9)
솔로몬은 왜 자신이 권했던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기억하지 않았을까? 후대에게 고난과 민족의 분열을 안기는 주범이 되었으니 영광과 행복이 지나간 자리엔 무지 심한 후유증이 남은 것이다. 결코 지나갈 것이니 무시하거나 가볍게 살아도 된다는 말이 전혀 아님을 증명하는 글귀였다.
이 글귀를 받은 다윗도 한때 밧세바와 정을 통하고 감추려다 우리야 장군을 죽음으로 몰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선지자의 지적을 받아 마침내 자복하는 심정으로 참회와 용서를 구했다. 다윗은 하나님의 용서로 그 죄가 용서받고 넘어가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없던 일처럼 끝나지는 않았다. 결국 그는 낳은 아이를 잃는 고통도 겪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모든 잘못과 부끄러움과 악행에서 기억까지 삭제해주는 완전 감면의 기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모든 행복의 순간과 불행의 순간에도 남겨질 그 무엇은 여전히 있음을 인정하고 감안하면서 그 순간을 통과하라는 제한적인 리셋, 클리어 기능을 말하는 것이다.
나도 지독히 캄캄한 터널 같은 아내 간병시절을 지나면서 이를 악물면서 이 말을 자주 반복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이 또한 잊혀지리라’ ‘이 또한 살아나리라’ 온갖 변형을 해가면서 스스로를 달래고 위로하고 그런다. 그런대로 최면요법은 효능을 보았고 심리적 공황을 벗어나는데 보탬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남겨진 것들은 또 만만치 않았다. 그 시기들의 앙금이 쌓여서 걸핏하면 지겹다 소리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고, 그 후유증으로 남은 치료비용, 몸에 남긴 고단한 흔적도 몇 년은 일찍 늙게 해버린 것 같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병실 창문을 닫으며 중얼거렸다. 곧 3월이 올 것이고, 다시 눈 구경하려면 1년은 기다려야 하겠지.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그러다 다시 눈 내리는 겨울이 오고, 또 가고 또 오고.
그렇게 반복하는 사이 청춘은 훌쩍 지나고 남겨진 것은 장성한 아이들과, 행여나 돈 들어가고 걱정거리 안겨줄 늙은 부모가 된 내 모습?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고 남겨질 그 무엇들, 생명과 삶은 결코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법이 없다. 아름다운 것들은 아름다운 상을 남기고, 슬픈 날들은 아픈 흉터를 남긴다. 남에게 못할 짓을 한 사람은 그에 적합한 훗날의 벌이 있을 것이고, 스스로를 버틴 사람에게는 더 깊은 참상의 구렁으로 빠지지 않은 당장의 보상이 주어질 것이다.
오늘도 많은 사람과 일을 만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외우며 하루를 보낼 것이다. 밤이 되면 대부분은 털고 넘어갈 것이다. 그리고 작지만 남겨질 무엇은 쌓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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