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붕 다섯 방/사랑하는 아내에게

사랑하나요? 그럼 무죄!!

희망으로 2013. 5. 27. 14:28






<사랑하나요? 그럼 무죄!>

송혜교와 조인성이 열연했던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의 각색작가 노희경이 쓴 책,
제목이 '지금 사랑하지 않는자 모두 유죄'다.

그렇다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유죄였다.
아내가 심하게 아파서 사경을 헤메이고 집안이 손으로 폭 떠서 뒤집어 엎어놓은 순간까지도,
그 이후에야 조금 사랑이 어떤건지, 무슨 느낌인지 알기 시작했다.
감형, 아니면 반쯤 애매한 미결수? 그 정도로 이동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사랑이라기보다는 '탐심'에 가까웠다.
아름답고 이쁜 대상에 대한 접근 본능처럼,
그리곤 원하는 것이 앞질러가면 못 채워진 갈증을 채우는 시기,
연인이 되고서는 종종 '과시'의 시절을 보내곤 햇다.

결혼하고서는 '구색'이 되었다.
남들에게, 혹은 직장에 아내라고 옆자리에 데리고 다니며 소개하는 자리,
아이들이 태어나곤 아내는 여전히 사랑의 대상보다는 '의무'의 대상이었다.
좀 살면서는 서로가 잔소리와 필요조건으로 애증이 교차하는 사이가 되어갔다.

사랑,
그저 살아서 곁에 있어준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흔들리지 않아진 것은
어쩌면 이 땅에서 영원히 머리카락 한올도 못볼 수도 있는 자리까지 갔을 때였다.
퉁퉁부은 얼굴, 여기저기 주사자국으로 멍들고 땀과 약으로 범벅된 몸...
그럼에도 살아 있어주기를 간절히 기도할 때, 간신히 사랑의 꼬리나 본 것이다.


그랬다
늘 '사랑'이라는 간판도 달고, '사랑'이라는 명분으로도 온갖 일을 했다.
가족과 아이들에게도 온갖 말을 하고, 무엇을 주기도, 강요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바탕이나 수준이 돌아보니 '사랑'에는 미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유죄' 혹은 '반쯤의 미결수'...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제목을 보면서 자꾸 길의 돌부리처럼 걸리는 단어가 하나 있다.
'지금'
'지금 사랑'...

예전도 아니고, 나중도 아니고 유죄와 무죄를 가르는 기준 하나가
'지금'이라는 시점이다.
오늘로 바꿀 수도 있는 단어,
그건 멀리도 아니고 '여기'라는 바로 곁의 장소를 말하기도 한다.
하루 이상 걸리는 곳은 대상이 아니니,

또 그것은 '바로' 를 말하기도 한다.
오늘 하루는 그리 길지 않다.
미룰만큼 넉넉하고 긴 시간도 아니고 후딱 가벌릴 수 잇기 때문이다.

미루지 말고 여기 바로 곁의 사람을 지금 사랑하라는 말,
지금 여기 바로 사랑하지 않으면 모두 죄인이 된다.
아주 오래전부터 하늘 높은 곳에서 끝없이 내려오던 권유

-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사랑하는자는 나를 볼 것이니
-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며칠내내 무덥던 뒤 끝에 내리는 비를 보며 
문득 하늘이 땅을 많이 사랑하나보다 느낍니다.
하늘도 무죄, 땅도 무죄입니다!!)